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SF화, 자본주의 기술정치의 ‘소셜 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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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SF화, 자본주의 기술정치의 ‘소셜 픽션’
  • 문화과학사 편집부
  • 승인 2022.09.30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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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과학 (2022년 가을 통권111호) - SF 사회 | 문화과학 편집부 엮음 | 문화과학 | 264쪽


어느 시점에서부터인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SF를 앞지른 것이 아닌가 하는 기시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전기 자동차, 드론, 메타버스, 인공지능, 웨어러블과 스마트 기기, 무인 전투기, 우주 망원경, 나노 로봇, 뉴로모픽 칩, 스마트시티, 유전자 가위, 인공강우… 이외에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기상천외한 신기술이 사회 혁신의 슬로건을 내걸고 확산되는 중이다. 불과 21세기 초까지 이런 기술적 발명은 ‘공상과학’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과학’이 되었다.

2022년 가을 『문화/과학』 111호는 기술 가속이 극대화되어 현실이 SF를 넘어선 오늘날 한국사회를 ‘SF 사회’로 진단하고, 기술 유토피아적 충동과 디스토피아적 현실의 괴리감을 진단한다.

SF의 본래 의미인 사이언스 픽션(Science Fiction)을 확장해 사변 문학(Speculative Fiction), 사변 우화(Speculative Fabulation), 자본주의 소셜 픽션(Social Fiction), 사회주의 픽션(Socialist Fiction)의 새로운 프리즘으로 우리 사회 현실을 재구성, 이를 도시·생태·젠더·정보기술·혁신담론·문화다양성 등의 영역에 대비해 한국판 SF사회의 명암을 탐색한다.

특히 이번 “SF 사회‘ 특집호는 기술 혁신이 불평등을 해결해줄 것이라는 구호, 자동화가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줄 것이라는 믿음, 생명과 생환경을 돌보지 않아도 된다는 생태 윤리적 무책임 등 우리 사회 널리 퍼진 SF(사이언스 픽션)식의 집단적 망상(자본주의 소셜 픽션)을 비판적으로 독해한다.

 

「111호를 내며: 사회의 SF화, 자본주의 기술정치의 ‘소셜 픽션’」

“미래는 지금 여기 와 있다. 다만 적절히 분배되지 않았을 뿐이다”라는 윌리엄 깁슨의 말처럼 오늘날 과학기술 사회의 국면을 잘 표현하는 수사는 없다. 『문화/과학』 111호에서 다루고자 하는 SF는 중의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영미권에서 싸이파이(Sci-Fi)라는 약칭으로 통용되는 SF는 Science Fiction의 약자로, 과학기술의 본질을 탐구하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변화하는 미래상을 재현 장르에 외삽해 고찰하는 특징을 지닌다. SF가 외삽하는 미래상은 그것이 암울한 미래건 밝은 내일이건 변화를 추구하는, 생동하는 현재를 품어낸다. 우리는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인간의 합리적 사고는 어디까지 스스로를 개량하고 진보할 수 있는가? 등의 질문은 유토피아적 충동에 연동되어 있고, 프로메테우스적 진보를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물색하도록 한다. 반면 인류는 얼마나 타락할 수 있을까? 도구적 합리성만 추구하는 과학기술은 어떤 전체주의 사회를 직조하는가? 같은 질문은 현실의 일그러진 부분들을 날카롭게 응시하고, 부조리와 계급적대를 디스토피아의 미학을 통해 역설적으로 환대한다. 프레드릭 제임슨의 정의를 빌리자면, SF는 그 자체로 ‘미래를 발굴하는 고고학’인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SF를 넘어서고 있는 하이테크 기술 실재는 이러한 변화의 상상력을 내포하고 있는가? 우리가 기시감 속에서 발견하듯이, 최근 소수의 억만장자들과 테크노크라트들에 의해 선도되고 있는 신기술 혁명에는 이러한 전망이 엿보이지 않는다.

그 결과, 우리는 오늘날 유토피아 정치가 제거되어 물화된 SF, 말 그대로 사변이 실재가 된 신세계를 목도하고 있다. 무차별적인 기술 혁신이 사회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구호, 자동화가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줄 것이라는 헛된 믿음, 인공지능과 드론의 손길 아래 공동체가 안전할 것이라는 망상. 이렇게 구축된 소셜 픽션 이데올로기는 노동·환경·젠더·지역 등의 문제를 하나의 노이즈로 평가절하하고, 여기에 개입되어야만 하는 맑스적 혹은 민중정치의 비평을 소거한 채 마찰 없는 자본주의를 향한 직선 회랑을 건설했다.

이번 『문화/과학』 111호에는 총 12편의 글, 3명의 작가가 참여한 이미지 큐레이션을 실었다. 특집 ‘SF 사회’는 도시·생태·젠더·정보기술·혁신담론 등 사회 전방위에서 펼쳐지고 있는 소셜 픽션의 기술 이데올로기 실천들을 읽어내고, 유토피아의 나침반에서 사라진 극성을 되살리고자 하는 7편의 비판 작업들로 구성되어 있다. ‘동시대 분석’에는 최근 한국사회의 학술현장-노동현장에서 심화되는 사회적 불평등을 분석한 2편의 글을 실었다. ‘텍스트의 재발견’에는 최근 출간된 두 책 『한국 팝의 고고학』 , 『집으로 가는, 길』에 대한 서평 두 편을 실었으며, 마지막으로는 생태사회-과학기술의 정치를 읽어내고자 하는 ‘이론의 재구성’ 글 한 편이 대미를 장식한다.


