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현재, 매체미학이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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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현재, 매체미학이 필요한 이유
  • 유원준 영남대학교·예술학
  • 승인 2022.10.16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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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매체 미학: 예술과 기술 사이에서』 (유원준 지음, 미진사, 216쪽, 2022.09)

 

21세기 현재, 매체미학이 필요한 이유

디지털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그런데 오늘은 사뭇 느낌이 다르다. 어제 장만한 새로운 스마트 워치의 알람 소리로 하루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다소 바쁜 날이 될 듯하다. 벌써 상사의 SNS 메시지가 날 재촉한다. 아마도 해외 바이어에게 지난 밤 급한 이메일이라도 온 것 같다. 시간이 아슬아슬하다. 출근하는 동안 차 안에서 틈틈이 스마트폰을 통해 오늘의 업무를 체크한다. 실시간으로 가장 빠른 길을 안내해주는 네비게이션 덕에 늦지 않게 회사에 도착한 나는 드디어 자리에 앉아 일을 시작한다. 컴퓨터의 네모난 스크린 속에서 회사 동료들과 쌓인 일들을 마주하는 것도 잠시, 난 어느새 화면 하단에 메신저 창들을 띄워놓고 친구들과 주말 약속을 잡고 있다. 점심은 인터넷을 통해 햄버거를 주문했다. 오후 업무를 생각하니 밖에 나갈 엄두가 안 난 까닭이다. 오후에도 바쁜 업무는 계속되었다. 옆자리 동료와는 얼굴도 보지 못한 채 메신저를 통해서만 대화를 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전 세계의 사람들과 온라인으로 화상회의를 하며 업무를 처리하고 났더니 무언가 세계 여행이라도 다녀온 기분이다. 드디어 퇴근 시간이 되었군. 집으로 가는 길엔 요즘 유행하는 음악이라도 스트리밍으로 들으며 가야겠다. 새로 산 스마트 워치의 배터리가 줄어드는 것을 보며 나의 하루가 끝나가고 있음을 느낀다. 

 

매체가 우리의 상황을 결정한다

앞서 묘사한 일상의 모습은 현대인들에게 있어 크게 특별할 것 없는 보편적 삶의 모습이다. 우리는 업무를 보거나 학업에 몰두할 때 심지어 친구들과 소통할 때조차 디지털 매체를 필수적이고 필연적인 하나의 환경으로 인식하며 이용한다. 최근에는 인공지능과 메타버스, 가상현실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기술적 환경의 폭과 넓이는 더욱 확장되고 있다. 에른스트 카시러(Ernst Cassirer)는 인간의 상징적 행위가 발전할수록 물리적 현실은 소멸한다고 언급하며 인간은 가상(인공)적 매체의 개입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으며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 ‘매체가 우리의 상황을 결정한다’고 주장하는 프리드리히 키틀러(Friedrich Kittler)의 전언도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그의 주장에 따르면 매체는 세계를 ‘보고(seeing)’, ‘지각하는(perceiving)’ 방식을 변화시킨다. 즉 세계를 보기 위하여 혹은 지각하기 위하여 부차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그리하여 그 과정 자체를 변화시키는 ‘근본적인 무엇’이라는 이야기이다. 

기술 매체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떠올려 볼 때 이는 그리 과장된 말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로부터 매체에 관한 우리의 보편적 인식은 이와는 대조적 입장으로 확인된다. 즉 매체는 ‘우리의 상황을 결정하는 것’이 아닌 ‘우리의 상황에 맞추어 결정되는 것’이었다. 가령, 급하게 누군가에게 연락을 취해야 할 때 매체는 송신자의 상황에 맞추어 결정된다. 강의실에서라면 음성을 사용하지 않고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문자, SNS 혹은 이메일 등이 선호될 것이며 사안의 위급함에 따라 확인이 더딜 수 있는 이메일은 선택 사항에서 제외되고 보다 즉각적인 매체가 선택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사용할 매체를 결정하는 가장 주된 요건은 매체를 사용하는 주체가 처한 환경과 상황이다.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워 보이는 이와 같은 사유는 두 가지 요인으로부터 발생한다. 첫 번째로 우리 안에 뿌리 깊게 자리 잡혀 있는 주체-중심적 사유를 떠올려 볼 수 있다. 주체를 인간으로 상정할 경우 인간이 사용하는 모든 것들은 인간에게 귀속된 도구이자 수단으로 이해되는데 이러한 특성을 전제할 경우 매체는 ‘(인간) 주체가 다른 이(타자)에게 무엇인가를 전달할 때 이용되는 무엇(매질, 媒質)’ 정도의 의미로 한정된다. 이 경우 ‘주체-매체(운반체)-타자’의 도식에서 매체는 단순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앙부에 위치한 일종의 통로이자 그것이 담겨있는 용기 정도의 의미로만 파악된다. 


