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섭의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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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의 인문학
  • 황병익 경성대·고전문학
  • 승인 2022.10.16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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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통섭(統攝, consilience)은 설명의 공통 기반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사실과 이론을 연결해나가는 지식의 통합이다. 통섭은 1840년에 윌리엄 휴얼이 『귀납적 과학의 철학』에서 처음 사용했고, 우리에게는 최재천 교수 등이 에드워드 윌슨의 책을 소개한 후 익숙해졌다. 주자학의 굴레에서 벗어나 서학을 수용하고 천문학과 수학에 조예가 깊었던 홍대용, 우주 사이의 일이 곧 나의 일이요 나의 일이 곧 우주 사이의 일임을 되뇌었던 정약용의 폭넓은 관심도 학문의 경계를 뛰어넘는 지식의 통섭에서 그리 멀지 않다.

요즘엔 좀 잠잠하지만, 한때는 지식의 융합이나 공동연구만이 창의와 혁신의 원천이고, 첨단지식 창조의 원동력이라며 떠들썩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본래 학문은 그 경계선을 긋지 않았는데, 세상이 빠르게 변화, 발전하면서 전문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면서 대학이나 연구기관부터 좁고 깊은 지식 중심의 체제를 갖추었다. 그러나 개별분야 전문 지식만으로는 인간사회의 얽히고설킨 문제들을 해결하지도 못하고, 균형 잡히고 객관적이며 명확한 관점을 제공할 수 없다 보니 다시 통섭의 필요성을 외치게 되었다. 사실상 인종갈등, 무기 경쟁, 낙태, 환경, 가난 등 많은 문제들은 과학과 인문·사회과학적 지식을 통합하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다. 『수학이 필요한 순간』(김민형)에서는 MIT 기계공학과에서 자율주행자동차에 들어갈 프로그램을 만들 때, 수학이나 확률의 문제와 함께 Trolley Dilemma의 철학적 문제, 윤리와 형이상학적 문제를 함께 고려한다니 통섭은 미래 학문의 피할 수 없는 방향설정으로 보인다.

내가 전공하는 고전시가에서도 통섭이 필요했다. 2개의 태양이 나타났다는 삼국시대의 기록을 그동안 반역세력의 등장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상징적 표현이라고 해석했다. 그런데 기록의 연도와 실제 반역세력이 생긴 연도가 4년이나 차이가 난다. 『삼국사기』가 예언서가 아닌 이상, 해명을 필요로 했다. 마침  『고려사』 의종13에 해무리와 청적백색의 햇귀가 서북쪽에 2개 있었고, 3중의 배기(背氣)가 있었는데, 뭇사람들은 이것을 바라보며 3개의 태양이 같이 떴다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었고, 니넘연구소 조선고대관측기록조사보고서 <풍운기>(1748년)에서 햇등, 해모자, 해테두리(해무리), 해, 햇귀를 표시한 그림을 볼 수 있었다. 환일(幻日) 현상의 실체를 파악하는 순간이었다.

<처용가>에서 처용의 아내를 범했다는 역신의 존재를 파악하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오주연문장전산고』는 626년, 일본에 흉년이 들어 우리나라에 와서 쌀을 구해 싣고 간 일화를 소개한다. 내가 오사카(大阪, 나니와浪華)에 정박할 때, 배 안에는 포창(천연두)을 앓는 세 소년이 있었다. 3명의 소년에게는 각각 늙은 남자, 여자 어른, 수도승 귀신이 붙어있었다고 귀신을 눈에 보는 듯 적었다. 귀신들은 자신들도 이 병을 앓다가 역신이 되었고 금년부터 주변에 이 병을 퍼뜨릴 것이라 했다. 바이러스나 세균의 실체를 알 수 없으니, 20세기 초까지도 우리 조상들은 천연두 등 전염병을 귀신이 옮기는 병이라 여기고 자극하지 않으려고 했다. 같은 이유로 약을 쓰거나 병원을 가지 않았다. 세브란스 초대원장 에비슨은 당시 우리나라에 천연두가 창궐했지만, 천연두 치료를 위해 왕진을 간 적이 별로 없다고 고백했다. 처용가 이해를 위해 『두창경험방언해』 등 피부질환과 의료민속을 연구해야 할 순간이었다.

향가를 노래 부르니 혜성이 사라졌다는 일은 사실상 거짓 믿음이지만, 우연히 그렇게 되더라도 노래를 부른 때문으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일본군의 침입과 퇴각은 경우가 다르다. 상식적으로, 향가를 불렀다고 침략하던 왜군이 쉽게 물러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시가 연구에서 불교사상과 역사 연구는 통섭이 아니라 기초 작업이라는 생각이 강하다. 그 과정에서 진평왕 때 일본이 신라를 노리던 원인을 알게 되었고, 『일본서기』를 통해 신라 침략을 오랫동안 준비하다 자체 사정으로 되돌아간 사연도 찾을 수 있었다. 중국 후난성 창사시 교외에서 발견된 한나라 귀족 마왕퇴 무덤에서 나온 비단에 새겨진 “혜성이 나타나면 작은 전쟁 3번, 큰 전쟁 7번이 난다, 임금에게 화가 있다”는 기록을 <혜성가> 연구에 대입한 것도 통섭의 재미를 알고 난 다음의 일이다.

