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에게 듣는다_ 『데리다와의 데이트: 나는 애도한다, 고로 존재한다』 (강남순 지음, 행성B, 440쪽, 2022.08)

한 권의 책은 복합적인 세계들을 담아낸다. 그 한 권의 책에서 어떠한 세계와 만나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읽는 사람에게 달려있다. 여타의 모든 읽기란 ‘자서전적(autobiographical)’이기 때문이다. <데리다와의 데이트: 나는 애도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강남순’이 만나온 또한 만나고 싶은 ‘데리다’라는 광활한 세계의 지극히 일부를 담아낸 것이다. 내가 데리다에게 끌리게 된 것은 그가 유명한 학자라는 공적 이유가 아니었다. 우연히 데리다가 남긴 자신의 장례식 조사를 접하면서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 조사를 되풀이해서 읽고 음미하면서 비로소 학자나 사상가로서보다는 섬세하고 복합적인 시선을 지닌 한 ‘인간으로서의 데리다’를 알고 싶다는 강한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췌장암에 걸린 데리다는 죽기 전에 자신의 장례식 조사를 작성하여 남겼다. 데리다의 장례식에서 그의 아들이 이 조사를 읽는다. 나는 이 데리다가 스스로 쓴 자신의 장례식 조사를 우연히 접하면서, 돌연히 그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난해한 철학자’라기보다, 모든 생명과 삶에 대한 인정과 환대를 죽음에 이르기까지 품고 있는 따스한 시선을 지닌 한 인간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데리다와의 데이트가 시작되게 된 배경이다. 내가 이 책의 부제로 삼은 “나는 애도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리다의 말은 세상에 회자되는 데리다의 유명한 그 어떤 말들보다 데리다를 가장 잘 드러내는 구절이라고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너와 나의 관계가 형성되자마자, 그것이 어떤 관계든 애도는 시작된다. 언젠가 둘 중 한 사람은 다른 이가 먼저 떠나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 우리의 존재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음의 반복성에도 불구하고 “매 죽음마다 이 세계의 종국”인 것이다. 그 어느 죽음도 숫자나 이슈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내가 만나고자 하는 데리다는 누구인가.
‘데리다’처럼 상충적인 평가를 받은 철학자는 드물다. 데리다는 회의적 허무주의자, 난해한 이론가, 진리, 정의, 대학, 그리고 중요한 제도들과 가치들의 적, 상대주의자, 반이성(anti-reason)주의자, 컴퓨터 바이러스, 젊은 사람들을 타락시키는 위험한 자, 지적 테러주의자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 반면 데리다가 누구인가에 대하여 환대의 예술가이며 시인, 삶의 사상가, 기도와 눈물의 사람,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살아있는 철학자, 20세기 가장 중요한 철학자들 중 한 사람, 세계 시민, 경계 없는 사상가, 아포리아의 사상가, 차연의 사상가, 어떤 질문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상가, 남아공의 아파르타이드와 인종차별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비평가라고 평하기도 한다.

