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과 불교: 존재양식과 깨달음》에 대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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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과 불교: 존재양식과 깨달음》에 대한 소개
  • 박찬국 서울대·철학
  • 승인 2022.10.16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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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에리히 프롬과 불교: 존재양식과 깨달음』 (박찬국 지음, 운주사, 316쪽, 2022.09)

 

본인의 책 『에리히 프롬과 불교: 존재양식과 깨달음』은 에리히 프롬의 사상과 불교 사이의 생산적인 대화를 매개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 『사랑의 기술』, 『소유냐 존재냐』와 같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문명(文名)을 떨쳤던 철학자다.  『사랑의 기술』은 2009년도 기준으로 전 세계적으로 2,500만부가 팔렸으며, 그 외의 모든 책도 최소한 500만부 이상이 팔렸다. 이런 사실을 고려할 때 20세기의 유명한 철학자 중에서 프롬만큼 대중적으로 널리 읽혔던 사상가도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누구든 에리히 프롬이란 사상가의 이름 정도는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에리히 프롬이 불교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졌을 뿐 아니라 위빠사나나 참선과 같은 불교의 명상법을 직접 수행하기도 했다는 사실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나는 서양철학자 중에서 불교에 가장 가까운 사상을 전개했던 사람은 단연코 프롬이라고 생각한다. 그다음으로 쇼펜하우어와 하이데거가 불교와 가까운 사상을 전개했지만, 그러나 이들에게는 불교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프롬은 불교와 동일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불교와 가까운 사상을 전개했다.  

프롬은 종교를 권위주의적인 종교와 인본주의적 종교로 나누면서 인본주의적 종교의 가장 훌륭한 전형으로 불교를 뽑았다. 권위주의적 종교는 특정한 교리나 예식체계 등을 종교의 핵심으로 보면서 신자들에게 특정한 교리를 맹목적으로 믿거나 특정한 예식체계를 무조건적으로 준수할 것을 요구하는 종교다. 권위주의적 종교를 믿으면 믿을수록 사람들은 비판적인 사고능력을 상실하게 될 뿐 아니라 자신들의 교리나 예식체계만을 절대적인 진리라고 생각하는 독선에 사로잡히면서 다른 종교들을 이단시하고 배척하게 된다. 

이에 반해 인본주의적 종교는 종교의 핵심을 지혜나 사랑과 같이 인간에게 원래 존재하는 훌륭한 잠재능력을 온전히 개화시키는 데서 찾고 있다. 따라서 인본주의적 종교의 이념에 충실할수록 사람들은 비판적인 사고능력을 비롯한 지혜를 더욱 성숙시키게 되며 모든 생명과 사물에 대해서 공감과 애정을 갖게 된다. 

 

               에리히 젤리히만 프롬(Erich Seligmann Fromm, 1900년 3월 23일 ~ 1980년 3월 18일)

프롬은 불교를 인류 역사상 나타난 모든 종교 중에서 가장 우상파괴적인 종교일 뿐 아니라 철저하게 인본주의적 종교라고 보았다. 불교는 자신의 교리나 예식체계를 무조건적으로 믿을 것을 요구하지 않고 깨달음을 위한 방편으로 간주하면서 그것들이 만약에 깨달음을 방해한다면 언제든지 폐기되어도 좋다고 본다. 이 점에서 불교는 철저하게 우상파괴적인 성격을 갖는다. 다른 한편으로 불교는 종교의 목표를 우리에게 이미 존재하는 불성을 온전히 개화한다는 데서 찾고 있다는 점에서 인본주의적인 성격을 갖는다. 

이에 반해 프롬은 기독교에는 권위주의적 성격과 인본주의적 성격이 혼합되어 있다고 보았다. 기독교는 한편으로는 예수가 하느님의 독생자로서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것과 같은 교리를 무조건적으로 믿어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권위주의적 종교의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기독교는 하느님을 무조건적인 사랑의 하느님으로 보면서 하느님에 다가가는 참된 길을 다른 인간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에서 찾고 있다는 점에서 인본주의적 성격을 갖는다. 

불교에 대한 프롬의 높은 평가는 선불교에 대한 다음과 같은 언급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선(禅)은 내가 알고 있는 한에서는 가장 세련된 반(反)이데올로기적이고 이성적인 체계이며, 그것은 ‘비종교적’ 종교(‘nonreligious’ religion)를 발전시키고 있다. 선이 지식인들 사이에서 열렬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서양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비종교적’ 종교라는 것은 선불교가 기독교나 이슬람과 같이 인격신이나 특정한 교리와 예식체계를 무조건적으로 신봉하는 종교가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철저하게 인본주의적 종교라는 것을 의미한다. 프롬은 불교야말로 철저하게 이성에 입각한 종교이며 어떠한 비합리적인 신비화나 계시나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 종교로 보고 있는 것이다. 