매체와 기술, 매체미학의 문제

매체를 수동적 차원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두 번째 요인은 매체를 작동시키는 기술의 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 본 서적은 첫 번째 파트에서 ‘매체’에 관한 전반적인 이해를 시도한 이후 두 번째 파트를 통하여 그러한 매체를 작동시키는 근본적인 요건으로의 기술에 관한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데 이는 매체와 기술이 매우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지니고 있으며 각각의 문제가 불가분의 영역에서 다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서구 미학-철학사에서 기술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논제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기술의 문제가 도구적·수단적 차원에서만 이해된 까닭인데 근대의 기술철학자인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이와 같은 기술에 관한 인식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는 기술을 ‘목적을 위한 수단’이나 ‘인간 행동의 하나’로 이해하는 것 모두 기술을 도구 또는 장치로 규정하는 것이라 간주하며 이러한 접근을 통해서는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는 것(탈은폐, Entbergen)’으로서의 기술의 본질에 도달할 수 없다고 보았다. 

하이데거의 이와 같은 주장은 이전의 도구적 관점으로 기술의 본질을 규정하는 방식을 넘어 다른 차원의 접근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기술은 본질적인 인간 행동 양식이자 사유의 기본 형식으로 이해될 수 있었으며 그로부터 기술과 결부되어 작동되는 매체 일반에 대한 이해의 바탕이 마련되었다. 특히 기술의 최고 경지를 예술과의 접점으로부터 발견하려는 그의 시도는 최근 제기되고 있는 예술과 과학-기술, 그 수렴의 지점을 떠올리게 만든다. 최근 예술은 다양한 지점에서 과학 기술과 융합한다. 기술 매체 자체를 예술의 형식으로 제시하였던 근대의 시도를 넘어 매체가 가진 특성들을 통해 예술 영역에서 제기되어온 문제들, 가령 시간과 공간의 문제 및 주체와 타자의 문제 등이 새로운 형식으로 등장한다. 만약 예술이 해당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면 이러한 흐름은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이해된다.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기술은 능동적으로 매체 환경을 재구성하는 동시에 우리가 마주하는 세계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있다. 

바움가르텐(Alexander Gottlieb Baumgarten)이 ‘미학(美學, Aesthetics)’이라는 학문 분과를 정초한 이후 감각적 판단에 기초한 인식은 미학의 첫걸음으로 간주되어 왔다. 현재의 세계가 기술 매체로부터 근본적인 수준에서부터 구성된다면 우리의 인식-세계는 그러한 매체로부터 구성되는 감각적 수용을 전제한다. 따라서 이러한 세계를 이해하고 사유하기 위한 접근 방식으로서 매체미학이 요구된다. 매체미학은 매체에 의해 파생된 감각적 인식과 그것이 수용되는 방식에 관한 학문이며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감각적 수용의 층위를 포괄하며 점점 더 확대되어 가는 매체에 의해 구성되는 환경을 연구의 대상으로 상정한다. 특히 기술 매체와 결합하여 나타나는 예술적 현상은 매체미학의 주요한 분석 대상이다. 미시적으로 과학-기술 매체와 융합하여 나타나는 예술 작품으로부터 거시적 관점에서 우리의 환경이 기술 매체로 구성됨에 따라 나타나는 다양한 미적 체험의 현상이 모두 포함될 수 있다. 매체미학은 단순히 예술 작품을 분석하기 위한 제한적 도구가 아닌 현재의 사회-문화-예술을 가늠하기 위한 일종의 틀거리이기 때문이다. 


유원준 영남대학교·예술학

미술평론가이자 미디어문화예술채널 ‘앨리스온(AliceOn)’의 설립자이며 현재 영남대학교 미술학부 교수이다. 과학-기술 매체와 예술 융합의 다양한 지점에 관하여 연구하고 있으며 영화와 게임, 만화와 공연예술 등 전통적인 미술(시각예술)의 범주를 넘어 문화 예술 콘텐츠 전반에 관심이 있다. 대학에서는 미학 및 예술 이론을 강의하고 있으며 비평 분야에서는 미디어아트 및 현대 미술에 관한 평론을 진행한다. 2019년 한국콘텐츠진흥원 만화비평 대상, 2022년 월간미술 학술비평 부분 대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게임과 문화연구』(공저), 『뉴미디어 아트와 게임 예술』, 『인공지능시대의 예술』(공저), 『인공지능, 문학과 예술을 만나다』(공저), 『테코레이션』(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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