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의 경쟁과 공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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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의 경쟁과 공생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2.10.15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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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연단]

■ 열린연단 〈자유와 이성〉 제22강_ 김응빈 연세대 교수의 「생태계의 경쟁과 공생」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아홉 번째 시리즈 ‘자유와 이성’ 강연이 매주 토요일 서울의 네이버 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자유는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자기실현의 원리라고 할 수 있으며, 그간 인류가 걸어온 길은 자유 실현을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합리성의 증대는 자유의 신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섯 섹션 총 44강으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고전 시대로부터 근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자유 담론을 검토함으로써, 자유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확장하고 미래 사회를 위한 새로운 비전을 열어보고자 한다. 자유의 이념과 지향에 관한 동서양의 지적 자산을 통시적으로 고찰하는 세 번째 섹션 ‘기술적 환경과 인간의 자유’ 제22강 김응빈 교수(연세대 시스템생물학과)의 강연을 발췌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생태계의 경쟁과 공생


김응빈 교수는 “살아 있는 생물과 이를 둘러싼 주변 환경을 통틀어” 일컫는 ‘생태계’, 그 안에서 “모든 생명체는 결국 ‘먹고 먹히는 관계’”, 소위 “약육강식 법칙이 지배하는 생존 경쟁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만큼 “‘생존과 번식’을 위한” 무한 경쟁을 “생물학적 운명이라고 체념하기 쉽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흔히들 하찮게 여기는 미생물 삶의 참모습을 알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면서 “가장 단순하지만, 시원적 삶의 형태를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미생물을 대상으로 경쟁과 공생의 생물학적 원리” 탐구에 나서려 한다고 밝힌다. 보다 구체적으로 “자연에서 환경 또는 경쟁 상대의 끊임없는 변화에 맞서 계속해서 변화하지 못하는 생명체는 결국 도태된다”라는 “엄혹한 생존 수칙”, 즉 ‘붉은 여왕 가설(Red Queen Hypothesis)’이 아닌 “생명체 진화 과정에서 경쟁보다는 협동의 역할을 강조”하는 ‘검은 여왕 가설(Black Queen Hypothesis)’을 따라 “서로 다른 여러 미생물이 어우러진 공동체”를 살펴보면 “세균을 비롯한 미생물 대부분”이 호혜적 상호작용을 통한 “안정성과 생산성을 확보하여 군집을 번성케” 하고 있음을 논한다. 결국 “현재 우리가 아는 한 지구는 다양한 생물이 어우러져 사는 유일한 행성”인데, 그 생물 다양성이야말로 “공생의 시너지 효과”이며 “그러므로 공생은 생명체들의 오래된 미래”라고 이야기한다.

 

지난 9월 3일, 김응빈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자유와 이성>의 22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들어가는 글

살아 있는 생물과 이를 둘러싼 주변 환경을 통틀어 ‘생태계’라고 한다. 생태계에서 모든 생명체는 결국 ‘먹고 먹히는 관계’에 놓여 있다. 이른바 약육강식 법칙이 지배하는 생존 경쟁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말 그대로 살아가기, 곧 ‘생존과 번식’을 위한 몸부림이기에 무한 경쟁은 생물학적 운명이라고 체념하기 쉽다. 그런데 흔히들 하찮게 여기는 미생물 삶의 참모습을 알고 나면 생각이 달라진다.

최초 생명체가 정확하게 언제 탄생했는지 모르지만, 세균을 비롯한 미생물이 적어도 36억 년 동안 생명 진화를 주도해왔음은 확실하다. 가장 단순하지만, 시원적 삶의 형태를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미생물을 대상으로 경쟁과 공생의 생물학적 원리를 탐구해보고자 한다.


