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9세기 그림에 투영된 축제의 아름다움을 만나다
상태바
16~19세기 그림에 투영된 축제의 아름다움을 만나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10.03 13: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도시 축제의 아름다움: 그림으로 읽는 16~19세기 중국과 일본의 도시 축제 | 안상복 지음 | 서해문집 | 348쪽

 

이 책은 중국과 일본 두 나라의 전통 미술 작품 중에서 이른바 ‘도시축제행렬도(都市祝祭行列圖)’라고 지칭할 만한 일련의 작품에 표현된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특히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미술 작품을 다룬다. 그 이유는 미술 작품을 통해 도시 축제 행렬의 아름다움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도시의 축제를 배경으로 시가지를 행진하는 퍼포먼스 행렬이 미술 작품으로 먼저 수용되어야 하고, 화폭에 담긴 핵심 묘사 대상으로부터 당시 사람들의 미적 취향이나 지향성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하는데 중국과 일본 두 나라의 역사에서 그런 조건을 충족하는 미술 작품이 출현하는 시기가 16세기 무렵부터이기 때문이다.

16~19세기 동안 중국과 일본에서는 상업형 도시가 속출했는데, 이제껏 보지 못한 새로운 도시의 출현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의식 있는 화가의 눈에는 도시 그 자체가 작품으로 남겨야만 할 멋진 묘사의 대상으로 보였을 것이다. 도시축제행렬도라고 이름 붙일 만한 그림은 이런 과정에서 다량으로 제작되고 유포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근세에 중국과 일본 모두에서 발견되는 도시 축제 행렬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모습이지만, ‘도시’와 ‘축제’ 그리고 ‘행렬’이 원래부터 하나로 엮여서 출현해야 할 필연적 이유는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삼자의 결합이 시대 환경이나 추세에 따른 선택적 결과라면, 그 결과물로 전해지는 16세기 이후 도시축제행렬도에 표현된 아름다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삼자의 결합 과정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 책에서는 16~19세기의 회화 작품을 다루면서도, 실제로는 한나라부터 청나라까지 대략 2000년간의 중국 사례를 한 축으로 삼고, 시기별로 비교될 만한 일본의 사례를 비교 검토하는 방식을 취했다. 

상업 도시에서는 상공인 계층이 실질적 힘을 가진 실세로 부상해 기존의 지배층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데, 중세적 의례 행렬의 성격 또한 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적지 않은 변화를 겪는다. 이 시기 상공인은 도시 축제의 퍼포먼스 행렬에 직접 개입하거나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그 결과 근세의 도시 축제에서 퍼포먼스 행렬은 사실상 관람하는 사람들의 시각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오인(娛人, 사람을 즐겁게 해줌)’의 성격으로 변모한다. 일단 시작된 축제 행렬의 성격 변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강화되고 확대되어, 원래 부차적이어야 할 퍼포먼스 행렬이 도리어 행사의 하이라이트가 된다. 

이 책에서 다루는 16세기 이래 중국의 도시축제행렬도는 그렇게 변화된 민풍(民風)의 양상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상업도시를 배경으로 상공인 계층이 초래한 축제 행렬의 성격 변화가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발생한다는 점이다. 16세기 이래로 근세 상업도시에서 활약한 상공인 계층은 기존의 지배층, 곧 중국의 신사(紳士) 및 일본의 사무라이 계층과 권력을 나눠 갖는 세력으로 대두하게 된다. 그런 권력 지형의 변화를 계기로 도시 축제에서 시가지를 누비는 퍼포먼스 행렬의 활용 가치를 간파하고 있었던 상공인 계층과 기존의 지배층은 마치 의기투합이라도 한 듯이 행렬 속에 자신들의 미의식을 투영하고자 했다. 그런 역사적 사실이 있었기에 이 책에서 제시하는 중국과 일본 도시 축제의 비교론적 탐색도 가능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 조선은 전형적인 농업 사회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 탓에 상공인층의 활약이 컸던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조선에서는 그런 도시나 축제의 모습이 나타나지 못했다. 이 책에서 한국을 포함하지 못한 이유이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의 이러한 역사와 문화를 통해 동시대 한국의 역사와 문화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위계적 사고가 지배하던 근세에 최고 권력자가 거주했던 수도에서 거행된 행사는 동시기 각종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던 아름다움의 각축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거대한 패션쇼이면서 다양한 건축 기술이나 과학 기술의 경연장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음악·무용·연극을 아우르는 공연 예술 축제의 장이기도 했으며, 심지어 광고 기술의 진보를 가져다준 장이기도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