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식단 균일화와 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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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식단 균일화와 생태계
  • 김환규 편집기획위원/전북대·생리학
  • 승인 2022.10.15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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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환규의 〈과학에세이〉

 

                      과학자들이 추천하는 인류세 시대의 건강식단. 사진: 이트-랜싯(EAT-Lancet) 포럼

세계화로 인해 전 세계 인류의 식단이 보다 균일화되었으며, 그 결과 여러 분야에서 위험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중소 도시의 식품점에서도 다양한 중국산 식재료, 칠레산 포도 같이 소비자들이 접할 수 있는 식자재는 어느 때보다 다양해졌다. 인류가 경제성장과 도시화의 이점을 취함에 따라 밀, 옥수수와 콩 같은 기본적인 주요 곡물에 육류와 유제품, 가공식품들이 추가됐으며, 현재의 인류는 우리나라에서 햄버거, 베트남이나 터키 음식을, 미국 내에서 초밥을 즐길 수 있듯이 어느 나라에 거주하든 인류는 다양한 식품을 섭취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판매 식품이 다양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실제로 섭취하는 주요 식품은 균일화되고 있으며, 그 결과 또 다른 위험이 초래되고 있다.

최근 미국국립과학원회보에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인류의 식단은 밀, 옥수수와 콩 같은 소수의 주요 곡물이 전체의 약 36%를 차지하여, 카사바나 인디안감자 같은 지역 고유의 곡물을 대체하고 있다. 국제열대농업센터(CAIT)의 커리(Colin Khoury) 박사에 의하면, 인류는 더 많은 칼로리, 단백질과 지방을 소비하게 되면서 옥수수와 콩 같은 소수의 주요 곡물에 더욱 의존하게 되었다. 이들 주요 곡물은 인류의 기근과의 투쟁에는 결정적이었으나, 그로 인해 다른 곡물과 채소의 소비가 감소하였으며 결국 작물 종의 다양성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인류의 식단 균일화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 중 하나가 비만 문제이다. 이전에는 주로 미국과 멕시코 등 일부 국가에서 나타났던 비만 문제가 세계 차원의 문제가 되어 우리나라를 비롯한 개발도상국가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평균 체중은 1980년 이래 거의 1.5배 증가되었으며, 그 결과 당뇨병 같은 대사성 질환이 확산하였다.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에자티(Majid Ezzati) 교수는 이런 과정이 지속된다면, 2025년까지는 비만과 당뇨병의 상승세를 멈추게 하겠다는 WHO의 목표는 실현 불가능할 것이라 하였다. 

옥수수와 콩 같은 곡물로 사육한 육류와 유제품의 ‘탄소발자국’은 식량자원으로서 농업의 역할을 대체하거나 몇십 배 더 크다. 할리우드와 블록버스터를 통한 전 지구적 문화 공유와 영어 사용의 보편적 확산을 통한 균일화가 지역 정체성과 고유 언어의 구축을 일으키듯 식단의 균일화는 각 지역 고유의 작물 종과 진기한 맛 문화의 소실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작물을 위협하는 질병, 해충, 또는 기후변화에 극도로 취약하다는 점이다. 작물 종 다양성의 감소는 결국 생태계의 안정성을 해치게 된다. 종 다양성은 인류에게 생태계 서비스를 제공하고 농업 생태계와 자연계의 회복력을 보장한다. 정주 농업 사회의 출현과 현대 농업의 발달은 인류가 식량으로 의존하는 야생생물, 가축, 채소, 과일과 다른 작물 종의 현저한 감소를 일으켰다. 이런 추세라면, 인류가 사용하는 식량 대부분은 소수의 작물로 제한될 것이며, 전체 종수는 계속 감소할 것이다. 

식단의 균일화는 다양한 유전적 배경을 갖는 여러 품종의 육종과 재배의 기회를 제약할 것이다.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연구팀이 ‘네이처 푸드지’에 발표한 바에 의하면, 식량 생산과 교역은 인구집단 건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토양 영양, 수계 및 온실가스 배출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 지역적 그리고 전 지구 차원의 환경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연구팀은 한국, 중국 및 대만의 경우, 지난 50년에 걸쳐 식량 공급원으로 육류와 달걀, 설탕과 오일 등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 변화를 지적하였다. 이에 비해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은 식량 공급원의 변화가 거의 없었다. 

단일재배란 한 장소에 단일 작물을 반복적으로 재배하는 것이다. 단일재배의 주요 대상 곡물은 옥수수, 밀과 콩 같은 알곡류, 알팔파와 토끼풀 같은 가축용 풀 또는 면화 같은 섬유원 등이다. 이들 곡물을 최대로 수확하기 위해 곡물회사들은 특별한 품종을 육종하고 비료와 살충제를 사용한다. 이상적인 단일재배에 대한 기술적 진보 덕에 작물은 자연계에서 투쟁하지 않고 자랄 수 있게 되었다. 단일재배는 필연적으로 종 다양성을 감소시키게 된다. 건강한 생육지는 높은 종 다양성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건강한 삼림은 여러 종류의 척추동물, 식물 종뿐만 아니라 수천 종의 곤충과 다른 무척추동물의 보금자리이다. 농업은 인류에 의해 수천 년간 실행되어 왔기 때문에 단일재배는 인류가 자신의 선택으로 육종하는 지점에서는 완벽하였으며, 인류는 ‘최상’의 형질을 이용하여 원하는 생산량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단일재배 농업은 다른 주변 요소들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특정 질병이 발생하면 그 질병은 같은 유전자를 가진 작물뿐만 아니라 나머지 작물과도 접촉하게 되어 결국 전체 집단을 휩쓸어버리게 된다. 