1. 생태계 개관

‘생태계(ecosystem)’는 생물 구성 요소와 무생물 구성 요소가 상호 의존적으로 통합된 시스템이다. 생태계에서 생물 종(species)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작용은 한마디로 ‘먹고 먹히는 관계’이다. 생태학에서는 이를 ‘먹이그물(food web)’이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생태계의 생물 구성 요소는 생산자ㆍ소비자ㆍ분해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먹이그물이라는 에너지와 영양물질의 이동 얼개를 통해 서로 연관되어 있다.

생산자에서 출발한 물질은 최종적으로 분해자에게 모였다가 다시 생산자로 돌아온다. 궁극적으로 모든 생명체는 죽음을 맞이하고 그 사체는 분해되어 생산자가 새로운 영양분을 만드는 원료로 다시 쓰이기 때문이다. 산 자와 죽은 자를 연결해주는 분해자 역할은 세균과 곰팡이를 비롯한 미생물만이 해낼 수 있다. 이처럼 미생물은 지구 생태계의 화학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모든 생명체 존립에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생지화학적 순환(Biogeochemical Cycle)

생태계를 작동시키는 가장 중요한 무생물 구성 요소는 에너지와 물질이다. 태양에서 유래하는 에너지는 생명체와 먹이그물을 통하여 활용 또는 저장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열 형태로 지구 생태계를 빠져나가기 때문에 에너지 흐름은 일방통행이다. 반면, 물질은 외부에서 유입되는 것이 아니라 순환하게 된다. 이처럼 생태계 내에서 물질들이 생물과 무생물 구성 요소 사이를 순환하는 현상을 ‘생지화학적 순환(biogeochemical cycle)’이라 한다. 다시 말해서, 지구의 모든 물질은 항상 그 안에 있으면서 생물 구성 요소와 무생물 구성 요소 사이를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지구라는 거대한 생태계의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2. 바다를 품은 박테리아 가문

펠라지박터 유비크(Pelagibacter ubique)라는 세균은 이름에 그 특징을 그대로 담고 있다. 속명은 ‘원양의(pelagic)’와 ‘박테리아(bacteria)’를 뜻하는 단어를 합친 것이고 ‘어디에나 있는(ubiquitous)’을 뜻하는 종명은 이 세균이 해당 환경에 널리 분포함을 알려준다. 실제로 펠라지박터 가문(속) 구성원은 전체 해양 미생물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한다. 이들은 먹이(양분)가 매우 적은 환경에 잘 적응되어 있다. 

대부분 생물은 비슷하거나 같은 기능을 가진 유전자를 여러 개 가지고 있다. 이와 다르게 유비크는 생존에 필요한 유전자를 딱 하나씩만 가지고 있다. 그런데 심층 분석 결과, 유비크 유전체에서 일부 아미노산 합성에 필요한 유전자의 부재가 발견되었다. 필수 유전자가 없어지면 곧바로 그 개체의 소멸(도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들이 사라지기는커녕 그 모습 그대로 번성하고 있다.

유비크 무리를 이루는 구성원의 결손 유전자는 각기 다르다. 말하자면, 다른 결점을 가진 세균들이 함께 뭉쳐서 서로 품앗이를 하며 산다. 이들은 각자 자신이 만들 수 있는 아미노산을 조금 넉넉히 만들어, 그 일부를 몸(세포) 밖으로 분비해서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준다. 이런 나눔을 통한 공생 전략 덕분에 부족한 환경에서 부족한 세균들이 소박하지만 당당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후속 연구 결과들은 적어도 대양에서는 이런 아름다운 공생이 예외가 아니라 하나의 원칙임을 확인해주었다. 

 

3. 붉은 여왕 vs. 검은 여왕

생태계에서 생명체 간 상호작용이 각 개체에 미치는 영향은 보통 ‘적응도(fitness)’로 가늠한다. 동물행동학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이 개념에 따르면 모든 생명체는 적응도를 높이기 위해 이기적으로 최선을 다한다. 이는 ‘붉은 여왕’으로 상징되는 전통 진화론과도 잘 부합한다. 자연에서 환경 또는 경쟁 상대의 끊임없는 변화에 맞서 계속해서 변화하지 못하는 생명체는 결국 도태된다. 이런 엄혹한 생존 수칙을 두고 1973년 미국의 한 진화생물학자는 ‘붉은 여왕 가설(Red Queen Hypothesis)’을 제시했다. 

