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은 언제 순순히 세금을 내고, 언제 저항을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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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은 언제 순순히 세금을 내고, 언제 저항을 했는가?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9.18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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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금의 흑역사: 두 경제학자의 눈으로 본 농담 같은 세금 이야기 | 마이클 킨·조엘 슬렘로드 지음 | 홍석윤 옮김 | 세종서적 | 568쪽

 

“역사학의 아버지” 헤로도토스가 ‘약탈’이라고 묘사한 이것! 벼룩의 간을 빼먹는 대신 세금으로 부과한 잉카, 자신의 집에 세금을 물리는 것을 모욕으로 받아들인 아프리카 추장, 블록체인을 닮은 명나라의 하천 통과세, 세금을 통한 부의 배분 문제, 미래에 등장할 로봇세와 유전자 과세까지.

문명과 국가의 동력은 바로 세금이었다. 기원전 2,500년 수메르의 점토판 기록으로 남은 것은 세금 납부 영수증이다. 거기서 5백년이 흐르면, 탈세한 밀수품을 들여오다 감옥에 갇히는 상인이 등장한다. 사실 이 책 어디를 들춰봐도, 다양한 시대 다양한 곳에서 사람들은 세금과 경쟁하고 숨바꼭질을 해왔다. 사회계약설의 토머스 홉스가 간파했듯이, “내 거”에서 떼어내 바치는 행위는 불공평만큼이나 참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 인간적인 발로가 세금과 통치제도를 가다듬어왔다.

이 책은 국가와 시민 간에 영원한 도전과 응전이었던 세금이 어떻게 역사 속에 기록되었는지, 그리고 현실의 세금 문제를 해결하는 데 과거 사건들이 어떤 단서를 제공할지 이야기를 통해 보여준다. 세금의 역사에서는 언제나 폭동이 일어나고, 전쟁이 벌어지고, 악당이 등장하고, 황당한 일이 벌어지지만, 이런 과거의 일들이 세금의 미래를 가늠하는 데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세금을 교묘히 감추고 걷으려는 세금 넛지 사례만큼이나, ‘싱글세’에 가짜 청혼 증명서를 제출하는 창의와 혁신의 드라마가 흥미롭다. 또한 인플레이션은 집값 등의 상승으로 조용히 세금을 더 많이 걷게 한다, 블록체인으로 거래과정이 모두 밝혀지면 각 단계별 부가가치세가 법인세를 대체할 것이라는 경제적 혜안도 들어 있다.

이 책은 공정의 문제(수직적 형평성·수평적 형평성), 조세 귀착, 효율성과 최적 과세, 세금 징수자, 조세 정책과 미래 과제 등의 주제를 흥미로운 에피소드로 담아낸다. 남미, 인도, 아프리카 등 다양한 국가 사례를 포함하는데, 한국과 관련해서도 세 차례 언급이 있다. 저자들은 서문에서, 동의하기 어렵겠지만 한국이 선진국들의 조세 기준보다 상대적으로 세금이 많지 않다고 말한다. 또한 신용카드 사용액으로 연말정산에서 세금 공제 혜택을 주고, 목적세를 많이 걷는 조세 정책의 효과를 가늠해본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봤듯이, 불평등의 조정자로서 정부의 역할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러나 부유층에 걷는 부유세는 적어도 미국에서는 헌법에 위반한다고 강한 저항에 부딪혀 왔다. 저자들은 생산 단계마다 과세하는 ‘천재적인 세금’ 부가가치세가 미국에도 조만간 도입되리라 전망한다. 다국적 기업의 디지털 서비스세가 부과될수록 세금을 피하는 기술도 한 단계 도약할 것이고, 정부의 시름은 깊어져간다. 국경 밖으로 도망갈 수 없는 재산, 즉 토지에 대한 과세가 각광받는 이유다.

초기 세금 중에는 야만적인 행위가 다수였다. 이웃 나라를 무력 정복해 몰수해온 곡물과 귀중품이 곧 세금인 셈이다. 게다가 패전국 사람들을 노예로 부리는 것도 모자라, 매해 꼬박꼬박 금전이나 공물을 바치게 했다. 반면 아테네의 세금은 귀족의 기부 같은 명예로운 행위였다. 국가적인 행사에 귀족들은 ‘자발적으로’ 헌납했다. 최근까지 국가의 위기 때 금 같은 자발적인 기부가 장려되었던 것이 떠오른다.

근대에 들어와서도 국가가 보통 사람들한테 세금을 걷는 게 일상은 아니었다. 전쟁처럼 큰돈이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소득세를 걷을 때에 한해 사람들은 수긍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국가와 왕실의 씀씀이가 커져서, 거추장스러운 세금보다는 즉각적인 빚(채권 발행)을 선호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한 달 뒤 내야 할 세금보다는, 가늠할 수 없는 미래에 모두가 부담하는 국채에는 관심이 덜했다.

세금은 오늘날 개인들이 경험하는 가장 강력한 국가의 통치 행위이자 강제 행위다. 국가로서는 저항을 낮추기 위해 각종 수수료 명목으로, 기업이란 대리인을 통한 원천징수, 군대 징집 같은 노역 세금 등 우회적 징수로 다변화하게 된다. 시민 의식이 커질수록 여느 통치 행위와 마찬가지로 세금에 대한 합의를 요구하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1부 약탈과 권력’에서는 큰 그림을 설명하며 세금 역사의 에피소드를 몇 가지 소개한다. 여기에는 오랜 세월 정부가 보통 사람들에게 세금을 걷으려고 어떤 노력을 했는지 끔찍한 이야기부터 흥미진진한 이야기까지 모두 다룬다. ‘2부 승자와 패자’에서는 과세의 공정성을 이야기한다. 아무리 사악한 통치자라도 살아남으려면 세금에 신경 써야 했고, 그에 대처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실수하면서도 영리하게 행동했음을 보여준다. 2부에서 우리는 세금에서 진짜 부담을 짊어진 사람이 정확히 누구인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적어도 중세 이후 영국의 정책 입안자들을 고민하게 했을뿐더러 오늘날의 정치 제도를 이루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3부 행동 방식이 바뀌고 있다’에서는 이집트 파라오 시대에서 지금의 다국적기업에 이르기까지 세금을 내지 않는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한 인간의 기발한 창의적 능력을 보여준다. 또 정부가 그런 비열한 행위를 어떻게 다루거나 다루지 않았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도 설명한다. ‘4부 세금은 저절로 걷히지 않는다’에서는 인간 본성의 최선과 최악을 모두 이끌어내는 고통스러운 세금 징수 기술과 고대 중국의 화려한 청동기에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상공의 드론에 이르기까지 정부가 갖은 규칙과 법을 동원해 세금을 내도록 위협하고, 꼬드기고, 설득하면서 찾아낸 방법을 설명한다.

‘5부 세금 규칙 만들기’에서는 세금 정책을 입안하는 복잡한 현실을 살펴본 다음 각 정책이 거둔 눈부신 성공과 실패를 설명한다. 세금 제도는 결코 사라지지 않겠지만 미래에는 과거와 매우 다른 형태를 취할 것이므로 미래의 세금 제도에 대처하도록 몇 가지 교훈도 찾아본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의 세금 제도 중 미래 세대가 비웃을 만한 어리석은 제도는 무엇일지 추측하면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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