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이야말로 민주주의 정치의 핵심 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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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이야말로 민주주의 정치의 핵심 기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10.03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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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임 정당: 민주주의로부터 민주주의 구하기 | 프랜시스 매컬 로젠블루스·이언 샤피로 지음 | 노시내 옮김 | 후마니타스 | 364쪽

 

1960년대 이후 민주주의 세계 전역에서, 예비선거와 같은 분권화된 후보 선출 방식이 채택되고, 비례대표제의 경우 유권자의 선택권을 늘리는 방향으로 개혁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시민에게 더 큰 결정권을 주고, 피대표자인 유권자와 좀 더 가까이 있는 정치인이 선출되도록 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증진으로 칭송받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유권자가 정치에서 소외되는 현상 또한 극적으로 증가했다. 정치인, 정당, 정치제도에 대한 시민의 신뢰도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으며, 포퓰리스트 정치인이 지도자로 선출되기도 하며, 기성 체제에 대항하는 극우 정당과 후보의 득표가 급증했다. 분노한 유권자들은 무력감 속에서, 자신들이 선출한 정치인을 상대로 반영구적인 전쟁을 벌인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저자들은 이 책에서 민주주의 세계에서 증가하고 있는 대의 민주주의의 병리 현상을 진단하고, 유권자 집단의 장기적인 이익을 위한 정책을 약속할 수 있는 규율 있는 정당, 내구성 있는 정당, 즉 책임 정당(정치)이 왜 필요한지를 일관되게 서술하고 있다. 

1. 풀뿌리 분권화가 유권자 소외 현상을 키우는 역설

이 책은 논쟁적이다. 우선, 민주주의 세계에서 정치적으로 더 민주적이라고 생각하는 방식, 이른바 ‘시민에게 권력을 돌려주’고, 의사 결정과 정치인에 대해 유권자의 직접 통제를 강화하면 민주적 책임성이 증가한다는, 자명한 진리처럼 보이는 것이 실제로는 반대 효과, 즉 오히려 유권자 소외 현상을 키운다고 주장한다. 미국에서 여론조사가 시행될 때마다 정치인, 정당, 정치제도에 대한 시민의 신뢰도는 갈수록 낮아지는 추세다.

이런 현상은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포퓰리즘을 기반으로 대통령에 선출됨으로써 극적으로 불거졌다. 다른 여러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반이민 · 극우 정당 등) 기성 체제에 대항하는 정당과 후보의 득표가 급증했다. 하지만 그렇게 뽑힌 사람들은 또 금방 인기를 잃기도 한다. 분노한 유권자들은 무력감 속에서, 자신들이 선출한 정치인을 상대로 반영구적인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 비례대표제의 취약함

이 책이 논쟁적이면서 흥미로운 또 다른 지점은 저자들이, 여러 민주주의 국가들의 사례를 들어, 비례대표제의 취약함을 꽤 설득력 있게 지적한다는 것이다. 비례대표제에서는 과격 세력이 자신들의 호소를 온건하게 조정할 유인이 적고, 대중을 극렬 소수와 고도로 양극화된 정치의 볼모로 잡을 수 있는 능력이 커진다. 예비선거를 시행하는 소선거구제와 마찬가지로, 비례대표제는 극렬 소수에 봉사하는 정치인에게 너무 쉽게 보답한다. 그리고 불만스러운 유권자들이 중도가 제시하는 것보다 더 강경한 해결 방안을 원하는 것은 다수대표제나 비례대표제나 같지만, 비례대표제에서는 그들이 의석을 얻는다.

3. 래브라도와 푸들의 혼종: 장점만 결합된 래브라두들인가, 단점만 결합된 푸들도인가

저자들은 많은 나라에서 이상적인 모델로 생각하거나 실제로 도입하고 있는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래브라두들’(labradoodle)에 비유한다. 선거제도의 설계자들이 비례대표제의 장점(상대적으로 높은 대표성)과 다수대표제(소선거구제)가 갖는 장점(상대적으로 높은 책임성)을 결합해 하나의 제도를 만들고자 했지만 독일을 제외한 많은 나라에서 래브라두들이 아니라 푸들도, 더 나쁜 경우는 프랑켄슈타인(!)이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4. 왜 정당인가

저자들은 “풀뿌리 분권화가 유권자 소외 현상을 키운다는 역설을 해결할 열쇠는, 정당이야말로 민주주의 정치의 핵심 기관임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즉 강한(즉 규율 있는) 정당, 내구성 있는 정당 연합끼리 경쟁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대다수 유권자의 이익에 가장 유리하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 점을 인식하지 못하면 소외되고 환멸에 찬 유권자들은 상황을 악화시키는 조치를 계속해서 요구하리라는 것이다. 

5. 규율 잡힌 두 정당이 경쟁하는 영국식(웨스트민스터) 양당제의 길

이 책이 제시하는 것은, 실현 가능성과 책임성 있는 정강 정책을 놓고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얻기 위해 경쟁할 수 있는 규율 잡힌 두 개의 정당(또는 선거 연합)을 만들어 내는 선거제도, 즉 영국식 양당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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