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전염병 시대, 지리적 분석으로 해답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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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전염병 시대, 지리적 분석으로 해답을 찾다
  • 박선미 인하대 사회교육과
  • 승인 2022.09.25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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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전염병의 지리학: 병은 어떻게 세계를 습격하는가』 (박선미 지음, 갈라파고스, 372쪽, 2022.08)

 

전염병과 각종 질병은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인류에게 치명적인 위협 요인이었다. 지난 수십 년간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전염병의 확산 속도와 범위 그리고 불확실성도 커졌다. 이 책은 전염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안내하는 의학 서적도, 전염병이 인류의 역사에 미친 영향을 시계열적으로 통찰하는 역사서도 아니다. 이 책은 특정 전염병을 통해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여러 지역에 대한 보편적 이해를 돕는 데 초점을 둔다. 

전염병은 특정 지역에서의 삶의 질을 파악하고, 지역 간 권력 관계를 해석하는 데 중요한 지표이다. 같은 전염병이라도 언제, 어디서 사느냐에 따라 그 위협 정도가 다를 수 있다. 사람들은 지역 간 건강 불평등이 존재하는 것에 대체로 동의하지만 그 원인에 대해서는 논쟁적이다. 건강 불평등의 원인을 개인적 행동 습관에 초점을 맞추는지, 지역의 환경에 초점을 맞추는지, 혹은 사회경제적 구조를 강조하는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고 해결 방안도 달라진다. 

동성애자가 에이즈에 걸리기 쉽다든지, 무절제한 식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비만과 고혈압에 시달린다든지 등 질병의 원인을 개인의 행동 습관에 초점을 맞춘 경우, 이주민이나 빈민들의 거주지역이 상대적으로 건강 수준이 낮은 이유도 그들의 문화나 생활습관에서 찾는 경향이 있다. 이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편견을 형성하거나 강화하기 쉽다. 한편 질병 발생의 지역적 차이를 특정 장소의 환경적 요인에 초점을 맞춰 설명하기도 한다. 그 경우, 건강 불평등의 분포 패턴은 자연환경이든 인문환경이든 특정 장소의 환경 차이로 치환되기 쉽다. 

건강 불평등의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서 건강, 사람과 장소 간 관계의 복잡성 및 다양성을 새로운 관점으로 개념화할 필요가 있다. 질병 발생 분포의 지역적 차이를 해석하기 위해 건강 불평등의 지도를 제시하기보다 장소가 주는 삶의 기회와 그 기회에 영향을 미치는 시장, 제도, 정치 규범, 문화자산을 포괄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질병은 빈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나쁜 건강 상태는 빈곤과 관련된다. 빈곤은 소득, 기술, 사회적 자본 등 개인적 자산의 무능력을 상징하는 한편, 경제적·사회문화적 구조의 산물이기도 하다. 부유한 선진국보다 빈곤한 저개발국에서 사는 사람들은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 예를 들어 말라리아는 의료 과학과 제약 기술의 발달로 부유한 국가에서는 사라지거나 대수롭지 않은 질병이 되었지만, 빈곤한 지역에서는 여전히 치명적이다. 

국경을 초월한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건강 불평등 문제는 특정 개인이나 국가가 통제하기 어려운 문제가 되었다. 신자유주의는 세계화의 담론과 정책을 주도했다. 신자유주의는 생산 체제와 규모, 고용구조 등을 유연화하고 국가의 역할과 개입 및 통제를 최소화함으로써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하고 그로 인한 시장의 자율성을 회복시키는 것을 최우선적 가치로 내세웠다. 이를 위하여 정부의 경제 개입 축소와 노동의 유연화뿐만 아니라 자유무역, 직접투자, 그리고 금융자본을 위한 더 넓은 세계 시장을 요구하였다. 선진국 간의 자본과 인구 이동이 증가하였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이동도 활발해졌다. 

특정 지역의 보건문제는 경제적 상호의존성과 여행 속도의 증가로 전 세계로 급속도로 확산하였다. 질병의 확산 속도는 빨라졌고 그 양상을 포착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해졌다. 세계화 이후 빈곤한 지역과 부유한 지역 간 질병의 지리적 경계는 점차 희미해졌다. 국경을 초월하여 빈번히 발생하는 팬데믹 상황은 세계 전체 인구집단의 건강에 위기감을 조성함으로써 정부, 세계보건기구, 시민사회가 개입하도록 하는 새로운 조건을 만들어 냈다.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의 HIV/AIDS 사례는 의료 문제가 국가와 같은 단일의 고립된 지역의 틀 안에서 고려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지역 간 연결성과 다양한 행위자의 네트워크를 잘 드러내는 전염병을 중심으로 질병의 불균등한 지리적 분포에 대한 이해를 넘어 질병 이면의 권력관계와 체제, 이질적인 관습과 문화 등 다양한 양상을 파악하도록 구성했다. 특히 다층적 공간 규모에서 서로 다른 목표와 관행 및 정책이 복잡하고 얽힌 세계화 결과를 포착하는 수단으로 의약품의 이동을 통한 의료, 지식, 치료 정책, 권력 관계 및 체제, 이질적인 관습, 유물뿐만 아니라 국가, 초국적 및 국제기구 및 행위자의 연결에 주목했다. 그리고 전염병은 공공의료와 같은 사회안전망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공공성을 확충하려는 노력에서 극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음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확인했다.  

이 책은 크게 네 가지 주제를 포함하고 있다. 첫 번째 주제는 전염병과 혐오 및 편견과의 관계이다. 1장과 2장에서는 전염병이 어떻게 기존의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편견이나 혐오 그리고 차별을 증폭시키는지 그리고 반대로 이러한 기존의 문제들이 전염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두 번째 주제는 전염병과 서구/비서구의 구분이다. 3장과 4장 그리고 5장에서는 전염병이 어떻게 서구와 비서구를 구분 짓는 허위의식을 만들어내는지 그리고 반대로 오리엔탈리즘과 같은 편견과 갈등이 전염병에 대한 인간의 인식을 어떻게 왜곡하는지를 보여준다. 세 번째 주제는 전염병과 세계화이다. 6장과 7장에서는 냉전의 해체와 급속히 전개된 세계화가 특정 지역에서의 전염병 발생을 초래하며 이에 대한 다른 국가들의 개입 방식과 정도에 영향을 미침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주제는 전염병의 대응 과정에서 시민사회와 국가의 역할이다. 8장과 9장은 세계 여러 국가에서 전염병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시민단체와 그들 간의 초국적 연대가 어떻게 힘을 발휘하는지 그리고 정부의 정책 선택 및 집행 능력 그리고 정부에 대한 시민의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박선미 인하대 사회교육과

고려대학교 지리교육과를 졸업하고, 이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인하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사회과 교사가 길러야 할 소양, 지역 공간에 내포된 불공정한 구조와 그 안에 내재된 권력 구조, 세계 시민성과 다문화 교육에 관한 연구를 해 왔다. 학부와 대학원에서 사회과 교육, 다문화 교육 및 부와 빈곤의 글로벌 지도 등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빈곤의 연대기』(공저), 『한국 지리교육과정의 쟁점과 전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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