바나나는 쌀, 밀과 우유 다음의 네 번째로 많이 활용되는 작물이다. 세계에서 생산되는 바나나의 약 90%는 가난한 나라에서 주식으로 이용되는데, 최소 4억 명 정도가 일일 필요 칼로리의 15~27%를 바나나에 의존한다. 2012년 기준으로 수출된 바나나의 양은 1,650만 미터톤에 이르며, 미국인들은 사과와 오렌지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바나나를 먹는다. 그러나 몇몇 질병이 바나나를 초토화시켰다. 20세기 초반을 지나면서 바나나 곰팡이병의 원인균인 Fusarium oxysporum은 유일한 수출 바나나 품종이었던 ‘그로스 미셸’을 사실상 멸종시켰다. 바나나를 검게 만드는 질병인 ‘블랙 시가토가(Black Sigatoka)’는 수확량을 반감시켰으며, 오랫동안 이 질병을 통제하는 데 사용했던 살균제에 대해 내성을 나타냈다. 이후 캐번디시 바나나 품종을 공격하는 ‘바나나 마름병’이 아시아를 통해 확산되었으며, 현재 전 세계로 수출되는 바나나의 70%를 생산하는 남미를 위협하고 있다. 캐번디시 바나나가 개발도상국에서 생산되는 바나나의 99%를 차지한 이유는 이 종이 R1으로, 이전의 바나나 곰팡이병에서 생존한 종이기 때문이다. 길포드(Gwynne Guilford)가 쿼츠에 기고한 바와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확산한 R4라는 ‘바나나 HIV’ 때문에 바나나 산업이 심각한 손상을 입어 연간 440억 달러의 바나나 생산량이 89억 달러로 급감하였다.

옥수수, 콩, 밀과 쌀 같은 주요 곡물은 대부분 인류가 섭취하는 것이 아니라 가축의 사료로 이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내에서 생산되는 옥수수의 12%만 인류가 식용으로 사용한다. 육류에 대한 수요는 엄청나 단일재배 작물을 이용하여 가축 사육에 필요한 곡물을 생산하고 있으며, 전 세계 곡물의 약 40%가 가축 사육에 사용되고 있다. 단일 종의 작물을 같은 장소에서 반복적으로 재배하면 작물의 특이적 영양소 요구성 때문에 토양으로부터 특정 영양소가 고갈된다. 2012년 현재, 지구의 토양은 회복 가능한 영양소 비율의 13% 이상이 고갈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단일재배 대신 다양한 작물을 교대로 경작하면 토양에 존재하는 영양소와 무기질이 자연적으로 회복된다. 질소는 작물 생장에 필수적인 영양소이다. 콩과 식물은 대기로부터 질소를 고정하지만 옥수수 같은 식물은 그런 능력이 없다. 만약 질소-고정 식물과 비 질소-고정 식물 사이에 윤작이 없다면 토양은 이 필수적인 영양소를 소실할 것이다. 동일 장소에서 단일 작물을 계속 재배하기 위해서는 이들 영양소를 다양한 화학비료 형태로 살포해주어야 한다.  

영양소가 결핍된 토양은 건조해지고 침식작용에 취약해지며, 유수 오염은 단일재배 농지 근처의 수계를 오염시킨다. 단일재배 작물을 보호하기 위한 살충제의 사용은 수생생물과 다른 야생생물에도 해를 끼치게 된다. 살충제 살포로 고통 받는 특별한 곤충이 꿀벌이다. 꿀벌은 식물의 수분 매개체이다. 꿀벌과 일부 곤충들은 단일재배 작물에 사용되는 살충제의 신경독소에 취약하기 때문에, 살충제 살포는 꿀벌 군락 붕괴의 원인이다. 인류 역시 단일재배의 부정적 영향에 노출되어 있다. 살충제가 살포된 지역 근처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오염된 물로부터 질산염을 섭취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음용 우물의 약 58%에서 2mg/리터 이상의 질산염이 검출되었으며, 이런 지역의 어린이들에게 청색증이 빈발하며, 성인들은 위궤양, 방광암과 식도암의 발병률이 증가한다고 보고되었다. 단일재배 농지는 특정 작물 종과 경쟁하는 잡초를 끌어들이게 되며, 이러한 이유로 제초제가 사용된다. 수년간의 제초제 살포 뒤에는 제초제에 저항성을 띠는 ‘슈퍼잡초’가 출현하게 되며, 그 결과 더 치명적인 제초제의 사용이 뒤따르게 된다. 생태계는 복잡한 그물망으로 모든 종은 상호의존적이어서 전체로서 함께 작동한다. 종 다양성은 생명체의 스펙트럼을 증가시키며 온전한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보증한다. 식량 공급원이 다양해야 인류가 번창할 수 있고 생태계가 건강해지며, 이것이 인류가 취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생활양식이다. 


김환규 편집기획위원/전북대·생리학

전북대 생명과학과 교수. 전북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 교환교수, 전북대 자연과학대 학장과 교양교육원장, 자연사박물관 관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생물학 오디세이』, 『생명과학의 연금술』, 『산업미생물학』(공저), 『Starr 생명과학: 생명의 통일성과 다양성』(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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