결국, 주변의 부단한 변화, 다시 말해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끊임없는 자기 변화밖에 없다는 말이다. 붉은 여왕 가설은 승리를 다투는 경쟁에 주목하는 현대 진화 이론의 핵심을 쉽고 명쾌하게 전해준다. 그러나 유비크 무리가 보여주는 호혜적 의존성에 대해서는 붉은 여왕이 입술을 꾹 다문 채 묵묵부답이다. 속절없이 답변을 기다리던 중 반대되는 시각으로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검은 여왕 가설(Black Queen Hypothesis)’이 등장했다.

2012년 발표된 이 가설은 ‘하트(♥)’라는 카드 게임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이 카드 게임은 조커 없이 카드 한 벌(52장)을 가지고 보통 네 명이 한다. 한 사람당 카드 13장을 나누어준 다음, 일정한 규칙에 따라 카드를 내놓으며 주고받는다. 게임이 끝나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카드 중에서 모든 하트와 스페이드(♠) 퀸(Q) 카드만을 골라낸다. 모든 하트 카드는 각각 1점이고 스페이드 퀸은 13점으로 계산한다. 그리고 총점이 낮은 순서로 순위가 결정된다. 스페이드 퀸(검은 여왕)을 가지고 있으면 꼴찌 확정이다. 게임에 이기고 싶다면 검은 여왕을 내려놓아야 한다. 붉은 여왕과는 대조적으로 검은 여왕은 생명체 진화 과정에서 경쟁보다는 협동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검은 여왕 가설은 서로 다른 여러 미생물이 어우러진 공동체, 즉 ‘군집’ 연구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세균을 비롯한 미생물 대부분은 자신이 만든 물질을 세포 밖으로 항상 조금씩 분비할 뿐만 아니라, 이를 만드는 유전자도 종종 잃어버린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요소가 세균 간 유대 관계를 형성하는 기초가 된다. 나아가 이렇게 맺어진 상호작용이 안정성과 생산성을 확보하여 군집을 번성케 하는 원동력이라고 추정한다. 비유컨대, 여러 미생물이 어울려 살면서 마치 참석자들이 각기 다른 음식을 하나씩 가지고 와서 함께 먹는 ‘포틀럭 파티(potluck party)’를 즐기는 격이다.

생태지위란 어떤 생명체가 주어진 환경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고 있는가를 설명하는 개념이다. 생태지위가 비슷할수록 경쟁이 심화하고, 심지어 똑같으면 이론상으로는 한곳에 같이 살 수 없다. 이를 반대로 생각하면 누군가 생태지위를 조금만 변화시키면 큰 갈등 없이 공존할 수 있다는 추론에 도달한다. 이런 맥락에서 서로 다른 유전자 손실에 따른 상호 의존은 과도한 경쟁을 피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4. 영양공생, 신뢰 기반 상부상조

‘검은 여왕 가설’ 이후로 미생물 세상에는 호혜적 상호작용이 기본임을 보여주는 증거가 속속 발견되고 있다. 펠라지박터 유비크를 비롯한 여러 미생물이 보여주는 ‘공공재’ 생산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여기서 공공재란, 아미노산처럼 해당 세균이 상당한 수고(물질과 에너지)를 들여 만들어 세포 밖으로 분비하는 물질을 일컫는다. 공공재는 생산자 주변에 있는 세균에게 상당한 이득을 준다. 유비크 세균을 포함해서 공공재를 만드는 세균과 그 혜택을 받는 세균은 대부분 가까운 친척 관계이다. 이 경우, 이른바 ‘혈연(친족) 선택(kin selection)’ 이론으로 세균의 이타적 행동을 설명할 수 있다. 개체 수준에서는 이타적으로 보이지만 종 차원에서는 이기적인 셈이다. 간접적이지만 결국 자기네 종족 보존과 번성에 이바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혀 낯선 세균 사이에는 우호적 교류가 없다는 말인가? 아니다. 있다. 그것도 아주 흔하게 일어나고, 심지어 일부 영양소를 전적으로 상대방에게 의존함으로써 서로 주고받는 도움(공공재) 없이는 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서로 먹여 살리는 관계를 ‘영양공생(syntrophy)’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세균 군집에서 소위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이 일어나지 않고 조력자와 수혜자가 안정적으로 공존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 근원은 좋게 말해서 나눔, 나쁘게 말하면 칠칠치 못함이다. 세균의 ‘물질대사’ 과정에서 생기는 화합물, 곧 대사물 가운데 상당수가 몸(세포) 밖으로 새어 나간다. 