잣나무가 고사할 기미를 보이다가 회생했다는 문헌을 보고는 잣나무의 생태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다. 남부에서는 해발 500m 이상, 중부와 북부에서는 300m 이상에 분포하고, 1,100~1,200m 지대에 가장 많으며, 잣나무가 자라기 좋은 환경은 대기 중에 습기가 풍부하고, 토양이 깊고, 비옥한 땅! 잣나무의 병해에는 잣나무털녹병을 위시하여 침엽에 발생하는 잎떨림병, 잎녹병. 가지나 줄기에 발생하는 피목가지마름병….

꾀꼬리가 부끄러움 많은 새라는 것, 비오리 수컷은 녹색 암컷은 갈색 댕기를 가졌다는 사실도 다 도움이 되는 정보다. 시조 <모란은 화중왕이요~>에 나오는 비유는 패랭이와 접시꽃의 생태를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렵고, 두견새 소리를 들어보기 전에는 왜 두견새가 한(恨)의 대명사가 되었는지를 알지 못했다. 조류학자들이 마취총을 쏘아 인식표를 달아서 확인해 준 기러기의 평생 절개는 시조 “새벽서리 지는 달에 외기러기 울며 갈제~”를 더욱 애절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다. 백로의 검은빛 속살을 확인할 때나 내륙을 배경으로 지은 <도산십이곡>에 갈매기가 등장하는 까닭을 조류학자에게 여쭐 때는 어린아이처럼 설레었다.

영역을 넓혀 새로운 답을 찾아가고 내 학문 세계를 보편적 잣대로 검증해가는 통섭의 기쁨은 크다. 그러나 다른 학문 분야 전공자를 의식하여 뒤통수가 따끔거리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내 능력의 미약함과 밑천의 바닥을 알기 때문에 늘 두려움도 가진다. 예를 들어보자! 최근에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인기를 끌었다. 지능지수 162인데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가 남다른 관점과 시선으로 갖가지 난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그렸다. 우변호사가 번뜩 좋은 해법을 떠올릴 때마다 고래가 수면 위로 오르거나 헤엄치는 그래픽 화면이 나왔다. 이 드라마의 작가가 혹 최재천의 유튜브 <아마존>이나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를 통해 고래의 생태를 공부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주연 배우 또한 연기를 위해 자폐 캐릭터의 삶을 섭렵했으니 통섭적 자세라 할 만하다. 장애 변호사에 고래 그래픽은 고래의 동료애를 떠올리게 했다. 고래는 엄연히 허파로 숨을 쉬는 젖먹이동물이므로, 부상을 당해 움직이지 못하면 숨을 쉴 수 없어 쉽사리 죽는다. 그런 친구를 혼자 등에 업고 아픈 고래가 충분히 기력을 되찾을 때까지 떠받치고 있는 고래의 모습은 우리를 사뭇 숙연하게 한다. 작가의 통섭과 통찰이 인간사회와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도록 긴 여운을 남겨주었다. 이에 나 또한 무슨 작은 효과가 있을 때까지, 두렵고 떨려도 통섭을 계속해보고자 한다.

통섭의 인문학을 하는 중에 좋은 버릇도 생겼다. 낯선 공간에서 무관심하게 지나쳤던 주변 분야의 자료나 문화유산을 꼼꼼히 살피는 버릇이다. 쌍계사 진감선사탑비를 보러갔을 때, 그 뒤편 야외 불상 곁에 새겨진 문구! “직심(直心)으로 부지런히 수행하라.” 직심은 신라향가 <도솔가>에 나오는 구절이다. 진리를 바르게 보는 마음, 한결같은 마음, 정직하고 거짓 없는 마음을 뜻한다. 경전이 아닌 야외에서 이 단어를 우연히 봤을 때의 가슴은 벅찼다. 합천 해인사 입구 농산정 앞 너럭바위와 전라도의 한 사찰 입구의 바위에서 석각의 글씨체와 크기가 똑같음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이범진(李範晉). 100여 년 전에 법무대신을 지낸 인물로, 헤이그 밀사 이위종의 부친이다. 요즘과 같이 돌을 다루는 기계장치가 없었을 텐데, 이 석각을 위해 정을 든 석수를 데리고 다녔을까? 어느 정도의 벼슬이면 당당히 시를 새기고 이름을 새겼던 것일까. 그저 유행에 따른 것인가, 공명심에 가득했던 것인가? 후속 세대와 소통을 하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통섭은 의문을 품고 경험하고 관찰하고 도전할 때 효과가 있을 것 같다. 세월이 흘러 더 나이가 들어도, 모르는 것, 낯선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줄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끝없는 지식 세계에서, 어떤 분야에 대한 나의 무지는 늘 새로운 출발점이 된다.


황병익 경성대·고전문학

현재 경성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고전시가론’, ‘한국문학의 역사’, ‘고전문학 이야기 문화유산’, ‘한국인의 놀이문화’ 등을 가르치고 있다. 고대시가·향가·고려가요·시조 장르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면서, 한국의 고전문학과 전통문화유산에서 대중문화콘텐츠를 발굴하고 가공하는 일에 늘 관심을 가지고 있다. 단독 저서로 『고전시가 다시 읽기』(2006), 『고전시가 사랑을 노래하다』(2010), 『고전시가의 숲을 누비다』(2015), 『고전시가 시대를 노래하다』(2016), 『신라향가 천년의 소망』(2020), 『노래로 신과 통하다』(2021)가 있고, 〈황조가>, <서동요〉, 〈도솔가〉,〈처용가〉, 〈청산별곡〉, 〈동동〉, 〈한림별곡〉, 〈도산십이곡> 등을 주제로 학술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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