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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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노래
  • 조원형 편집기획위원/서울대학교·언어학
  • 승인 2022.10.03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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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형 칼럼]

오는 10월 9일은 576돌 한글날이다. 여느 국경일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정부 기념식이 열릴 것이고, 기념식장에 모인 사람들이 다 함께 <한글날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이다.


<한글날 노래> 가사는 다음과 같다.

  1절: 강산도 빼어났다 배달의 나라 / 긴 역사 오랜 전통 지녀 온 겨레 / 거룩한 세종대왕 한글 펴시니 / 새 세상 밝혀 주는 해가 돋았네 / 한글은 우리 자랑 문화의 터전 /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2절: 볼수록 아름다운 스물넉 자는 / 그 속에 모든 이치 갖추어 있고 / 누구나 쉬 배우며 쓰기 편하니 / 세계의 글자 중에 으뜸이로다 / 한글은 우리 자랑 민주의 근본 /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3절: 한 겨레 한 맘으로 한데 뭉치어 / 힘차게 일어서는 건설의 일꾼 / 바른 길 환한 길로 달려 나가자 / 희망이 앞에 있다 한글 나라에 / 한글은 우리 자랑 생활의 무기 /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외솔 최현배 선생이 지은 가사에 동요 작곡가로 이름난 박태현 선생이 곡을 붙인 이 노래는 단지 한글 창제만을 기리는 데서 나아가 대한민국의 희망찬 미래를 전망하는 진취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국권을 빼앗고 언어마저 빼앗으려 했던 일제의 간악한 만행에 목숨을 걸고 맞서 말과 글을 지켜 낸 조선어학회 선열들의 감격에 찬 목소리가 노래 가사 속에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런데 이 노래 가사를 냉정하게 따져 보면 좀 더 깊이 이야기해야 할 것들이 보이기도 한다. 우선 1절에서는 세종대왕을 언급하면서 ‘새 세상 밝혀 주는 해가 돋았다고’ 노래했는데, 한글을 손수 창제한 세종대왕 덕분에 한국어를 비로소 글자로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외솔 선생이 ‘거룩한 세종대왕’이라고 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다만 세간의 오해와 달리 한글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창제자와 창제일이 밝혀진 문자’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 또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예컨대 1840년에는 영국 출신 제임스 에반스(James Evans, 1801~1846)가 캐나다 원주민 음절문자를 창제했고 이 문자는 현재 이누이트어 등을 표기하는 데 쓰이고 있다. 그리고 1949년에는 기니의 술레마나 칸테(Sùlemáana Kántε, 1922~1987)가 아프리카의 고유 언어와 고유 문화를 기록하고 보존하고자 밤바라어, 만딩카어 등 서아프리카 지역의 만데어군 언어들을 표기하는 데 적합한 응코 문자를 창제했다. 이처럼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 인위적으로 창제된 문자들은 보통 창제자와 창제일 또한 명확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다른 문자들에 비해 역사가 짧기 때문에 오히려 창제와 관련된 기록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2절에는 한글이 ‘세계의 글자 중에 으뜸’이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이 또한 엄밀히 따지면 언어학적 사실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흔히들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우수하다는 말은 우열 관계를 전제한 말이다. 하지만 문자에는 우열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열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한글이 한국어의 음성학적, 음운론적 원리를 반영해 창제한 과학적인 문자라는 사실은 틀림이 없으나, 이러한 특성은 특정한 문자가 다른 문자보다 우수하거나 우월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어렵다. 애당초 문자에 음성학적, 음운론적 원리를 꼭 반영해야 할 이유가 없다. 문자는 그저 자의적인 시각 기호일 뿐이므로 특정한 말소리를 특정한 시각 기호에 대응시켜 놓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로마자 등 다른 문자에는 한글에 없는 장점이 있기도 하다. 예컨대 풀어쓰기를 하는 로마자는 적어도 한국어 표기를 위해서는 모아쓰기를 할 수밖에 없는 한글보다 기계화를 하기가 덜 번거로우며, 글자를 변형해서 다양한 말소리를 표기하는 데도 한글보다 더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러한 것을 근거로 로마자가 한글보다 우수하다고 한다면 선뜻 동의할 수 있겠는가. 아마 그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글이 다른 문자보다 우수하다는 것 역시 보편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주장은 아니다. 다만 누구나 고유 문화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 만큼, 한글이 으뜸이라는 외솔 선생의 말 또한 한글로 문자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자부심을 고취하자는 뜻으로 이해할 수는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한글날 노래> 3절은 한글 자체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생활의 무기’인 한글을 사용해서 대한민국을 더욱 발전시키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외솔 선생의 이 희망은 오늘날 여러 분야에서 실현되었다. 한글로 한국어를 기록하면서 한국어의 힘이 세어지고 한국어 사용자들의 역량 또한 커진 덕분이다. 하지만 아직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분야들이 많다. 그중 하나가 정치 영역이다. 얼마 전에 대한민국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을 거론하면서 비속어를 사용한 사건이 있었다. 또렷하게 들리는 말소리로 보나 말의 맥락과 어법으로 보나 미국 대통령의 이름을 입에 올리면서 미국 의회까지 비속어로 지칭한 것이 자명한데도 대통령실과 정부 여당은 다른 말을 했다고 끝까지 궤변하면서 오히려 이 사실을 보도한 언론사에 으름장을 놓고 있으며, 이 와중에 일부 교수와 학자들마저 곡학아세를 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것이 과연 ‘바른 길 환한 길’인지 의문이다. 이렇게 못된 언행으로 물의를 빚는 이들이야말로 ‘민주의 근본’을 잊었거나 외면하는 자들이 아닌가 싶다.

10월 9일 한글날이 되면 중계방송 전파를 타고 전국에 <한글날 노래>가 울려 퍼질 것이다. 한글을 사용해 온 사람들 모두가 이 노래의 의미를 다시금 새기면서, 한글에 대한 자부심을 간직하되 문자에 우열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또한 기억했으면 한다. 문자에 우열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 어떠한 문자라 해도 모두 동등하게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인류의 문화유산이라는 뜻이다. 한글이 소중하듯 다른 문자들도 모두 소중하며, 한글에 남다른 장점이 있는 만큼 다른 문자에도 저마다 고유한 장점이 있다. 이 모든 문자들을 존중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세계 시민으로서 꼭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한글은 ‘사람마다 하여금 쉽게 익혀 날로 씀에 편안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라는 창제 목적을 지닌 문자라는 점 또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한글을 ‘민주의 근본’이라고 한 외솔 선생의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런 만큼 한글날은 민주적인 언어 문화에 대해 성찰하는 날로 삼는 것이 마땅하다. 민주적인 언어 문화를 정착시키려면 무엇보다 공동체를 움직이는 말, 즉 정치 언어를 끊임없이 비판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한글날을 맞아 그동안 여야를 막론하고 말 때문에 비판을 받아 왔던 정치권 인사들에게 과연 민주주의 사회에 걸맞은 말을 써 왔는지 스스로 되짚어 볼 것을 권하는 바이다. 고치고 다듬어야 할 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조원형 편집기획위원/서울대학교·언어학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에서 언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만하임 라이프니츠 독일어연구원 방문학자,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등을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로 일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천주가사에 대한 텍스트언어학적 연구”, “텍스트언어학에 기반한 ‘쉬운 언어(Leichte Sprache)’ 텍스트 구성 시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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