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렁에 빠진 ‘1등 국가’의 대학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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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렁에 빠진 ‘1등 국가’의 대학 교육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0.03.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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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고등교육]

대학 당국자와 교수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고등교육, 특히 인문학과 사회과학 분야의 고등교육은 현재 희망 없는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이런 가혹한 진단이 나오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첫 번째, 대학 교육비가 터무니없이 비싸다. 현재 4천500만 명의 미국 젊은이들은 총 1조5천억 달러의 학자금 대출을 안고 있다. 미국 역사상 최대치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수백만이 학자금 대출을 갚지 못해 파산 신청을 한 상태이며, 파산하지 않은 젊은이들도 겨우 이자를 내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 대학들은 계속해서 등록금을 올려왔으며, 이 인상률은 연평균 인플레이션율을 크게 상회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대학은 젊은이들의 파산이 미국 경제, 문화, 인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결혼과 육아를 미루고 집을 사는 것을 포기하게 된 많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학자금 대출 때문에 20대부터 허덕여왔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대학들은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평균 학자금 대출금은 이미 1인 당 3만 달러를 넘어선 상태다.

두 번째, 대학들은 젊은이들이 대학을 다닐 때보다 오히려 대학을 졸업한 뒤에 더 좋은 교육을 받고 있는 현실에 대한 자각이 전혀 없으며, 그 원인을 분석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대학은 지원자들의 고등학교 시절 학력을 평가하기 위해 표준화된 SAT나 ACT 점수를 여전히 요구하고 있는 반면, 대학의 4년 과정의 효율성에 대해서는 어떠한 평가도 받기를 거부하고 있다.

실제로, 대학 4학년들을 대상으로 4년간의 대학 교육의 성취정도를 평가하는 시스템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졸업생을 고용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답답한 상황도 없는 셈이다. 학생 입장에서도 자신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 실제로 어느 정도 좋아졌는지 측정할 수 없는 수단이 없다. 학위 인플레이션, 대학의 정치화 등의 현상 때문에 학생들의 분석적, 정량적 역량이 4년의 대학 생활 동안 높아졌는지 확인하기도 힘들어졌다.

세 번째, 대학들은 학생들의 입학으로 인한 등록금 부채의 파급 효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전혀 평가하고 있지 못하다. 대학들은 등록금 대출을 갚지 못해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결과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대학들은 특정 학과를 졸업할 때까지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학자금 대출이 필요한지 학생들에게 거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며, 특정 학과를 졸업했을 때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려야 학자금 대출을 모두 상환할 수 있는 상태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도 제공하지 않고 있다.

네 번째, 대학들은 재학생들의 헌법적인 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박탈하고 있다. 학생 운동이나 종교적인 운동을 하는 재학생들은 대학으로부터 괴롭힘과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강의 도중에 보수적인 의견을 개진하거나 대학의 기조와는 다른 비정통적인 관점을 드러내는 학생은 학점 불이익을 당연하게 감수해야 하는 것이 대부분의 미국 대학의 현실이다.

다섯 번째, 사립대학들조차 세금 면에서 보면 완전히 ‘사립’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기부금은 여전히 아직도 과세 대상이 아니며 연방정부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있다. 대학생들의 등록금 대출금은 1조5천억 달러를 넘어섰지만, 대학에 들어오는 기부금 중 장학금과 수업료 인하에 쓰이는 돈은 반이 채 되지 않는다. 나머지 반이 넘는 돈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대학 당국이 거의 마음대로 결정한다. 그 결과, 2020년 현재 미국의 대학들은 미국 역사상 가장 부유한 상태를 누리고 있다.     

고등교육 기관들은 어떻게 하면 학생들을 잘 교육시켜 사회로 내보낼지, 학생들의 빚을 덜어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이렇게 졸업한 학생들은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홀로 서야 하는’ 소시민이 되어갈 뿐이다. 미국 대학 교육의 풍경 속에서 보이는 가장 큰 역설이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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