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총장이 갖춰야 할 덕목
상태바
대학 총장이 갖춰야 할 덕목
  • 김범수 편집기획위원/서울대 자유전공학부·정치학
  • 승인 2022.09.26 00: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범수 칼럼]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서울대학교의 차기 총장을 선출하는 과정이 한창 진행 중에 있다. 이번 총장 선출은 2011년 국립대학법인으로 체제를 전환한 이후 세 번째 맞는 총장 선출로 지난 8월 마감한 후보자 모집에 무려 13명의 지원자가 응모했다. 9월초 이들 13명의 지원자를 대상으로 학생과 직원 대표를 포함한 학내외 인사 30명으로 구성된 총장추천위원회가 1차 평가를 실시하여 4명의 총장예비후보자를 선정하였고, 10월초 교수와 직원 가운데 무작위로 뽑힌 약 450여 명과 학생들이 참여하는 정책평가를 실시하여 이들 4명 가운데 3명을 총장후보자로 이사회에 추천할 예정이다. 이후 11월 이사회에서 3명 가운데 1명을 최종 총장후보자로 선출하고 교육부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신임 총장을 임명할 예정이다. 

이처럼 총장 선출 과정이 복잡하고 여러 단계를 거치다보니 각 단계마다 학내 유력 인사들 사이의 이합집산과 이익 집단의 압력 행사가 비일비재하다. 교수들은 교수들대로, 직원들은 직원들대로, 심지어는 학생들마저 직위와 소속, 신분 및 특성에 따라 다양한 집단을 구성하여 자신들의 요구를 담은 ‘정책질의서’를 후보자들에게 보내고 문서로 확약을 받아내고자 한다. ‘한 표’, ‘한 표’가 아쉬운 후보자 입장에서 이러한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것은 쉽지 않다. 대부분의 후보가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 일부는 받아들이고 일부는 거절하는 전략적 선택을 한다. 하지만 일부 후보는 급한 마음에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모든 요구를 다 받아주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누군가 한 명은 총장으로 선출되지만 총장이 된 후 후보 시절의 약속을 모두 지키는 경우는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후보 시절의 약속을 뒤집기도 하고 ‘나 몰라라’하는 경우도 많다. 구성원들은 총장의 이러한 행태를 잘 알면서도 4년 뒤 유사한 과정을 다시 반복한다. 

대학 설립자 또는 설립자의 친족이 재단 이사회를 통해 사실상 총장 선임 과정 전체를 지배하는 사립대학의 경우는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국공립대학에서 총장 선출 과정은 아마도 서울대학교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소수의 학내외 인사로 구성한 위원회에서 후보자를 선별하고, 교직원과 학생이 참여하는 정책평가나 선거를 통해 최종 후보자를 선출한 다음 교육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는 큰 틀에서 비슷해 보인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총장 선출 과정에 나타나는 부작용과 폐해를 지적하며 과거의 임명제로 되돌아갈 것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국공립대학의 총장 선출 과정이 과거와 같은 임명제로 되돌아간다면 상황이 지금 보다 좋아지기는커녕 악화될 것이 분명하다. 총장에 뜻이 있는 학내외 인사들이 대학 구성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 교육부와 정치권의 눈치를 보며 정권에 줄을 대려고 기를 쓰는 모습이 안 봐도 눈에 선한다. 현 제도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정권의 눈치를 보는 것보다 구성원의 눈치를 보는 것이 대학 발전을 위해 그나마 낫지 않을까 싶다. 마땅한 대안이 없다면 현재 주어진 제도 하에서 훌륭한 능력과 덕목을 갖춘 사람을 총장으로 선출하는 것이 최선은 아니라 할지라도 차선은 될 것 같다. 

대학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일반화하기는 어렵겠지만 최근 서울대학교의 경우 총장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는 재정 확보 능력이다. 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정부출연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동시에 발전기금 모금과 수익사업을 통해 새로운 재원을 발굴하는 능력이 총장의 가장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이와 더불어 대학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며 설득과 소통을 바탕으로 학내 다양한 이해집단 간 갈등을 조정하고 대학발전이라는 목표를 위해 구성원의 잠재력과 역량을 결집해 낼 수 있는 리더십 능력 또한 총장이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더 나아가 대학의 최고 경영자로 복잡한 대학 행정 전반을 효율적으로 관장할 수 있는 행정 능력과 경영 능력도 총장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덕목이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도 중요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대학 총장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학자로서의 학식과 교육자로서의 교육 철학과 비전, 대학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의 인품이 아닐까 싶다. 일부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과거에 비해 대학 행정이 복잡해지고 재정 확보가 중요해짐에 따라 대학 총장이 기업의 CEO와 같은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기업의 CEO가 대학 총장의 모델이 될 수는 없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조직이고 대학은 교육과 연구의 수월성을 추구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대학 총장이 재정 확보 능력과 갈등 조정 능력, 그리고 더 나아가 탁월한 행정 능력과 경영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좋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부차적일 뿐이다. 교육과 연구가 존재 이유인 대학의 장으로서 총장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높은 학식과 훌륭한 인품을 바탕으로 명확한 교육 철학과 비전을 제시하고 구성원과 사회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 이러한 덕목을 갖춘 분들이 서울대학교뿐만 아니라 다른 여타 대학의 총장으로 선출되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김범수 편집기획위원/서울대 자유전공학부·정치학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후 미국 시카고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부원장과 한국정치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공정이란 무엇인가: 공정한 나를 지켜줄 7가지 정의론』(아카넷, 2022), 『한일관계 갈등을 넘어 화해로』(박문사, 2021, 공저), 『인권의 정치사상: 현대 인권 담론의 쟁점과 전망』(이학사, 2010, 공저) 등의 저서가 있으며, 정의, 인권, 평화, 민족주의 등 현대정치이론의 주요 주제를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