* 특집 「SF 사회」

신현우의 글은 과학기술을 유토피아론에서 핵심 의제로 바라보고, 기술로 무엇을 만드느냐가 아니라 어떤 미래를 상상하느냐를 본질적인 문제로 상정한다. 신현우는 최초의 유토피아론자들과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이 펼쳤던 다양한 유토피아의 상들로부터 대안 사회를 향한 아이디어의 맹아를 검토하고, 좌파 가속주의자들의 논의로부터 자본주의 현실을 주조하는 기술 가속의 이데올로기를 맑스적으로(혹은 유토피아로) 재배치한다. 

유상근은 사이버펑크에서 상상하는 미래사회의 가상현실과 디스토피아 그리고 동양 도시들 사이의 관계를 다룬다. 왜 미래의 가상도시는 빈번하게 동양적 공간으로 상상되는지, 미래 가상도시로 상상된 동양의 도시는 왜 문화·역사적 구체성이 제거되어 혼종적인 공간으로 그려지는지, 진보된 과학기술을 성취한 미래/가상/동양의 도시는 왜 디스토피아적 공간으로 재현되는지가 이 글이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들이다. 

임태훈은 새로운 정치경제 흐름의 최전선에 있는 일론 머스크와 그를 추종하는 머스키즘이 SF에 담긴 사회주의 이념과 페미니즘, 아프로 퓨처리즘은 생략한 채 읽거나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일론 머스크에게 SF는 자기 회사의 비즈니스를 선전하는 마케팅 언어에 불과한데도 불구하고 그 덕분에 일론 머스크가 막대한 투자금을 계속 끌어모으는 모순적 상황을 부각하고 테크노킹의 SF론이 몰락의 방아쇠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김준수는 외계인으로 명명되거나 이질적인 존재인 자연물, 타자, 외래종을 둘러싼 정치생태학적 담론을 경유해, SF가 던지는 정치생태학적 질문이 실질적으로 인간-비인간의 관계 맺기 방식에 어떻게 작동하는지 논의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의 다양한 비인간들은 얼핏 보았을 때는 별 행위성을 드러내지 않는 것 같지만, 실은 우리의 생태학적 상상력을 작동시키고 우리 삶과 국가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그렇게 SF 속 이질적 공간과 존재를 통해 일상적이면서 친숙한 장소와 대상을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외계인과 함께 살며 관계 맺어가는 길이다. 

김은주는 김초엽의 소설 「관내분실」을 동시대 페미니즘의 지평에서 젠더, 신체, 기술의 얽힌 관계를 탐구하는 사변적 SF로 간주하고 분석한다. 하지만 이 글은 단순히 작품론에 머물지 않고, 동시대 한국 페미니즘 SF가 인간-자연, 인간-사물 간 경계 짓기의 이분법을 허무는 새로운 물질론을 통과해, 기술장치를 성차화·인종화·자연화하지 않고 섞임·혼종성·상호접속성의 형상들로 중립화하는 바를 비판하면서, 비인간 행위자들의 세계와 기술 매개로 체현된 신체 역량을 탐구한다는 논의로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권범철은 미래를 향하는 과학화가 도시 자체를 과학화하려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것에 주목한다. SF는 더 이상 미래가 아니라 ‘스마트시티’ 같은 이름으로 지금 여기에서 가시화된다. 스마트도시는 우리 삶 자체를 도시공장의 조립 라인으로 끌고 들어가는 전면화·종합화된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SF적 사회공장이다. 과학화된 도시의 인프라는 부를 위로 이전하기 위한 수단이므로 대안적인 세계를 위해 대안적인 인프라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가 중요해진다.

김일림은 기능성과 효율성으로 재단되는 한국의 이주자 현실에 주목하여 SF 사회를 논한다. 먼저 그는 SF가 낭만주의적인 토양에서 탄생하여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변천해온 미적 형식이라는 관점으로, 현재에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SF적 시간 형식에 주목한다. 이동성, 개방성, 혁신성을 SF적 시간 형식으로 개념화한 그는, SF적 시간 형식을 매개로 한국의 이주자와 정주자가 ‘친밀한 공공권’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다고 제안한다. 이주자가 ‘미래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현실의 공공권’과 ‘가상의 공공권’의 인터페이스를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다.

* 동시대 분석

박숙자의 「스펙이라니, 약탈이야: 엘리트 카르텔과 능력주의」와 전주희의 「한국사회는 중대재해법을 필요로 하는가」는 한국사회에서 점점 심화되고 있는 사회적 불평등이 전혀 다른 두 현장에서 펼쳐지는 현상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을 수행했다.

* 텍스트의 재발견

서정민갑은 『한국 팝의 고고학』의 성과가 범위의 방대함만이 아니라,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여러 장르와 실천이 이룬 성과와 한계를 냉정하게 짚는 서술 방식에서 더욱 도드라진다고 분석한다. 전소현은 장애인 거주 시설 향유의 집이 설립되고 스스로 문을 닫기까지의 시설 폐지 투쟁 과정을 기록한 『집으로 가는, 길』을 통해서, 시설 바깥에서 시설화되는 삶을 알아차릴 것을 촉구한다.

* 이론의 재구성

이광석은 생태 기술이 현실 자본주의의 자연 파괴와 수탈에 근거한 성장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매개체이자 공생기술이라고 보고, 자본주의의 인클로저 과정에서 누락된 생태 약자의 종 연대와 돌봄의 한가운데서 기술의 용도를 찾는다.

* 특집 이미지

‘SF 사회’를 위해 오리지널 일러스트를 준비한 만화가이자 애니메이션 작가인 이애림의 「무제」를 비롯해, 김아영의 「수리솔 수중 여연구소에서」, 이샛별의 「사각숲」 등이 실렸다. 생태·도시·기술·인간 등의 분야에서 ‘다가올 것들(SF)의 형태’를 형상화하는 미래주의적 스케이프가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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