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의 의미 … 다시 쓰는 ‘너 자신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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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의 의미 … 다시 쓰는 ‘너 자신을 알라’
  • 서정욱 배재대 명예교수·철학
  • 승인 2022.10.02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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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소크라테스의 유명세는 친구 카이레폰에서 시작된다. 두 사람은 델포이로 여행을 떠났다. 소크라테스는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 구경에 여념이 없었지만, 다른 생각을 가진 카이레폰은 바로 신탁소를 찾았다. 그리고 신관에게 물었다. “소크라테스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이 있습니까?” 초조하게 기다리는 카이레폰에게 무녀 피티아는 “없다”고 답한다. 무녀의 대답을 카이레폰은 “소크라테스가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다”로 받아들인다. 그 순간 소크라테스는 신전에 새겨진 한 문장에 넋을 놓고 있다. 바로 “너 자신을 알라”다.

신이 자신을 가장 지혜롭다고 했다는 말에 소크라테스는 신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며 어쩔 수 없이 카이레폰의 말을 인정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지혜롭지 못하다고 생각한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 도착하자마자 지혜로운 사람을 찾아 지혜겨루기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 지혜롭다는 사람들은 스스로 무지함을 모르고 있다. 나는 스스로 무지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다른 어떤 사람보다 지혜로운 사람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생각을 하고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너 자신을 알라’라고 한 마디 한다. 이 말을 철학사에서는 ‘너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인정해라’로 설명한다. 하지만 다르게 한 번 생각해 보자. 당시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아테네에서 모든 분야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던 사람으로 보다 위대한 아테네를 위해 노력하던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무지해서는 안 된다. 이런 사람들은 최소한 자신의 자리에서는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어야 하고, 오늘날 표현으로는 그 분야의 전문가여야 한다. 그래서 당시 아테네의 통치자들이 그들에게 그 자리를 부탁했을 것이다. 물론 명령형식으로 강제로 그 자리에 앉혔을 수도 있다. 전자라면 그 사람의 능력을 인정한 것이고, 후자라면 얼마나 사람이 없었으면 능력이 안 되는 사람에게 명령으로 도시국가의 운명을 맡겼겠는가하고 생각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그들에게 ‘너 자신을 알라’라고 한 말의 의미는 ‘그 자리는 당신의 자리가 아닙니다’ 혹은 ‘그 자리는 당신처럼 무능한 사람이 앉아 있을 자리가 아닙니다’라는 조용한 충고는 아니었을까? 누구보다 아테네를 사랑한 소크라테스는 강한 아테네, 고대 그리스의 중심 도시국가 아테네를 먼저 생각했다. 이런 소크라테스 눈에 능력 없는 사람이 자리를 지키는 것이 어쩌면 가슴 아픈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과 함께 능력 있는 사람에게 그 자리를 양보하세요라고 한 것은 아닐까?

사람에게는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물론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도 있다. 이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하고는 완전히 다르다.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는 없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을 때 일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이 점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교육을 통해 장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모든 사람의 재능을 살리는 것은 물론 통치자의 몫이다. 이런 통치자를 그는 철인정치가라고 했다. 모든 백성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은 자리에 잘 배치하는 능력이 바로 철인정치가의 임무라고 소크라테스는 주장한다.

소크라테스의 이런 장인정신에 대한 생각을 세계 여러 나라에서 교육제도로 받아들였다.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국가가 있는가 하면 오래전에 폐지한 국가도 있다. 우리는 오래전에 이 제도를 폐지하였다. 아니 자연스럽게 폐지되었다. 그 결과 학문을 가르치는 대학교에서 이제 장인을 길러내기 위해 교육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기이한 현상은 사회 전반으로 번져나가 이미 오래전에 사회문제로 바뀌었다.

여기서 우리는 철인정치가의 임무를 한 번 생각해본다. 시킬 일은 많은데 할 사람이 없다면 그것은 참 큰 문제다. 반대로 시킬 사람은 많은데 자리가 없다면 어떨까? 즐거운 고민일 것이다. 그런데 많은 통치자는 이런 즐거운 고민을 하지 않는다. 능력을 보지 않고 친분관계만 보고 아무에게나 일을 맡긴다. 맡은 사람은 능력이 안 되기 때문에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

그 자리에 앉을 위치가 되지 않는다면 과감하게 아니라고 해야 한다. 그래야 소크라테스로부터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듣지 않는다.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이 지키는 자리를 우리는 ‘과한 자리’라고 하지만 다른 말로 ‘욕먹는 자리’라고 한다. 통치자의 명령도 중요하지만 거절할 줄 아는 용기가 더 중요하다. 다시 ‘너 자신을 알라’의 의미와 중요성을 생각해 본다.


서정욱 배재대 명예교수·철학

계명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배재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 『인식논리학과 인식형이상학』 발표 후 『만화 서양철학사』, 『푸코가 들려주는 권력 이야기』 등 여러 편의 청소년을 위한 철학자 시리즈를 발표했다. 이어 『필로소피컬 저니』를 시작으로 『철학의 고전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읽기』, 『라이프니츠 읽기』, 『스피노자의 《윤리학》 읽기』 등을 통해 철학 고전의 요약과 철학의 대중화를 계속하고 있으며, 『소크라테스, 구름 위에 오르다』와 『아리스토텔레스, 시소를 타다』를 발표하면서 철학의 소설화에도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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