누출된 대사물 덕분에 주변 다른 세균들이 뜻밖의 혜택을 누리게 된다. 수혜자 세균은 필요한 물질을 만드는 수고를 그만큼 덜게 되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 돌연변이로 인해 해당 유전자가 기능하지 못하거나 아예 손실되어도 생존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한마디로 모자람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상호 의존이 영양공생의 출발점이다.

 

5. 베풂, 공생의 필요조건

인간의 장에는 세균만 해도 수백 종이 살고 있다. 여기서 제대로 살아가려면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해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주변 미생물에게 먹이를 뺏기지 않기 위해 온갖 이기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당을 젖산으로 발효시켜 주변 환경을 산성으로 만들어 다른 미생물의 접근을 막기도 하고, 더 공격적으로 항생물질을 분비해 경쟁자에게 해를 끼치기도 한다. 

장내 미생물은 각기 기능에 맞게 공급망(supply chain)의 일원으로 참여한다. 일례로 루미노코쿠스 브로미(Ruminococcus bromii)라는 세균은 인간의 소화 효소와 다른 미생물들이 분해하지 못하는 ‘저항성 전분(resistant starch)’을 분해한다. 브로미는 특수한 효소 복합체를 세포 밖으로 분비하여 분해를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나오는 물질이 자연히 주변에 퍼지게 되고 당연히 여러 미생물이 모여들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공급망의 아래쪽으로 갈수록 다른 미생물의 대사 산물을 먹고 사는 미생물이 많아진다. 브로미 없이는 있을 수 없는 미생물 공동체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호혜적 협력이 아닌 베풂이 미생물의 세상에 버젓이 존재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치열한 먹이 경쟁도 결국은 이런 베풂의 테두리 안에서 가능한 일이다.

 

6. 땅속 인터넷, 우드와이드웹

자연 생태계에서 보통 식물 뿌리는 곰팡이와 얽혀 있는데, 이를 ‘균근(균뿌리)’이라고 총칭한다. 균근에는 크게 두 가지 형태, ‘외생균근’과 ‘내생균근’이 있다. 외생균근은 뿌리를 균사(팡이실)가 감싸는 구조로서 주로 목본식물 뿌리에 형성된다. 반면 내생균근은 균사가 식물 뿌리의 세포벽을 뚫고 들어간다. 균사가 세포막에 닿으면, 이를 통과하지는 않고 균사 끝부분이 넓어지면서 표면적을 늘린다. 물질 교환을 촉진하기 위함이다.

균근을 이룬 곰팡이는 사방으로 균사를 뻗어낸다. 균근 곰팡이는 식물이 광합성을 하는 데에 필요한 질소와 인 같은 영양분의 흡수를 대행해주고, 식물은 그 보답으로 곰팡이에게 광합성으로 만든 탄수화물을 나누어주면서 서로 의지하며 알콩달콩 살아간다.

