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의 역설과 학교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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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의 역설과 학교 교육
  • 김태훈 공주교육대학교·윤리교육
  • 승인 2022.10.16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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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우리는 주변 사람들이 부도덕한 행동을 하거나 그런 행동을 당하면 인간의 도덕성에 회의감이 드는 경우가 많다. ‘위선’은 그러한 부도덕한 행동의 증표로 회자된다. 그리고 종국적으로 그에 대한 비판은 학교 교육, 특히 도덕교육의 무용론으로 이어진다. 어느 나라든 학교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 중 하나는 도덕적인 인간을 육성하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이러한 교육 목표는 역대 초·중·고 교육과정의 총론에서 확인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이 인간의 도덕성에 회의감을 갖고 있다면, 최소한 해방 이후 우리나라 학교 교육은 적어도 도덕적 인간의 육성 차원에서는 실패로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러 자료는 어느 시대에나 당시의 사람들로부터 그런 탄식이 있어왔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위선의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위선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진실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단지 본성에 이끌리는 그 자신일 뿐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모든 인간은 본성의 한 부분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계속 지속시키려는 충동, 곧 스피노자가 말하는 ‘코나투스(conatus)’를 소유하고 있어 천성적으로 무엇보다도 먼저, 그리고 주로, 자기 자신을 돌보기 마련이다. 사람들이 자기 이외의 어떤 사람보다도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은 그런 면에서 자연스럽고 또한 정당하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행동 방식이 자신에게 잠시 유리할지 모르나 궁극적으로는 집단의 경쟁력이 떨어져 결국 개인 자신에게도 손해가 된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오랜 진화과정에서 구성원들이 친사회적 행동을 보이는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과의 경쟁에서 이길 가능성을 증가시켰고, 그 결과 인간의 뇌에는 협력을 촉진하는 공감, 정직, 관대, 호의, 존경, 감사, 수치심, 죄책감, 충성심, 겸손 등 일련의 친사회적 정서가 발달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들의 본성이라 할 수 있는 이타성과 이기성의 조화를 강요하는 ‘계약’이 가능해진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도덕규범은 그러한 계약의 일종이다. 인간 집단에 그런 규범이 등장했다는 것은 인간관계의 유지에 필요한 조화가 집단 구성원들에 의해 언제든 위태로운 상황에 놓일 수 있음을 반증해준다. 이는 집단 구성원들이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을 억압하는 특정한 제약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게 된 근원이라 할 수 있다. 이제 계약은 개인들의 생존 보호 수단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 계약이 구속력을 갖게 된 순간부터 개인들은 예전과 같지 않게 되었다. 자신의 생존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본성적 욕구를 억제해야만 하였다. 그런 맥락에서, 인간이 도덕적으로 성숙해 간다는 것은 본능의 작용에서 오는 자기보존의 원리에 따른 지배로부터 다른 사람들과의 협력이 요구되는 계약의 원리에 따른 지배로 변화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즉, 옳은 일을 하는 것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들이 상호 이익을 위해 합의한 규칙을 따르는 것이다. 현재 인간의 모습은 이러한 사회적 적응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도덕규범은 다른 사회적 계약들과는 다른 독특한 특성을 내포한다. 도덕규범은 다른 사회 계약처럼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고 행동을 구속한다는 점에서는 같으나, 특정인들과 상호간에 맺는 사회적 계약과는 다르게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이면서도 그 강제성은 약하다. 그래서 사람들의 심리 내부에서 자연적으로 작동하는 본성과 이를 억제하고 구속하는 도덕규범이 상충하는 구조가 유지되는 한, 사람들에게 부도덕한 행동은 필연적으로 등장하게 되며, 도덕규범이 다양한 생활영역에서 그 실체를 갖추어 가면 갈수록 사람들의 위선은 그와 비례하여 등장할 개연성이 있다. 왜냐하면, 자연적 본성 가운데 이기성은 우리의 의식과 상관없이 작동하나 이타성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정돈하는 노력을 요구하는 특성이 있어 그에 소홀하거나 방심할 경우 부도덕한 행동으로 이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추론적 존재’라는 지적이나 맹자가 교육목적을 ‘구방심(求放心)에 두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후자의 특성에서 연유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위선은 사람들이 사회적 계약으로서의 도덕규범에 동의하는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위선은 인간이 타고난 특성인 이기성과 이타성의 조화를 왜곡하는 것으로, 인간에 의한, 인간의 것이다. 다른 동물들에게는 그런 심리적 부조화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위선적이지 않은데, 인간이 위선적으로 된 것은 자연인으로부터 인간을 만들려는 사회적 시도의 결과에서 비롯한 것으로, 학교 교육은 그 중심에 있었다. 국가, 시민 사회, 종교 등의 집단은 모두 도덕적 의무와의 피할 수 없는 계약이다. 사회적 계약으로서 도덕규범이 존재하는 한,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본래적 특성을 필연적으로 제한한다는 점에서, 위선은 인간 사회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모순이다. 

코나투스를 자신의 본성으로 지닌 존재라면, 우리는 누구나 자아 혹은 자아정체성의 개념을 포괄하는 것으로서 ‘자기체계(self-system)’를 발달시킨다. 거기에는 이기성과 이타성이 그 나름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자기 자신과 주변의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고, 평가하여 자신에게 설명하는 일종의 자기 내면의 해석자로서 역할을 한다. 도덕 판단은 물론이거니와 개인이 내린 판단은 모두 그 사람의 자기체계 내에 통합된 것으로서의 전체적인 세계관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위선은 자기체계 내부의 부조화에서 비롯한다. 그리고 우리 인간의 도덕성을 자극한다. 위선의 역설이다.

학교 교육은 학생들이 자기체계를 구성해가는 과정에서 그 근간에 위치한다. 학교 교육의 주요 기획 중 하나가 도덕적인 사람을 길러내는 데 있음을 인정한다면, 그 과업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일차적으로 해야 할 일은 그들이 즐겁게 투자할 수 있는 삶의 형태를 안내하는 일일 것이다. 그것은 학생들이 자신의 내부에서 작동하는 자기체계의 실체를 발견하고, 위선의 역설을 깨우치며, 이기성과 이타성이 최적의 조화를 이루어나가는 데 도움을 주는 일일 것이다. 학교 교육은 이러한 접근을 통해 일방적인 사회화 과업으로 전락하지 않으면서 학생들 개개인의 자기 체계 구성을 돕는 담대한 노력으로 자리매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태훈 공주교육대학교·윤리교육

서울교육대학교와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윤리교육과에서 도덕교육 전공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조지아대학교와 중국 베이징사범대학에서 방문학자 자격으로 연구 활동을 하였고, 한국초등도덕교육학회장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공주교육대학교에서 윤리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며 도덕성 발달에 관한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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