프롬은 현대사회의 위기가 근본적으로 소유지향적인 삶과 사회구조에서 비롯된다고 보면서 존재지향적인 삶과 사회구조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소유지향적인 삶이란 현대인들을 규정하고 있는 삶의 방식으로서 삶의 의미를 보다 많은 물질의 소유와 쾌락의 향유에서 찾는 삶이다. 이러한 삶은 물질과 쾌락을 둘러싼 사람들 간의 경쟁을 심화시킴으로써 사람들 사이의 분열을 야기하며, 자연을 한낱 지배와 정복의 대상으로서 취급함으로써 인간과 자연 사이의 분열을 야기한다. 

이에 반해 존재지향적인 삶은 자신뿐 아니라 다른 모든 존재자의 성스러움을 경험하면서 그것들과 교감을 나누는 삶이다. 그러한 삶에서 인간은 자신의 잠재적인 능력인 지혜와 사랑을 실현하면서 자신의 존재의 성장을 경험하는 가운데 기쁨으로 충만하게 산다.

소유지향적인 삶이 불교식으로 말하면 탐욕과 분노 그리고 무지라는 삼독(三毒)에 사로잡혀 있는 삶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간취할 수 있다. 소유지향적인 삶에 빠져 있는 인간은 물질과 쾌락에 대한 탐욕에 사로잡혀 있지만, 이러한 탐욕은 항상 원하는 대로 즉시 충족되는 것이 아니기에 불만과 분노에 사로잡히게 된다. 또한 그는 물질과 쾌락이라는 덧없는 것을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면서 그것에 집착한다는 점에서 무지에 사로잡혀 있다. 이에 반해 존재지향적인 삶은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에 입각한 삶, 다시 말해 탐진치라는 삼독에서 벗어나 있는 삶이다. 

프롬과 불교 사이의 유사성은 프롬이 존재지향적인 삶을 구현하기 위해서 우리가 실현해야 할 구체적인 과제들로서 거론하고 있는 사항들에서 더욱 분명하게 감지할 수 있다. 그러한 사항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소유욕으로부터의 탈피, 모든 생명에 대한 사랑과 존중, 과거에 대한 회한이나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에’ 완전히 존재하는 것, 자기와 모든 사람들의 완전한 성장을 실현하는 것을 삶의 궁극적 목표로 삼는 것, 자기 이외의 어떠한 인간이나 사물도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독립적인 인간이 된다는 것, 다른 사람을 속이지 않지만 또한 다른 사람으로부터 속지도 않는 지혜로운 인간이 된다는 것, 이러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수양을 하지만 ‘반드시 목표에 도달하겠다는’ 욕심마저도 버리는 것이다. 

이상에서 보듯이 프롬이 인간들이 겪는 불행과 고통의 원인과 그것의 극복방안 그리고 우리가 구현해야 할 이상적인 삶으로서 제시하고 있는 것들은 불교가 제시하고 있는 것들과 극히 가깝다. 그렇다고 해서 프롬과 불교가 모든 면에서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양자는 서로 대화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프롬은 불교의 통찰을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불교 외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 그리고 실존철학의 통찰도 받아들인다. 이렇게 다양한 사상들을 통합하면서 프롬은 독자적인 사상을 구축했다. 따라서 프롬의 사상은 핵심 사상에서는 불교와 동일하지만, 세부적인 면에서는 불교를 보완할 수 있는 많은 통찰을 담고 있다. 

특히 사회구조와 사회적 성격과 관련해서는 프롬은 상세한 연구를 하고 있지만 불교에서는 그것들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기 때문에 불교는 프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불교 역시 프롬의 사상에서 볼 수 없는 독자적인 통찰을 담고 있기에 프롬의 사상을 수정하거나 보완할 수 있다. 특히 불교의 인간관은 프롬관을 보다 정치하게 다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프롬과 불교 사이의 생산적인 대화를 매개함으로써 독자들이 인간과 사회 그리고 세계에 대해서 보다 깊은 통찰에 도달하도록 돕고자 했다. 이 책은 전문학술서와 대중적인 교양서의 중간 정도를 지향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에서 나는 프롬의 사상이나 불교를 일반 독자들에게는 낯선 전문적인 용어들을 피하면서 최대한 일상적인 우리말로 설명하려고 했다.


박찬국 서울대·철학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니체와 하이데거의 철학을 비롯한 실존철학이 주요 연구 분야이며, 최근에는 불교와 서양철학을 비교하는 것을 중요한 연구 과제 중의 하나로 삼고 있다. 『원효와 하이데거의 비교연구』로 ‘청송학술상’, 『니체와 불교』로 ‘원효학술상’, 『내재적 목적론』으로 운제철학상 등을 받았다. 그 외 저서로는 『초인수업』, 『그대 자신이 되어라―해체와 창조의 철학자 니체』, 『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 등이 있고, 주요 역서로는 『헤겔 철학과 현대의 위기』, 『마르크스주의와 헤겔』, 『실존철학과 형이상학의 위기』, 『니체 I, II』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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