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자유와 진리 그리고 양심은 죽어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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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자유와 진리 그리고 양심은 죽어가고 있는가?
  • 남송우 논설고문/부경대 명예교수·국문학
  • 승인 2022.09.18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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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송우 칼럼]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김 모 씨의 학위 논문이 심각한 표절 의혹으로 많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른 것이 이미 오래 전이다. 그런데 학위를 수여한 해당 대학이 김 씨의 논문을 오랫동안 검토한 결과 표절이 아니라는 결과를 발표함으로써 소위 학문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또 다른 절망을 안겼다. ‘표절이냐 아니냐’라는 결론이 준 단순한 절망이 아니라, 그 논문을 검토한 자들의 신상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음으로써 대학이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학문적, 도덕적 양식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든 심사의 결과는 심사자들의 양식과 책임성이 뒤따른다. 특히 대학에서의 연구논문과 관련된 심사인 경우는 더더욱 심사자의 책임성이 필수적이다. 책임성 있게 공개할수록 결과에 대한 신뢰도는 높아질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숨기는 결과를 내보임으로써 더 많은 의혹을 갖게 했다. 

××대학의 입장에서는 심사결과가 표절에 해당한다고 결론을 내리고 발표했을 경우에 처하게 될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표절 대상이 된 논문의 원저자가 문제를 제기하였고, 학문의 길에 들어선 초보자가 보아도 표절일 수밖에 없는 사실을 한 대학의 책임자들이 이렇게 처리한다는 것은 대학이 이미 죽었음을 선언하는 바와 같다.
 
이미 한국 대학은 독자 생존을 위한 자구책으로 각 대학마다 다양한 특수전문대학원을 개설해서 학위를 수여함으로써 소위 학위 세탁자들의 온상이 된 지 오래다. 대학원에서 공부할 기본적인 역량이 있든 없든 돈 있고 여유는 있으나 학력이 없어 학력 세탁이 필요한 자들을 많이 모집하여 대학 운영을 위한 재원을 확보하는 도구로 활용해 왔다. 여기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대학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학들이 운영을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이를 활용해 온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여기에는 국•공립, 사립대학의 구분이 별로 의미가 없다. 모든 한국 대학들이 스스로 그렇게 논문을 생산해서 판매하는 기업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 특수전문대학원을 수료하고 학위논문을 써야 하는 자들은 논문 쓰기의 기본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형편이어서, 자연 논문 대필업을 활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모든 특수전문대학원의 논문들이 논문 대필자들의 손을 거쳐 나온 상품들이라고 강변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많은 대학들이 개설한 특수전문대학원에서 학위를 준 논문들의 질이 한결같이 높지 않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이는 이미 대학이 전통적인 자유와 진리의 상아탑으로부터 벗어났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하더라도 기본적인 양식은 저버리지 않아야 대학의 기본적인 위신을 지켜나갈 수 있다.

김 모 씨의 학위논문 표절 의혹은 우리 대학들이 그 동안 저질러온 대학의 치부가 드러나는 일부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한국 대학의 갱신을 위해서는 이를 마냥 묻어두고 지나가려는 비양심적인 대응을 넘어 대학들이 정직하게 드러내고 가야 할 과정이다. 이런 차원에서 최근에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사교련)·전국교수노동조합 등 14개 참여단체로 구성된 김 모씨 논문표절 검증을 위한 범학계 국민검증단이 대국민 보고회를 열고 김 모 씨 논문 검증 결과를 공개한 것은 아직은 대학의 양심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그런데 이러한 대학의 양심적인 선언을 모 정치인은 정치적인 판단이라고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으니, 소위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정치꾼들의 학문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도 못하고 있는 무식의 정도와 양심의 수준이 어느 선까지 타락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는 아직까지 한국 정치는 모든 영역을 다 마음대로 통치하고 조정해 나갈 수 있다는 후진적 사고가 상존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장면이다. 대학이 추구하는 자유와 진리는 정치를 넘어선다. 대학의 자율성의 확보와 발전은 이로써만 가능하다. 한국의 정치가 지금까지 대학을 이렇게 간섭할 수 있었기에, 이런 정치적인 폐해를 ××대학은 저어함으로써 대학의 양식을 저버리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는 대학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지름길이다. ××대학은 ‘김 씨의 학위논문이 표절이 아니다’라고 선언함으로써 정치적인 혜택을 기대할지 모르지만, 한국 대학 속에서의 위상은 갈수록 추락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생각이 있는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을 선호하게 될 가능성은 더 낮아질 것이다. 진실은 결국 언젠가는 세상에 드러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김 모 씨의 또 다른 논문 표절 의혹 조사가 진행 중에 있다. 숙명여대 석사논문 표절 의혹이다. 숙명여대는 조사에 참여한 교수들이 학자의 양심과 자유를 바탕으로 대학의 위상을 제대로 지켜나갈 수 있는 판단을 신속하게 내려주기를 기대한다. 대학 지성의 부끄럽지 않은 양심과 책임성만이 대학의 타락과 죽음을 막아서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남송우 논설고문/부경대 명예교수·국문학

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로 부산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분에 「윤동주 시에 나타난 자기의 문제」로 당선, 평단에 나왔다. 평론집 『전환기의 삶과 비평』, 『다원적 세상보기』, 『생명과 정신의 시학』, 『대화적 비평론의 모색』, 『비평의 자리 만들기』, 『이것저것 그리고 군더더기』 등이 있다. 부산작가회의 회장, 부산문화재단 대표이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인본사회연구소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2019 부산시 문화상 문학 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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