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는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어떻게 창출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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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는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어떻게 창출하는가?”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10.03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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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의 기원 | 에릭 바인하커 지음 | 안현실·정성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812쪽

 

현대경제학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이 책은 경제를 끊임없이 진화하는 불안정하고 불균형한 생태계로 정의하며, 부를 창출하기 위해 개인과 기업, 사회를 어떻게 조직해야 하는지 총체적인 비전을 제시한다. 복잡계 경제학이란 수많은 행위자들이 상호작용하며 창발적 결과를 빚어내는 ‘복잡 적응 시스템’으로 경제를 이해하는 새로운 경제학이다. 저자는 책 서두에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는 없다고 인정한다. 따라서 경제를 부의 창출을 위한 하나의 진화 ‘시스템’으로 보고, 그 속에서 특정 패턴을 발견해 불확실성을 줄여나가고자 한다. 

이 책은 전통경제학의 필연적인 한계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복잡계 경제학의 타당성을 다양한 분야의 전문지식과 실험을 토대로 입증한다. 애덤 스미스를 필두로 한 18세기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스스로를 철학자라고 여겼다. 그런데 산업혁명으로 경제 시스템이 복잡해지고 변동성이 커지자 이를 예측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19세기에 프랑스인 레옹 발라가 물리학과 수학을 이용해 경제 예측을 시도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때부터 경제학은 철학이 아니라 과학으로 변신했다. 수많은 힘과 에너지가 서로 상쇄되어 균형을 이루는 상태를 뜻하는 균형 개념이 경제에 도입되었고, 그 결과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이 균등한 상태를 뜻하는 ‘시장균형’ 개념이 널리 퍼졌다. 그런데 당시는 열역학 제2법칙, 카오스 이론 등 물리학의 중요 법칙들이 발견되지 않은 ‘설익은 물리학’의 시대였다. 반쪽 물리학을 받아들인 경제학은 현실과 괴리되었다. 실제로 현실 시장에서는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재고창고와 재고관리 기술이 이를 증명한다.

이어서 전통경제학이 전제하는 ‘완전 합리성(perfect-rationality)’의 비현실성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한마디로 인간을 완전히 합리적인 존재로 보는 것인데, 현실적 인간은 ‘매우 복잡한 상황에 직면한 정말 단순한 존재’이지만 전통경제학적 인간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한 상황에서 정말 머리가 좋은 존재’다.

20세기 후반에 이르자 전통경제학이 내세웠던 전제들이 틀렸음을 증명하는 이론들이 경제학 내외부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뜨거운 심장과 피를 가진 인간이 현실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결정을 내리는지, 생명의 근원은 무엇인지, 세계를 움직이는 물리 법칙은 무엇인지에 대한 지식이 확대되면서 학문들 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경제학 방법론들이 모색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1980년대 후반, 저자를 비롯한 산타페연구소 소속 복잡계 경제학자들에 의해 전통경제학의 신화는 깨졌다. 

복잡계 경제학자들은 전통경제학자들이 50여 년간이나 외부와 단절되어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들이 자신들만의 섬에 갇혀 있는 동안 물리학은 눈부시게 발전했고, 우주나 생명체는 시스템 내부에 에너지가 증가하면 무질서(엔트로피)를 방출하는 열역학 제2법칙이 작용하는 ‘열린 체계’임이 밝혀졌다. 이로써 왜 수요공급의 법칙이 맞아떨어지지 않는지, 왜 주어진 시장에서는 상품이 균형가격으로만 거래된다는 일물일가(一物一價) 법칙이 성립하지 않는지가 뚜렷해졌다. 경제학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복잡계 경제학자들이 발견한 대로 경제 시스템은 계속해서 변화한다. 구성원들은 다른 구성원의 성공적인 전략을 흉내 내거나 경쟁자의 전략을 이길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을 구사한다. 전통경제학은 전망을 쉽게 하기 위해 구성원들의 다양성과 변화를 무시했지만, 복잡계 경제학에서는 다양성과 변화가 굉장히 중요하다. 구성원들의 변화가 쌓이면 쌓일수록 경제 시스템은 ‘진화’하고, ‘부’는 급증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저자 에릭 바인하커가 전통경제학이 중요시하는 ‘경쟁’에는 회의적이라는 것이다. 전통경제학자들은 시장경쟁이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되도록 해 모든 이를 행복하게 해준다고 주장한다. 반면 이 책에서는 현실에서의 경쟁이 특정인들에게 자원을 몰아주는 ‘비효율’을 발생시킨다고 지적한다. 시장경쟁이 자원을 사용하는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인 것은 인정하지만, 구성원들 간의 신뢰와 협력, 경쟁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제 경제학적 연구는 필연적으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사회는 어떻게 운영되는지, 정치는 시장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등을 탐구하게 되었다. 과거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케인스의 수정주의, 하이에크의 반격이 세계관과 정치 지형의 변화를 가져왔듯, 복잡계 경제학 역시 인간의 사회와 정치에 깊은 함의를 던져준다. 그리고 경쟁과 복지, 개인의 책임과 문화의 힘, 사회적 이동성, 정부와 시장의 역할에 대한 진부한 논쟁을 거부하며, 좌파와 우파를 넘어선 새로운 지평을 제시한다.

저자에 따르면 성장이냐 분배냐, 시장이냐 정부냐 등의 기존 좌우 담론은 모두 철 지난 유행가에 불과하다. 복잡계 경제학에서 인간은 이기적인 동시에 이타적이고 경쟁하는 동시에 협력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시장이냐 정부냐를 따지는 좌우 논쟁은 낮은 차원으로 내려가는 19세기 환원주의가 아니라 더욱 높은 차원에서 이를 통합해 바라보는 복잡 적응 시스템적 사고를 통해 자연스럽게 해소된다는 것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게 여전히 이념이라는 믿음은 시대착오적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끊임없이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는 지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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