데리다에 대한 이러한 고도의 상충적인 평가는 놀랍지 않다. 문자화된 것만이 아니라, 이 ‘세계’를 ‘텍스트’라고 하는 데리다의 보기 방식, 읽기 방식, 쓰기 방식, 그리고 해석 방식은 전통적인 학문적 방식의 틀을 홀연히 벗어나기 때문이다. 데리다와 연결되어 따라오는 ‘해체’는 학술서만이 아니라, 하다못해 대중음악이나 요리책 등 도처에서 언급되지만, 그 ‘해체’에 대한 왜곡된 해석으로 인해 데리다는 끝없는 오해 속에 놓여진다. 데리다 스스로 한탄하였듯이 ‘해체’를 ‘허무주의’나 ‘상대주의’ 등과 연결되어 데리다의 글을 거의 읽지도 않거나 또는 읽었다 해도 지독하게 왜곡하는 시각으로 보는 이들에 의해 ‘데리다에 대한 전적 왜곡의 대명사로 해석되어 왔다. 이러한 복합적인 ‘데리다는 누구인가’라는 단순한 듯한 물음은 무한하게 전개되는 미로를 탐색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철학자”라고 해도 그의 철학이 학문 세계의 담 안에서만 논의되면서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회자된다면, 그 ‘위대함’의 의미란 과연 무엇인가. 내가 이 책에서 시도하는 것은 바로 데리다를 학문 세계의 담 밖으로 초대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일상 세계에서 씨름하며 살고 있는 이들에게 연결시키는 것이다. 어쩌면 ‘학자’의 중요한 책임과 과제 중 하나는 데리다의 표현대로 ‘중재자’이며 ‘번역자’이기도 하다. 강의실 안과 강의실 밖을 연결하고, 학문세계와 일상세계 사이를 ‘중재’하고, 학문세계의 언어를 일상세계의 언어로 ‘번역’하는 역할이, 학자 또는 공공 지식인 (public intellectual)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라고 나는 본다. 그래서 그 ‘위대한’ 철학과 사상이 일상세계를 살아가는 개별인들의 삶은 물론, 그들이 속한 사회를 보다 정의롭고, 평등하고, 평화로운 곳으로 만드는 데 작은 변화의 씨앗을 뿌리는 삶의 ‘지혜’를 확산하도록 하는 동력의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일상세계에서 데리다를 만나게 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이 책의 작업을 하면서, 책에 들어갈 주제들을 정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가장 커다란 과제였다. 처음에 약 20개의 개념과 주제로부터 시작해서, 결국 13장에 들어갈 주제로 좁혔다. 시작이란 무엇인가, 왜 데리다와의 데이트인가, 왜 데리다인가, 데리다는 누구인가, 데리다의 저작과 공적 활동, 데리다와의 데이트를 위한 읽기, 정치적·윤리적 책임성으로서의 해체적 읽기, 해체, 환대, 애도와 연민, 동물에 대한 범죄, 데리다의 종교, 그리고 마지막으로 함께 살아감의 과제로서의 데리다의 유산 등의 주제를 다루었다.

이 책에서 나는 내가 이전에 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책을 구성하는 몇 가지 시도를 했다. 첫째, “데리다의 글소리”라는 항목이다. 내가 만든 용어인 “글소리”라는 표현은 많은 이에게 생소할 것이다. 우리가 지닌 각기 다른 목소리처럼, 글 역시 그 사람만의 고유한 ‘소리’가 있다고 경험한다. 마치 말을 할 때 듣는 목소리인 ‘말소리’처럼, 글에서도 독특한 각기 다른 ‘글소리’가 나온다고 본다. 데리다에 ‘관하여’ 만을 읽고서, 데리다에 ‘의한’ 글들은 접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특정 음악에 대한 소개서만을 읽지만 그 음악 자체를 들어보지는 않는 것과 같다. 다른 사람이 평가하고 소개한 것은 참고사항으로 삼으면서, 직접 그 음악을 듣고 스스로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과 같다.
이 책은 13장으로 되어 있으며, 매 장 첫머리에 나는 “데리다의 글소리”를 한글만이 아니라 영어로도 소개한다. 한글과 영어로 이 데리다가 직접 쓴 글을 소개하는 이유는 하나다. 데리다는 주로 불어로 글을 썼는데, 불어를 영어로 번역한 글은 두 언어구조 사이의 유사성 때문에 한국어로 번역된 것 보다는 원본과의 거리가 훨씬 적다. 그래서 한글로만이 아니라, 영어로도 그 글의 색채를 보다 근접해서 느끼도록 두 언어를 병렬했다. 그래서 강남순의 시선으로 만나는 데리다만이 아니라, 독자가 직접 데리다의 글을 읽고, 데리다에 대한 느낌을 직접 경험하라고 하는 나의 제안의 제스처가 바로 ‘데리다의 글소리’ 모음이다. 또한 책을 열면 “차례” 다음에 각 장에서 소개한 데리다의 글소리를 모두 한 곳에 모아 놓았다. 13장에 분산되어 있는 데리다의 글소리를 함께 합쳐 놓아서, 독자들이 쉽게 데리다의 글소리 전체를 반복해서 읽고 만나도록 하기 위해서다.

