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2조 제2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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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2조 제2항
  • 조원형 편집기획위원/서울대학교·언어학
  • 승인 2022.10.17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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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형 칼럼]

서울대학교에서는 최근 정문 앞에 광장을 새로 만들면서 ‘SEOUL NATIONAL UNIVERSITY’라는 문구를 붙여 놓았다. ‘서울대학교’라는 한국어 이름 없이 영어 이름만 붙여 놓은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이 학교 국어국문학과 정병설 교수가 학내 언론 매체인 <대학신문>을 통해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정병설 교수의 글 출처: 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1208)

                                 서울대학교 정문 광장. 조원형 촬영.

필자는 이렇게 영어 이름만 쓰는 것이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처사라는 정병설 교수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이는 법적인 문제를 따져 보아야 할 사안이라는 점을 덧붙이고자 한다.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2조 제2항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명시되어 있다. “광고물의 문자는 원칙적으로 한글 맞춤법,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및 외래어 표기법 등에 맞추어 한글로 표시하여야 하며, 외국 문자로 표시할 경우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한글과 병기(倂記)하여야 한다.”

여기서 문제는 이렇게 학교 이름을 영어로만 표기해 놓은 것이 과연 ‘특별한 사유’에 해당하는가 하는 점이다. 이 시행령에는 ‘특별한 사유’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고 있으니 일반 상식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대한민국 대학 이름을 한국어로 표기하지 않고 영어로만 표기해야 할 특별한 사유가 있을까. 적어도 필자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그런 사유를 찾기가 어렵다. 혹시 그 사유를 알고 계신 분이 계신다면 필자에게 연락해 주시기 바란다. 만일 합당한 사유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면 대한민국을 대표한다고 자처하는 국립 대학이 실정법을 위반했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와 조금 다른 듯이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다를 바가 없는 사례를 야구 경기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 10월 16일 고척스카이돔에서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1차전 경기가 열려서 필자도 관람을 하고 왔다. 그런데 모처럼 찾은 야구장의 전광판에서 한국어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경기 시간 내내 중앙 전광판에 ‘2022 KBO POST SEASON’이라는 영문이 한국어 병기 없이 떠 있었고, 선수들의 이름과 경기 진행 상황 등을 보여 주는 좌우 전광판에는 ‘투수, 포수, 외야수’가 아니라 ‘PITCHER, CATCHER, OUTFIELDER’ 같은 말들만 나타났다. 선수 이름 정도만 한글로 표기했을 뿐이었다. 심지어 이 전광판 테두리에마저 ‘GOCHEOK SKY DOME’이라는 영문 표기만이 새겨져 있었다.

고척스카이돔 전광판. ‘외야수’ 대신 ‘OUTFIELDER’라는 말만 나와 있다. 다른 선수들을 보여 줄 때도 마찬가지다. 조원형 촬영.

야구장 전광판이 법적으로 ‘옥외광고물’에 해당하는지는 필자가 확답을 하기 어렵다. 하지만 옥외광고물은 한글로 표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은 취지를 존중한다면 전광판 문구 또한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글로 표기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한국어와 영어를 병기한다면 몰라도 지금처럼 한국어 없이 영어만 쓰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뜻이다. ‘OUTFIELDER’라는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이 야구 경기를 보았다면 전광판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필자는 얼마 전에 몇몇 아파트들의 이름을 문제 삼으면서 외국어를 쓰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출처: 조원형 칼럼 “아파트 이름” http://www.uni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876) 이와 마찬가지로 간판이나 전광판 등에 외국어나 외국 문자를 아예 쓰지 말자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곳에 외국어를 쓸 때는 아무리 번거롭더라도 한국어를 함께 써야 한다는 점만은 잊지 말았으면 한다. 예컨대 ‘SEOUL NATIONAL UNIVERSITY’라는 간판은 적어도 ‘서울대학교’라는 문구와 함께 쓰고, 야구장 전광판에 ‘OUTFIELDER’라는 말을 굳이 써야겠다면 ‘외야수’라는 한국어 용어를 꼭 병기해야 할 것이다.

다만 이 시행령 조문에는 고쳐야 할 것도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앞에서 인용한 시행령 조문을 보면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한국어를 한글이 아니라 로마자로 표기하는 것과 관련된 어문규범이므로 옥외광고물의 한글 표기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이는 차후에 시행령을 개정할 기회가 있을 때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조원형 편집기획위원/서울대학교·언어학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에서 언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만하임 라이프니츠 독일어연구원 방문학자,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등을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로 일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천주가사에 대한 텍스트언어학적 연구”, “텍스트언어학에 기반한 ‘쉬운 언어(Leichte Sprache)’ 텍스트 구성 시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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