서로 다른 기억과 역사, 그러나 하나의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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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기억과 역사, 그러나 하나의 사실
  • 김진우 경북대·역사학
  • 승인 2022.10.2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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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칼럼]

중국 호남성 장강 중류 유역의 동정호에는 군산이라는 작은 섬이 있다. 중국 10대 명차 중 하나인 군산은침의 산지로도 유명한 군산에는 중국 상고의 성왕인 요임금의 두 딸이자 순임금의 비였던 아황과 여영의 애절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순임금이 남쪽을 순행하다가 죽자 아황과 여영은 애통해하면서 동정호에서 남으로 갈라져 흐르는 장강의 지류 상강에 와서 빠져 죽었다고 전해진다. 아황과 여영은 상군이라는 상강의 여신이 되었고, 상산에 두 여신을 모시는 상산사가 세워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래 동정산 또는 상산이라고 했던 이 섬은 상군의 이름을 따서 이후 군산이라고 불리게 된다.

상군 전설과 관련해서 『사기』 진시황본기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통일 후 진시황은 천하를 순행하면서 장강을 건너 동정호의 상산에 이르렀는데, 풍랑을 만나 건너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진시황은 노하여 형도 3천 명을 동원하여 여신의 사당이 있는 상산의 나무를 모두 베고 민둥산으로 만들어 두 여신을 모욕했다는 것이다. 일종의 수치형을 가함으로써 토착의 신격을 능가하고자 했던, 진시황의 오만함을 드러내기에 알맞은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아마도 사마천은 현지의 이러한 전승을 수집하여 채록했을 것이다.

그런데 『사기』 이후로 지금까지 진시황의 포학한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일조했던 이 이야기와는 또 다른 새로운 자료가 최근 나왔다. 2007∼2008년 중국 호남대학의 악록서원은 도굴되어 홍콩 골동품 시장에 나온 죽간 덩어리를 두 차례에 걸쳐 구입하고, 모두 2,176매의 간독으로 정리해서 『악록서원장진간』으로 공개하고 있다. 이 진대 죽간은 진시황 시기의 율령 및 재판 판례 등을 다수 포함하는데, 진시황이 동정호 상산에 이르러 실제로 내렸던 다음과 같은 조서의 내용도 확인된다. 

“내가 천하를 병합한 이래로 친히 해내를 어루만져 남으로 창오에 이르고 동정의 물을 건너 상산과 병산에 오르니 그 수목이 우거진 것이 아름답고, 낙취산을 바라보니 남쪽으로도 수목이 아름답다. 이를 모두 베지 못하도록 금하라”

새롭게 확인된 진시황의 조서 내용은 일찍이 사마천이 『사기』에서 전한 내용과는 반대로 상산의 나무를 오히려 베지 못하도록 하는 보호 조치였다. 이처럼 기존 문헌 사료와는 다른 당시 1차 출토 자료가 나오면서 나름 양자 간의 모순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려고 하는 논의가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적어도 진시황의 이 조서에서 정복자로서 진시황이 피정복지인 구육국을 통합하고 피정복민의 민심을 위무하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으며 아마도 이것이 당시 진의 공식적인 입장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마천은 있지도 않았던 허구의 이야기를 채집하여 기록했던 것일까? 새로운 당시의 1차 자료가 나왔다고 기존의 문헌 사료는 부정되고 수정되어야만 하는가? 그럴지도 모르지만, 진시황이 상산의 나무를 베어 민둥산으로 만들었는지 아니면 상산의 나무를 베지 못하게 보호했는지 여부는 지금으로서는 확인할 수 없다. 진시황이 민둥산으로 만든 상산과 베지 못하게 보호한 상산이 서로 다른 산일지도 모른다. 또는 처음 오를 때는 보호하는 조치를 내렸다가 다시 지나면서 풍랑을 만나 화가 나서 나무를 모두 베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이제 우리는 동정호의 상산과 진시황과 관련된 서로 다른 2개의 텍스트를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상반된 텍스트를 통해 육국을 정복하고 전국을 종식시킨 진시황의 ‘하나의 천하’와 그 과정에서 멸망당하고 전쟁의 고통을 겪었던 구육국민, 그중에서도 초나라 사람들의 진시황을 증오하는 강렬한 ‘반진 감정’이 각각의 진실로 동시기에 병존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의 기억은 서로 다르고 각자의 입장에 따라 기록은 편향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제각기의 그러한 기록이 새롭게 발굴되거나 기록을 바로 보는 시선이 바뀌면서 역사는 끊임없이 새롭게 쓰여진다. 그럼에도 인간의 시공간에 각인된 전체로서의 사실은 단일하다. 현실에서는 기록자의 눈에 따라 파편으로만 존재하는 불완전한 사실일 수밖에 없지만, 역사가는 도달할 수 없음에도 그 간극을 끊임없이 좁혀나가야만 하는 전체로서의 입체적인 온전한 사실을 목표로 한다. 그 헛되고 헛된 노력 속에서 서로 다른 기억의 파편들을 재구성하는 해석의 방식도 제각기 여러 갈래일 수밖에 없고 그 다양성은 존중해야만 할 것이다. 

그럼에도 움직일 수 없이 엄연히 존재했던 사실 그 자체는 훼손하거나 부정할 수 없다. 천하를 통합하려는 진나라 쪽의 기록이 새롭게 나왔다고 해도, 진의 폭력에 저항하는 초나라 쪽의 강렬한 정서를 담은 사마천의 기록이 거짓으로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아우슈비츠에 대한 나치 쪽의 기록이 아무리 새롭게 나올지라도 홀로코스트의 사실 그 자체가 전복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어느 한쪽의 파편으로 다른 한쪽의 맥락을 부인하고 전체로서의 역사상을 왜곡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몰이해이자 현재의 욕망을 투영한 사이비일 뿐이다. 그러한 반역사에 맞서 오늘도 나의 공부는 헛되고 헛되면서도 새롭고 또 새로워진다.   


김진우 경북대·역사학

고려대학교 사학과에서 중국 고대 효사상과 정치권력을 주제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방문학자, 한국국학진흥원 전임연구원 등을 거쳐 현재 경북대 인문학술원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출토 간독 자료를 중심으로 중국 고대 사상사·법제사 방면의 연구를 하고 있다. 『동아시아 고대 효의 탄생 효의 문명화 과정』(단독), 『중국목간총람(상)(하)』(공저), 『천성령 역주』(공역) 등 다수의 저역서 및 중국고대사 및 간독자료에 관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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