울창한 숲은 식물의 뿌리와 균근, 그리고 각종 미생물(특히 박테리아)이 쫀쫀하게 얽혀 있는 거대한 연결망을 바탕으로 하는 어울림 삶의 공간이다. 식물이 곤충이나 병원체의 공격을 받으면 특정 화학 물질을 방출한다. 공기를 통해 보내는 화학적 메시지는 전달 범위와 내용에 큰 제약이 있고, 수신 대상도 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식물이 인터넷이라도 이용한단 말인가? 그렇다. 바로 균근이 그 주인공이다.

균근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이 연결망을 인터넷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 www)’에 빗대어 ‘우드와이드웹(Wood Wide Web)’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땅속 인터넷은 일종의 ‘적응형 사회 관계망’이다. 다양한 식물과 곰팡이를 통합하고 피드백을 제공하여 상호작용을 원활하게 한다. 이 곰팡이 망 덕분에 식물은 훨씬 더 세련되고 광범위한 소통은 물론이고, 능동적으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 심지어 이를 통해서 큰 식물이 햇빛에 가려져 영양분을 얻지 못하는 작은 식물에 영양분을 보내어 도와주기도 한다. 물론 오가는 물질이 항상 모든 식물에 유익한 것만은 아니다. 동물이 자기 영역에 불청객이 들어오면 쫓아내듯이 식물은 보통 뿌리에서 위협 신호, 성장 억제 물질을 내보낸다.

곰팡이 네트워크는 멀리 떨어져 있는 식물들 사이의 소통도 가능하게 한다. 토양이 지구 생물 다양성의 4분의 1 정도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 영향력은 실로 엄청나 보인다. 따라서 어디에 어떤 균근이 있는지를 아는 것은 생물 다양성을 이해하고 보전하는 필요조건이다. 균근의 세계 지도는 지구 생태계 작동 원리를 파악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실제로 이 비밀스러운 지도가 공개되면서 아주 중요한, 하지만 ‘불편한’ 진실이 대번에 드러났다.

열대토양을 우점하고 있는 내생균근은 유기물을 빨리 분해해 이산화탄소 발생을 촉진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외생균근은 많은 탄소를 땅속에 가두어 둔다. 문제는 그 특성상 외생균근이 지구 온난화에 취약하다는 사실이다. 외생균근이 떠난 빈자리에는 내생균근이 들어서게 된다. 토양의 거대한 탄소 저장소를 지탱하는 곰팡이 무리가 사라지고 대기로 탄소를 쉬이 내보내는 곰팡이가 늘어날 거라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되면 지구 온난화의 가속화는 불 보듯 뻔하다.

거의 5억 년 동안 조화와 균형 속에 유지되어온 우드와이드웹이 위기에 처했다. 인간을 비롯한 땅 위에 모든 삶을 지탱하는 보호 그물이 점차 한 올씩 끊어져가고 있다.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공감에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공감하려면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 모두의 실천적 참여만이 우리와 미래 세대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다. 

 

맺는 글

현재 우리가 아는 한 지구는 다양한 생물이 어우러져 사는 유일한 행성이다. “광활한 우주의 변방에 있는 이 떠돌이별에 왜 생명체가 존재해야 하는가?” 이렇게 물으면 솔직히 과학이 답하기 어렵다. “지구에 어떻게 생명체가 생겨났는가?”라면 기꺼이 응답하겠다. 과학에서 묻는 ‘왜(why)’는 사실 ‘어떻게(how)’이다. 보통 과학자는 ‘궁극(ultimate)’ 질문보다는 ‘근접(proximate)’ 질문으로 자연 현상의 작동 원리 또는 메커니즘을 규명하려는 노력을 시작한다. 이런 맥락에서 질문에 답한다. 생물 다양성은 공생의 시너지 효과이다. 그러므로 공생은 생명체들의 오래된 미래이다. 지금의 생명체를 만들어준 머나먼 과거이자, 끊임없이 새로운 ‘결합’ 관계를 이루어나가야 하는 생명체들의 미래인 것이다.


강연 바로보기: [열린연단]_ 생태계의 경쟁과 공생 (김응빈 연세대 시스템생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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