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가 절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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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가 절실해
  • 신창석 대구가톨릭대·중세철학
  • 승인 2022.09.25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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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어릴 적 살던 시골에서는 “정말”이라는 말보다 “참말”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 “정말”과 “거짓말”보다는 “참말”과 “거짓말”을 짝으로 많이 쓴 것 같다. 도시로 전학을 오니 아이들이 “참말로?”라는 말 대신에 “정말로?”라고 반문했다. 그래서 나는 “참말”을 방언인줄 알고, 이후로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그때는 지역마다 방언이 강하게 살아있기도 했지만, 그 지역과 다른 말을 쓰면 아이들 사이에서 놀림감이 되기 때문이었다. 

우연히 “참말”이 정말로 방언인지 확인하고 싶어져서 검색을 해보았다. “참”은 “사실이나 이치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는 것” 또는 “[철학]이치 논리에서 진릿값의 하나로 명제가 진리인 것”을 뜻했다. “참말”은 “사실과 조금도 틀림이 없는 말” 또는 “겉으로 내비치지 아니한 사실을 말할 때 쓰는 말”을 뜻했다. 한마디로 “참”은 진릿값이요, “참말”은 진릿값을 지닌 말이다. “참말”은 방언이 아니라, 그야말로 진릿값을 나르는 “참된 말”이었다. 참의 반대는 거짓이요, 참말의 반대는 거짓말이다. 거짓말은 거짓을 나르는 말이다. 그래서 말은 참뿐만 아니라 거짓을 나르는 도구요 매체이다. 말은 약뿐만 아니라 독도 나르고, 선뿐만 아니라 악도 나른다. 말은 아름다운 것뿐만 아니라 추한 것도 나른다. 

그러고 보니 “참”은 우리말에서 진실과 순수를 추구하는 영혼의 표현이었다. 굶주리던 보릿고개에 먹을 수 있는 분홍 꽃은 참꽃. 나락[벼] 중에서도 보다 찰진 양식이던 참나락[찰벼]. 한번 불태우고도 또다시 알찬 숯불로 피울 수 있는 나무는 참나무. “깨가 쏟아진다”는 우리네 삶의 맛과 재미를 표현하는 참깨, 겉으로 내비치지 않으면서도 맛 중의 맛을 내는 참기름. 오이 중에서도 달달한 외는 참외, 백합과 같은 나리 중에서도 불그스레 더욱 애틋하여 순결을 꽃말로 하는 참나리. 산천에 흩어진 수많은 나물 중에서도 눈을 밝게 한다는 참나물. 

고대 그리스문화는 일찍이 “참”을 찾아 나섰다가 “대화”(dialogos)라는 진리탐구의 방법을 개발했다. 소크라테스는 정치적 올가미에 목숨을 걸고 아테네 청년들과 대화를 시도했고, “참”에 목마른 청년들은 스승과의 “대화”를 다듬고 기록하여 하나의 문학 장르로서 “대화편”을 완성시켰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스승과 제자는 참말의 잔치를 “대화”로 승격시켜 철학(philosophos)이라는 학문과 아카데미(akademicos)라는 교육체계를 만들어냈다.

그리스인들의 대화, 즉 “디아로고스”(dialogos)에 대한 해석도 오해를 받은 적이 있다. 혼자서 말하는 독백 “모노로고스”(monologos)와 둘이서 또는 마주 대하여 말하는 대화 “디아로고스”(dialogos)라는 선입견이었다. 물론 그리스어에서 모노(mono)는 “하나”를 뜻하고 로고스(logos)는 말이나 논리를 뜻하지만, 디아로고스(dia+logos)의 디아(dia)는 “둘”이 아니라 정확하게는 “통하여” 내지는 “흐름이나 관계”를 뜻한다. 따라서 디아로고스, 곧 “대화”는 어원적으로 “통하는 말”, “서로 통하는 말”, “흐르는 말”, “말의 흐름”을 의미한다. 즉 대화란 “서로 통하여 흐르는 말”이요, 당연히 “영혼으로 서로 통하여 흐르는 말”이다.

그리스철학의 대화는 근본적으로 상대에 대한 향응이었다. 플라톤은 철학하는 동료나 제자들과 나누는 대화를 “말의 향응”(logon hestiasis)이라 불렀다. 말의 향응이란 상대방을 “훌륭한 생각과 말로 접대한다”는 뜻이다. 플라톤과 대화를 하는 사람이 “저는 완전하고 훌륭한 말의 향응을 받을 것입니다”[티마이오스, 27b]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또한 대화란 “훌륭한 말들과 생각의 성찰로 대접하는 것”[국가, 571d]이라고 말한다. 요즘 사회나 정치에서 자주 등장하는 향응이나 접대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달달한 “립서비스”((lip-service)는 더더욱 아니다. 원래 대화란 서로의 영혼을 찾아내어 위로하는 말의 향응이요 이야기의 접대이며, 결국 참말로 서로를 대접하는 일이다.  

요즘 매체는 그 어느 시대보다도 다양하게 발달한 반면에, 매체가 나르는 사람들의 말은 점점 더 독하고, 극단적이고, 추하게 들린다. 사람들이 잘 살고 나라의 품격이 높아질수록, 서로 참말을 하면서 마음 편히 살아야할 터인데... 어쩐 일인지, 어디까지 갈 것인지 불안하다. 참말은 참말로 말하기도 힘들고 듣기도 어려운 시대이다. 그래도 참말로 대접받을 수 있다면 내 영혼이 곧 나을 것이다. 그래도 참말로 대접해줄 수 있다면 내 마음이 곧 편해질 것이다.
 
음악이 정적에서, 그림이 백지에서, 춤이 정지에서 시작한다면, 대화는 경청에서 시작하지 않겠는가? 참말로 대화가 절실하고 참말로 대접받고 싶다. 먼저 입을 다물고 귀 기울여 봐야겠다. 


신창석 대구가톨릭대·중세철학

대구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 경북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 철학부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행위론으로 철학 박사학위를 받고, 교육부 초빙교수(Brain pool)를 역임했다. 2002년 독일어 저서 『Chang-Suk Shin, Imago Dei und Natura hominis 1993』는 프라이부르크대학교 교재로 선정된 바 있으며, 2008년 공동한역서 『삼비아시, 영언여작, 2007』는 한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바 있다. 그 외 저역서로 『중세 여성철학자 트리오』, 『빛 속에서 보다, 힐데가프트 폰 빙엔』, 『성공적 행위를 위한 테마철학』, 『씨앗은 꽃에 대한 기억이므로』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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