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로 읽는 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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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로 읽는 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기억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9.13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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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 도시 이야기: 싱가포르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도시로 읽는 동아시아 역사와 문화 | 도시사학회·연구모임 공간담화 지음 | 서해문집 | 444쪽

 

도시는 각양각색의 다층적이고 중층적인 기억의 장소이다. 고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정치·종교·경제 엘리트 지배층이나 시민들은 도시 곳곳에 계승하거나 전승하고 싶은 여러 기억의 매개물들을 만들어 왔다. 이 책은 한·중·일 3국은 물론, 베트남과 말레이반도 등의 동남아, 극동 러시아 일부 도시도 포함해 주로 근현대 동아시아 도시 자체나 도시의 특정 구역이 어떻게 기억의 장소들을 형성해 갔는지, 어떻게 다층적 도시 정체성을 가졌으며, 이 정체성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유지·변화·변용되어 가는지를 살펴본다. 이를 위해 책에서는 동아시아 도시들이 간직한 역사, 문화, 기억을 매개로 해서 도시 정체성을 크게 1부 ‘식민도시’, 2부 ‘문화유산도시’, 3부 ‘산업군사도시’로 범주화했다.

1부 ‘식민도시’ 1장에서 탐색하는 ‘대전’은 널리 알려진 것처럼 1904년 경부선 개통으로 만들어진 신도시로, 도청 소재지가 기존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겨지면서 크게 성장했다. 특히 이주 일본인 공동체가 도시 개발에서 주요 동인이 되면서 민족과 계급, 식민성과 근대성 등이 복잡하게 섞이게 되었다. 2장에서 고찰하는 ‘군산’은 서해안의 지리적 요충지로 대한제국 때 국제무역항으로 성장하기를 꿈꾸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식민도시로 성장했다. 시가지는 식민 시기에 민족적·경제적 조건에 따라 확장 분화되었는데 원도심은 식민도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3장에서 다루는, 1898년 러시아의 조차지 항구도시로 생겨난 ‘다롄’은 육로와 해로의 결절점으로 시기별로 중국, 일본, 러시아/소련의 영향을 받았으며, 오늘날 중국 동북도시의 경제 중심지이자 국제금융도시로 발전하고 있다. 4장의 ‘하얼빈’도 러시아가 청국에서 철도 부설권을 획득하면서 탄생한 도시인데,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일본이 세운 만주국이 통치한 이 도시에는 러시아혁명 이후 반공 러시아인들이 자리를 잡았고, 이들에 의해 백인 유럽문화가 동북아에 퍼지기도 했다.

5장에서 살펴보는 오키나와 ‘나하’는 애초 류큐왕국의 수도 슈리의 문호 역할을 하는 항구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나하는 슈리와 주변 지역을 병합해 오키나와 수도의 위상을 가지게 되었고, 1970년대 이후 관광도시로 성장했다. 6장은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에 이어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영국에 할양된 ‘페낭’과 ‘말라카’, ‘싱가포르’를 묶어서 검토한다. 영국 동인도회사가 해협식민지로서 관리한 이들 식민도시에는 현지인, 중국인, 유럽인의 다민족·다문화 사회가 형성되었다. 7장은 베트남의 고원 휴양도시 ‘달랏’을 다룬다. 열대와 아열대 기후에 적응하지 못한 유럽인의 휴양도시라는 식민도시의 한 유형으로 1893년에 형성되기 시작한 달랏은 프랑스 식민 시기 크게 발전했다.

2부에서는 ‘문화유산도시’를 아우른다. 여기서 소개하는 도시 중 몇몇은 어느 정도 식민도시의 속성을 지니지만, 식민지 시기 이전 역사와 문화유산들이 존재하기에 문화유산도시 범주에 포함했다. 8장에서 다루는 도시는 일제강점기 ‘평양’이다. 이 시기에 일본인 시가지인 ‘신시가’가 평양 내성과 외성 사이에 조성되면서 기존의 시가지였던 내성 일대는 조선인 중심의 ‘구시가’가 되었고, 식민지 도시의 ‘이중도시’ 현상이 경성보다 평양에서 더 확연하게 나타났다. 9장은 오래된 역사도시 ‘부산’에서 최근 주목을 받는 감천마을과 산복도로를 ‘가난의 상품화’라는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10장은 ‘타이난’의 역사와 문화를 검토한다. 대항해시대에 네덜란드가 동인도회사 요새를 이곳에 건설했는데, 명청 교체기 중국 남부에서 반청운동을 주도한 정성공이 네덜란드인을 축출하고 도시의 기반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후 일본의 영향으로 타이완의 중심은 타이난에서 타이베이로 이동해 갔다. 이렇게 19세기 말에 타이완의 정치적·경제적 중심지가 된 ‘타이베이’의 20세기 권력과 일상의 문제를 이어지는 11장에서 검토한다. 타이베이의 도시구조는 청국과 일본의 권력에 의한 도시계획이 실현된 사례이며, 일상에서는 다양한 문화운동과 공간의 전유가 나타났다.

