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反轉)의 땅, 동아시아의 근대화에 대한 최초의 ‘시민사회 비교사’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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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反轉)의 땅, 동아시아의 근대화에 대한 최초의 ‘시민사회 비교사’ 연구
  • 정상호 서원대·정치학
  • 승인 2022.10.02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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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책, 나의 테제_ 『동아시아 시민 개념의 비교 연구: 한·중·일 3국에서 시민의 탄생과 분화』 (정상호 지음, 에듀컨텐츠휴피아, 209쪽, 2022.08)

 

동아시아는 지난 한 세기 동안 정치, 경제적 측면에서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지역임은 분명하다. 불과 한 세기 전에 대한제국의 국민은 경술국치(1910)와 더불어 조선총독부에 의해 일본 제국(皇國)의 신민(臣民)으로 전락하였다. 반면 신해혁명(1911)을 통해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근대 시민으로 등장할 수 있는 제도를 확보”하였던 중국은 서구 열강의 침략과 국공 내전이 겹쳐 국가 존립의 위기 상황에 몰려 있었다. 일본 역시 일본 민주주의의 맹아기였던 다이쇼 데모크라시(1912-1925)가 붕괴하면서 파시즘과 제국주의의 경로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2022년 현재 동아시아의 발전은 눈부시다. 일본은 1964년 도쿄(東京) 올림픽을 계기로 눈부신 경제발전을 바탕으로 선진 7개국 모임(G7)의 창설(1975) 회원국이 된 이래 반세기 넘게 명실상부한 선진국의 지위를 유지해왔다. 한국은 작년에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가 변경됐는데, 이러한 지위 상승은 1964년 기구가 만들어진 뒤 처음 있는 일이다. 영국의 경제경영연구소(CEBR)는 중국이 “2030년에 미국을 제치고 경제 규모(GDP) 세계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그렇지만 한ㆍ중ㆍ일 3국을 대상으로 한 비교 연구의 초점은 늘 국가와 시장이었다. 대개는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끈 국가의 발전전략과 지정학적 요인, 또는 유교나 교육열 등 사회문화적 요인을 강조하였다. 시민과 시민사회를 다룬 연구들조차도 해당 지역 전문가들이 서로 다른 기준과 개념에 따라 개별 사례를 묶어 편집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본 연구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체계적인 방법론과 비교의 관점에서 동아시아 시민사회의 발전 과정을 추적하고자 하였다.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연구의 공백으로 남아 있는 시민과 시민사회의 퍼즐을 찾아 떠난다는 점에서 본 논문은 최초로 시도하는 ‘동아시아 시민 개념의 비교 연구’라 하겠다.


동아시아인들은 어떻게 시민이 되었나? 
 
공간적으로는 한ㆍ중ㆍ일 3국을, 시기적으로는 거의 150년에 달하는 방대한 시공간을 여행한 결과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였다. 

첫째, 시민이라는 단어의 어원과 관련하여 동서양의 공통점을 발견하였다. 서양에서 citizen은 성(bourg)에서 유래하였다. 서구의 시민 개념이 성(城)에서 유래하였다면, 동아시아에서 그 뿌리는 문화와 문물의 중심지를 뜻하는 중국어 시(市)에서 비롯되었다. 한(漢)나라 이전인 중국 상대(上代)에 시정(市井)은 우물이 있는, 인가가 모인 곳을 지칭하였다. 또한 『사기(史記)』에서 상인이나 성시(城市)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市民이라 부르는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에는 고려사(高麗史)의 기록에서 민간의 백성들이라는 의미에서 시민(市民)이라는 용례가 이미 몇 차례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번역과 조어의 선진국이었던 일본의 경우, 메이지 이전의 시민 개념의 연구나 용례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 의외였다.

둘째, 동아시아에서 서구적 시민 개념의 첫 번역은 ‘국민’이라는 렌즈를 통해 이루어졌음을 확인하였다. 중국에서 서구의 시민 개념의 번역과 확산을 주도한 것은 량치차오(梁啓超)였는데, 그는 영어의 citizen을 의도적으로 국민(國民)으로 번역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근대 일본의 지성계를 대표하는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역시 citizen을 시민이 아니라 국민으로 번역하였다는 점이다. 이유인즉 두 사람 모두 천부인권과 민권을 앞세운 자유주의보다는 서구에 맞설 강력한 근대민족국가의 수립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중시하였기 때문이었다. 한편, 식민지였던 한국은 해방되기까지는 citizen을 국가의 주인인 국민으로 번역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식민지 조선에서 시민은 두 가지 용법을 지녔는데, 하나는 시장과 시가지의 주민이었고, 다른 하나는 미성숙한 조선이 배우고 따라가야 할 바람직한 주체이자 발전모델을 뜻했다.