내가 이 책에서 한 두 번 째 새로운 시도는“개별성의 독자들께: ‘읽기-예식’을 위하여”라는 ‘편지’글로 참고문헌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개별성의 독자(reader of singularity)"란 ‘독자-일반(reader-in-general)”이라는 것은 집단적 표지에 대한 나의 ‘문제 제기’의 한 방식이다. 그리고 예를 들어서 데리다 사망 후 나온 부고 기사들을 따로 모아 놓았고 그 부고 기사 중 데리다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한 기사와 부정적 평가를 한 기사를 독자가 알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참고 문헌들이 한글이 아닌 영어 자료들인데 주로 한국어를 사용하는 이들에게 어떤 의미인가. 나는 자료의 제목만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존재한다는 것은 상속한다는 것이다. 상속은 주어진 것(a given)이 아니라, 과제(a task)다.” 데리다의 말이다.
2004년 10월 9일 데리다의 죽음 후, 오랜 시간이 지났다. 데리다가 남긴 ‘유산’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는 다양한 장에서 계속되고 있다. 데리다는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의 초청을 받고 2004년 여름에 독일에 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2004년 가을에 이 지구에서의 삶을 매듭지었고 가지 못 했다. 데리다의 죽음 후 그 당시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의 총장이었던 피터 호멜호프(P. Hommelhoff)는 “데리다는 학문적 영역으로서의 철학의 경계를 넘어 인문학만이 아니라 우리 시대 전체의 문화적 인식을 위한 선도적인 지성인이었다”라고 데리다를 평가한다. 그런데 데리다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은 무엇인가는 객체화되어 고정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데리다가 남긴 유산을 상속받는다는 것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과제”라는 말은 심오한 의미를 지닌다. 데리다와 만나는 각자가 자신의 삶에서 데리다 전통을 어떻게 만나고, 연결시키는가는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과제로 남아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한글로 쓴 여러 권의 책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것을 이 책에서 시도한다. 앞서 소개한 것 이외에, ‘헌사’를 남긴 것이다. 데리다가 자신의 장례식에서 읽도록 하는 조사를 작성했는데, 그 마지막 문장을 가지고 나는 나의 헌사를 시작했다. 이 마지막 문장이 데리다가 내게 남긴 유산을 상징적으로 품고 있는 심오한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To 자크 데리다 Jacques Derrida(1930-2004)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내가 어디에 있든지 당신을 향해 웃을 것입니다”라며,
미소와 생명의 긍정의 심오한 의미를 가르쳐준 데리다,
깊은 고마움을 가지고 당신과 이 책을 나눕니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지.
(In gratitude for the unique life and smile of Derrida,
who taught me the profound meaning of smile and hyperaffirmation of life, with this line,
“I love you and am smiling at you from wherever I may be,”
wherever you may be.)
강남순 텍사스 크리스쳔 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현재 미국 텍사스 크리스천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Texas Christian University Brite, Divinity School) 교수이다. 미국 드루대학교(Drew University)에서 철학 석·박사(Ph.D) 학위를 받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신학부에서 가르쳤다. 2006년부터 텍사스 크리스천대학교에서 자크 데리다 사상, 코즈모폴리터니즘,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콜로니얼리즘, 페미니즘 등 현대 철학적·종교적 담론들을 가르치고 있다. 특히 이마누엘 칸트, 한나 아렌트, 자크 데리다 등의 사상과 연계해서 코즈모폴리턴 권리, 정의, 환대 등의 문제들에 대해 학문적·실천적 관심을 두고 쓰고 가르치고 강연하며 다양한 국제 활동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