12장은 ‘도쿄’의 우에노공원에 초점을 맞췄다. 17세기 초에 에도막부가 수립되며 대규모 사원지구로 조성된 우에노 지역은 메이지유신 시기 근대 공원으로 변모해, 박람회를 개최하고 박물관을 비롯한 근대적 시설들이 자리를 잡는 장소가 되었다. 13장은 일본의 ‘마쓰야마’를 다루면서 주요 관광자원 외에 잘 드러나지 않는 러일전쟁의 흔적을 문학박물관과 러시아군 묘소를 통해 환기한다. 14장은 베트남 ‘호이안’의 역사를 근세 동아시아 주요 교역항으로서 번성, 식민 시기의 정체, 탈식민 시기 관광 자원화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라는 주요 역사적 흐름과 함께 고찰한다.

3부에서는 ‘산업군사도시’의 역사와 문화, 기억과 정체성을 고찰한다. 산업화는 도시화를 동반했는데, 동아시아 여기저기에서 생겨난 각양의 산업도시 중에는 군사적 목적을 지닌 도시가 포함되었다. 15장에서 다룬 ‘울산’은 전근대 읍성에서 일제강점기에 대륙병참기지화를 위한 공업도시를 구상하면서 성장했다. 해방 이후에는 박정희 정부 시기 최초의 공업 특구로 지정되어 국가산업단지 건설에 따른 산업도시로 변모했다. 16장에서 고찰하는 ‘부평’ 또한 일제강점기에 ‘수도권’과 ‘경인 공업지역’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공장지역으로 조성되었는데, 해방 이후 산업화 시기에 더욱 확대되고 발전했다. 남아 있는 일제 건축물이 철거될 상황은 일상적 기억의 매개물에 대한 우리 사회의 논의가 다소 부족함을 보여 준다. 17장은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가 1926년에 건설한 공업도시 ‘흥남’의 도시문화와 정체성을, 흥남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 노동자로 근무하다 해방 후 일본으로 귀국한 노동자들의 구술을 기반으로 만들어 낸 가상의 인물이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독특한 구성으로 보여 준다. 18장은 1930년대 만주국의 대표적인 공업도시로 성장해 1949년 이후 중국 최대 중공업도시로 부상했다가 개혁개방 이후 쇠퇴한 ‘선양’을 고찰한다.

특히 사회주의 시기 건설된 노동자 주택 밀집 지역인 ‘공인촌’을 둘러싼 노동자, 기업, 국가 사이에 집단기억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공인촌이 어떻게 변용되었는지를 분석한다. 19장은 중국 개혁개방의 1번지라 불리는 ‘선전’의 다층적 기억들에 대해 선전과 홍콩 경계의 작은 농촌 마을, 돌진적인 근대화의 예외적 공간, 호적이 없는 농민공의 도시, 글로벌 도시 속 시민성의 문제를 중심으로 고찰한다. 20장은 신일본제철의 전신인 야하타제철소가 있었던 ‘기타큐슈’의 근대화 흔적, 2차 세계대전 중 군수산업 중심지로의 전환, 전후 폐허에서의 재출발과 환경오염 문제, 일본 정부에 의한 유산화 등을 차례로 검토한다. 마지막으로 21장은 극동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해군 요새가 건설된 것, 시베리아횡단철도가 부설돼 도시가 성장한 것, 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으로 국제도시로 변화한 것, 이후 소련이 태평양해군 함대 기지와 군수공장을 건립해 폐쇄적 군사도시로 변모한 것 등을 다룬다.

이 책은 동아시아 도시의 역사·문화·기억·정체성을 살펴보면서 널리 알려지거나 익숙한 곳만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덜 알려지고 익숙하지 않은 도시들도 포함했다. 근현대에 집중해 동아시아 도시들의 주요한 기능과 형태에 따른 범주 또는 정체성에 해당하는 식민도시, 문화유산도시, 산업군사도시를 검토한 것은, 이들 도시 유형이 오늘날 동아시아의 많은 도시에 계속해서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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