셋째, 공민(公民)은 동서양의 차이(between)와 동아시아 안(within)에서의 개념 분화를 보여줄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언어이다. 공민은 세 나라 모두 근대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개념인데, 제일 먼저 한국에서 공민은 시민 개념의 부상에 밀려 역사의 창고로 사라져 버렸다. 4.19의 애국시민, 80년 5월의 광주시민, 87년 6월의 민주시민, 최근의 촛불 시민이라는 용례에서 알 수 있듯이, 연속된 민주화운동과 시민운동의 동력이 공민이라는 관제 언어의 소멸을 가져왔고, 그 자리를 저항과 참여의 주체를 상징하는 시민이라는 개념이 차지하였다. 중국은 정반대인데, 자본주의 국가의 착취적 성격으로 인해 국민이, 시민사회의 기회주의적 부르주아적 성격 탓에 시민이 자유롭게 사용될 수 없어 공민 개념의 확고하고도 유일한 헌법상의 지위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 공민은 교육기본법의 명시적 규정(양식 있는 공민)이나 지역의 종합복지시설인 공민관(公民館)에서 알 수 있듯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이 단어에는 민에 대한 공의 우선성, 질서에의 복종의식, 권리보다 의무를 강조하는 뉘앙스가 담겨 있어 오늘날 일본에서는 공민이라는 말이 점차 사용되지 않고 있다. 

넷째, 동아시아에서 시민 개념의 탄생을 가져온 ‘3대 역사적 사건(historical events)’으로 한국의 1987년 6월 항쟁, 중국의 1989년 천안문 사건, 일본의 1960년 안보투쟁을 확인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시민의 의미가 행정 분류인 도시의 주민이나 서구의 선진 국민이 아니라 토론하고 참여하는 자국의 구성원, 즉 적극적인 시민으로 변화하였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100년 전 시장의 상인으로 출발했던 하나의 단어가 저항과 참여의 주체를 일컫는 당당한 정치적 개념으로 진화하였다. 

다섯째, 시민 개념의 탄생 이후 시민운동의 분화가 나타났다. 먼저 한국에서는 적극적 시민 행동과 참여 민주주의의 역동성을 반영한 촛불과 ‘광장의 정치’의 반작용으로 애국시민을 자처하는 태극기 부대가 등장하였다. 촛불 시민과 태극기 부대의 갈등과 대립은 한국의 심각한 정치적 양극화 현상을 보여주는 민낯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중국은 다양한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 전략적 차원에서 ‘신형도시화’와 ‘인간의 도시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그것은 호구 제도와 도농이원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편함으로써 2억 9천만 농민공을 ‘시민(市民)’으로 만들겠다는 국가적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시민운동은 2차례의 연속된 분화를 보여주었다. 1차 분화는 안보투쟁 이후 ‘양심적 시민운동(conscientious civic activism)’과 ‘실용적 시민운동(pragmatic civic activism)’으로의 분화이다. 이어 1980년대에 들어 2차 분화, 즉 체제 개혁적 사회운동에서 사회활동으로의 전환이 나타났다. 정리하자면, 일본의 시민운동은 공간적으로는 지역공동체 중심, 지향과 가치는 생활 밀착형 운동, 목표는 주민자치를 특성으로 하고 있다. 이는 시민사회의 중심이 시민운동에서 시민활동으로 이전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동아시아 시민사회의 미래와 과제  

이번 연구는 시민 개념의 탄생과 진화가 단순히 경제 수준이나 과학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인간, 구체적으로는 정치집단과 사회운동의 역할과 전략이 결정적 요인임을 확인하여 주었다. 한국의 5월 광주와 6월 항쟁이 그랬고, 일본의 안보투쟁이 그러하였으며, 중국의 천안문 사건이 그랬다. 어느 정도 원인과 결과의 차이는 있겠지만, 동아시아 3국의 그해 5월과 6월은 시민혁명에는 못 미칠지 몰라도, 그 속에 살던 사람들의 의식과 행동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아울러, 사회운동을 통해 근대적 주체인 시민이 형성되었고, 이를 계기로 시민들의 참여와 토론의 장인 시민사회가 활성화되었으며, 이렇게 등장한 시민사회와 국가의 새로운 사회계약이 ‘시민사회 3법’으로 제도화되었다.

지금으로서는 한국과 중국, 일본이 궁극적으로 단일적인 이념형의 시민사회로 수렴할지, 아니면 지금보다 더 다양한 모습으로 분화할 것인지에 대해선 단언할 수 없다. 확실한 것은, 헌법이 명시한 바람직한 공동체의 지향이 민주공화국(대한민국 헌법 제1조)이든 인민민주주의 독재의 사회주의 국가(중화인민공화국 헌법 제1조)이든, 아니면 국가와 국민 통합의 상징 천황제(일본국 헌법 제1조) 국가이든 그것이 성공하기 위한 필요조건 중 하나는 참여와 자율의 민주시민과 협력과 신뢰를 담보한 시민사회의 존재라는 사실이다.


정상호 서원대·정치학

서원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한양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정치연구회 회장(2018)을 역임했고, 현재 한국NGO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시민의 탄생과 진화』, 『한국시민사회사: 산업화기 1961~1986』, 『한국민주주의 100년, 가치와 문화』(공저) 등이 있다. 한국정치학회 인재 저술상(2015)과 단재 교육상(2020)을 수상한 바 있다. 주된 관심사는 한국 정치의 민주화와 성찰적 시민사회를 위한 실천적 탐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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