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사회학의 렌즈로 패션을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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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사회학의 렌즈로 패션을 분석한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10.03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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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셔놀로지: 사회학으로 시작하는 패션스터디즈 입문 | 유니야 가와무라 지음 | 임은혁·권지안·김솔휘·김현정 외 4명 옮김 | 사회평론아카데미 | 304쪽

 

패션은 욕망과 과시의 대상이자 신분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수단이며 문화적 상징이다. 이 책은 의복과 패션을 엄격히 구분하여 패션을 사회 현상이자 제도화된 시스템으로 바라보며 패션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패션과 패션 디자이너의 기원에서부터 의복과 패션의 차이, 오늘날의 패션 산업과 시스템을 갖추게 한 사회적, 역사적 과정까지 살펴보고, 21세기의 하위문화와 디지털 시대가 패션과 디자이너에게 미친 영향을 포함해 패션을 글로벌한 사회 구조로 탐구한다. 

저자인 유니야 가와무라는 패션과 패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지멜, 베블런, 퇴니에스 등의 고전 사회학자들뿐만 아니라 블루머, 데이비스, 부르디외의 연구를 포함한 현대 사회학 이론은 물론, 다수의 실증적 연구까지 개괄한다. 저자는 의복에서 패션을 분리하여 패션을 하나의 연구 주제이자 연구 대상으로 삼았으며, 문화의 생산과 소비가 일어나는 사회 구조와 문화 생활의 특징에 주목하는 문화사회학의 입장에서 패션을 문화적 상징으로 다루고 있다.

복식학자들에 따르면, 18세기까지 유럽 엘리트 집단의 복식에서 성별 차이는 크지 않았다. 귀족 남녀 모두가 레이스, 벨벳, 고급 실크뿐 아니라 장식이 과한 신발, 가발, 모자, 화장품을 착용하거나 사용했다. 그중에서 현대 소비 모형의 유래가 된 ‘소비의 왕’ 루이 14세는 사치스럽고 화려한 의복과 장신구에 빠져들었고, 프랑스의 위대함을 주장하고자 연회와 축제, 무도회를 개최했다. 패션의 유행을 선도하는 왕을 모방하려는 귀족들은 막대한 빚을 지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사치 규제법을 제정하여 하류층 사람들이 상류층처럼 입거나 생활하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에 패션은 엘리트들만의 것이었고, 복식은 계급의 상징이자 권력의 상징이었다.

18세기 말 유럽 엘리트 남성들이 밝고 화려한 장식을 탈피하여 비즈니스와 레저 맥락에서 실용성을 추구하기 시작하면서 패션에 대한 관심과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은 여성의 것이 되었다. 이후 더 노골적으로 여성은 눈요깃감, 패션은 여성의 낮은 지위에 대한 보상으로 여겨졌고, 끊임없이 ‘숙녀다움’을 강요받은 아내와 딸들의 우아함은 남성의 부와 명성을 과시하는 수단이 되었다. 이런 측면에서 지멜과 베블런 등 초기 사회과학 이론가들은 패션의 개념을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연결했지만, 오랫동안 연구자들에게 패션은 모순적이며 덧없고 지적인 근거가 없어 연구 주제로 타당하지 않다고 여겨졌다.

사회과학자들이 본격적으로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20년대 후반 들어 여성의 복식에서 전통과의 전면적이고 극단적인 단절이 나타나면서부터이다. 패션의 사회적 역할을 연구한 허버트 스펜서는 패션을 사회 진화의 한 부분으로 보았고, 게오르그 지멜은 패션을 모방과 차별화의 욕망으로 보았다. 사회학자들은 같은 의복을 착용하는 집단행동에서 패션을 추구하는 동기를 찾아냈던 반면, 심리학자들은 패션 현상을 본능에 의한 것으로 보았고, 때로는 패션에 대한 집착을 병적인 것으로 취급하기까지 했다. 역사학자들과 미술사학자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실물 의복과 복식을 관찰하여 반복되는 규칙과 변이를 밝히고자 하였다. 문화인류학자들은 사람들이 몸을 감싸거나 장식하는 다양한 동기 중 하나로 정숙성을 들었다.

이렇듯 패션의 개념은 매우 폭넓고, 사회적 규제나 통제, 위계 구조, 사회적 관행, 사회적 과정 등 많은 형태로 다뤄질 수 있다. 패션 연구에서 분석의 대상은 흔히 의복과 복식이었지만 어떠한 학자도 패션과 의복을 구별하지 않았다. 하지만 패션 생산에서 의복 생산을 분리하면 의복과 패션의 차이가 더 명확해진다. 의복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이지만 패션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패션과 의복을 구분하여, 문화사회학 연구 안에서 패션을 문화적 상징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다. 사람들이 입는 것은 의복이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입고 소비하는 것이 의복이 아니라 패션이라고 믿거나 믿고 싶어 한다. 이러한 신념은 패션이 의복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사회적으로 구축된 패션에 대한 생각에서 비롯된다. 즉 패션은 신념과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

저자는 프랑스에서 오트 쿠튀르가 제도화되어 프랑스 패션 무역협회가 설립된 1868년을 패션 시스템의 시작이라고 주장한다. 초기 프랑스의 패션 시스템은 디자이너를 채용하고, 패션 생산을 제도화하며, 디자이너 간의 위계를 형성하는 데 성공하였다. 당시 패션의 생산과 확산은 고도로 중앙집권적인 형태로 이루어졌으며 패션 시스템에서 디자이너들은 ‘스타 디자이너’로서 정당성을 얻고 지위와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저자는 패션은 뛰어난 천재 디자이너 한 명이 창조해낸 것이 아니라 패션 생산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루어낸 집단 활동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뛰어난 천재 디자이너조차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디자이너 사이에서도 계층화된 위계 구조가 형성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부르디외로 대표되는 문화 계층화 이론, 그리고 사회학, 문화사회학과 예술사회학 어느 쪽에서도 연구 대상을 개인의 천재성이 낳은 결과물로 보지 않는 관점을 따른 것이다.

이 책은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관심을 갖는 사회학적 관점을 끝까지 유지한다. 우선, 초기 사회학자들의 패션 논의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모방’ 개념을 가지고 패션 확산과 소비 현상을 설명한다. 그리고 ‘구조기능주의’의 시각에서 패션 시스템, 즉 생산, 유통, 소비가 어떻게 긴밀히 연관되는지 분석하고, 개인의 결정과 선택을 강조하는 ‘상징적 상호작용론’의 전통을 잇는 시카고학파의 하위문화 연구를 다룬다. 패션 소비에서는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이론을 소개하며, 펑크와 스니커즈 하위문화를 설명할 때는 문화기술지 현상 연구를 연구 방법으로 사용하는 도시사회학의 접근에 주목한다. 조직사회학의 시각에서 패션 생산과 소비에 참여하는 다양한 집단과 기관, 구조를 분석한다. 이런 방식으로 이 책은 패션스터디즈에 관한 사회학적 연구 방법론을 정립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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