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무능해야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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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무능해야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 승인 2022.09.24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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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명의 생활에세이]

 

독재자들은 대체로 유능하다. 물론 안 그런 사람도 있지만 대체로 그렇다. 독재자들은 무력이나 독재 정당 안에서의 권력 투쟁을 통하여 권력을 잡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자비하고 유능해야 한다. 한 나라를 쥐고 흔들면서 앞으로 또는 뒤로 끌고 나가야 하기 때문에 국민과 권력층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승만도 유능했고 박정희도 유능했다. 전두환도 무능했다고는 할 수 없다. 국가 경영에서 말이다. 이 말을 듣고 독재자를 옹호했다고 흥분할 사람이 있을 줄 아는데, 이런 사람들은 말귀를 못 알아듣는 딱한 사람들이다. 악에서든 선에서든 유능은 유능이고 무능은 무능이다. 

그러면 왜 민주화 이후에는 모든 대통령들이 다 무능했는가? 그것은 민주적 정치 과정을 통해서 대통령이 되는 사람들은 모두 너저분하고 지저분한 권력 투쟁 과정에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독재자들은 총으로 정적을 쏴버리면 그만인데(물론 그러다가 자기가 총 맞고 죽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명색이 민주주의인 나라에서는 정치인들이 온갖 치졸하고 너저분한 싸움을 다 해야 한다. 마누라가 기사에게 갑질을 했느니 아니니, 법인 카드로 이발을 했느니 아니니, 아들 친구의 선배의 사촌이 돈을 떼어먹었느니 아니니, 이런 싸움을 매일같이 해야 한다. 말이 좋아 정책 경쟁을 해야 한다지만 그까짓 정책이야 이쪽 아니면 저쪽으로 뻔하고, 자세한 것은 어차피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전문가한테 맡겨야 한다. 그런데 그 전문가들도 어차피 이쪽 아니면 저쪽으로 의견이 갈린다는 사실이 함정이다. 

국가를 이끌어갈 비전을 갖추고 국민 통합을 이루며 민생을 챙기면서 이웃 나라와도 잘 지내고 국민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줄 우리의 지도자? 그런 사람이 도대체 어디에 있나? 없다, 적어도 정계에는. 그러니 국민들이여, 낮은 데로 임하소서. 그 정도는 아니라도 정직하고 깨끗하고 성실하고 양심적으로 나라 살림을 꾸려나갈 국가 경영자는 없는가? 없을 리 없다. 찾아보면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그 너저분한 현실 정치의 흙탕물을 견딜 수 없다. 그런 사람은 애당초 정치를 시작하지도 않겠지만 어찌어찌 하다 정치에 발을 들였다 해도 얼마 안 가 나가떨어지고 말 것이다. 내가 유능한데, 무슨 짓을 해도 먹고 살 만하고 남의 존경도 받을 만한데, 그 너저분한 곳에서 500원을 유용했느니 안 했느니 하는 싸움질을 하고 있을 것인가? 

한국에서 실제로 대통령이 된 사람들은 이런 모든 과정을 견뎌낼 만큼 권력욕이 강하든가 아니면 그야말로 어찌어찌 하다 보니 정계의 일선에 불려 나오게 된 사람들이다. 김영삼이나 김대중이 전자라면 박근혜나 윤석열이 후자가 아닐까? 문재인도 후자에 가까운 것 같고, 노무현이나 이명박은 둘의 혼합인 것 같다. 어찌 보면 이런 사람들도 보통 사람은 가질 수 없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박해와 너저분함을 견뎌내는 능력이다. 자신이 보통 사람임을 강조했던 노태우도 여소야대의 민주화 과도기에서 국민과 정적의 온갖 공격을 견뎌낸 점에서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좋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 필요한 능력은 그런 능력이 아니라 국민 통합과 국가 경영의 능력이다. 대통령이 되기 위한 과정에 필요한 능력, 즉 권력욕과 뻔뻔함과 인내심은 대통령 업무 수행 능력과는 판이하다. 대통령이 ‘되는’ 능력과 대통령을 ‘하는’ 능력은 판이하다. 한국에도 대통령 업무 수행 능력을 지닌 사람들은 많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대통령이 되는 과정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대통령이 되지 못한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민주 정치의 역사가 우리보다 긴 나라들에서는 사정이 좀 나으리라 짐작한다. 그러나 본질은 같을지 모른다. 역사에서 존경받는 지도자들도 이면을 까보면 추악한 면이 많으리라 본다. 그러나 어쨌든 그들은 대통령이 된 이후에 이룩한 업적 덕분에 존경을 받는다. 우리나라도 앞으로 민주 정치의 역사가 쌓이면서 사정이 나아지리라 기대한다. 대통령이 ‘되는’ 능력과 ‘하는’ 능력을 겸비한 사람은 언제 나올까?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명예교수로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 도쿄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한글문화연대 대표 등을 지냈으며, 한국정치학회 학술상, 외솔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 『담론에서 실천으로: 한국적 정치학의 모색』, 『단일 사회 한국: 그 빛과 그림자』,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 한국 불교, 이것이 문제다』, 『대한민국 정치사』, 『한국 정치의 성격』, 『정치란 무엇인가: 김영명 교수가 들려주는 정치 이야기』 등 다수가 있다. 최근 수필집 『봄날은 간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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