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로컬과 영화 ‘기생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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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로컬과 영화 ‘기생충’
  • 김용규 편집기획위원/부산대·영어영문학
  • 승인 2020.0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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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사색]

최근 영화 ‘기생충’과 ‘조커’를 동시에 볼 기회가 있었다. ‘조커’의 주인공 아서 플랙(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 정말 감탄스럽다. 영화 내내 우리는 아서의 얼굴 표정과 행동에서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다. 그러므로 ‘조커’에선 모든 것이 아서의 행동과 표정에 집중된다. 하지만 ‘기생충’은 다르다. 굉장히 많은 요소들이 함께 존재하고 움직인다. 배우들은 자신의 주어진 역할 이상의 선을 넘지 않는다. 각자에게 정해진 역할을 감칠맛 나게 연기하는 조연들의 하모니 같다. 오스카 작품상 수상 후 여러 명의 배우들의 연기력이 동시에 칭찬받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하지만 정말 인상적인 것은 ‘기생충’에는 배우들만이 아니라 영상적 상징 및 기호들 역시 중요한 요소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반지하방이나 4층으로 된 모더니즘 스타일의 건물, 그 내부의 층들 배치, 수석, 도로와 계단, 삼각형, 인디언 놀이 등 많은 상징들이 작품 속에서 적극적 행위자의 역할을 담당한다. 결국 기생충이 오스카 작품상을 받게 된 것은 인물과 상징의 역할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되 그것이 전체의 일부 이상으로 기능하는 것을 차단하는, 탄탄한 영화적 구성력에 있다.

이런 탄탄한 구성력을 갖고 있지 않았더라면, 비서구 출신의 감독으로서 서구 중심의 오스카상의 아성을 깰 수는 없었을 터이다. 프랑스 세계문학론자인 파스칼 카자노바는 오늘날의 세계문학이 대부분 주변부 출신으로서의 고난과 좌절을 감수하면서도 세계문학의 장으로 진입하기 위해 중심부 문학의 법칙을 가장 잘 자각하고 있는 작가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지적은 봉준호와 같은 비서구 출신의 감독에도 일부 적용될 수 있다. 중심과 주변, 로컬과 글로벌을 동시에 봐야하기에 전체적이고 관계적인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어느 하나의 요소도 허투루 사용될 수는 없다.

비서구 출신 감독들의 숙명은 불가피하게 이중적이다. 자신의 로컬 현실을 다루되 그 현실을 글로벌의 시선에 맞게 각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기생충의 성공 이유 중 하나는 ‘오스카상이 로컬적이었다’라는 봉준호 감독의 발언이 함축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이 영화가 로컬/글로벌 간의 관계를 절묘하게 처리한 데 있다. 재현적 차원에서 기생충은 한국의 불평등한 현실을 다루고 있는 데 반해 영상적 기호들의 상징적 이용은 그러한 현실의 로컬성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만든다. 즉, 이미지와 기호의 상징성이 로컬 현실을 모호하고 애매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 모호함이 자막의 기능과는 다른 차원에서 영화 자체의 번역성을 강화시켜준다. 그 결과 이 영화는 미국과 유럽, 나아가 전 세계의 불평등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으로 읽힐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영상미학은 영화의 성공 조건이면서 동시에 영화의 세계를 제약하기도 한다. 로컬 현실의 정형화와 상징화가 글로벌 차원의 관객층을 확보하는 데는 중요한 몫을 할 수 있었지만, 재현의 차원에서 현실의 구조적 관계를 드러내는 데는 한계로 작용하기도 한다. ‘기생충’이 과연 한국적 현실을 제대로 담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제기해볼 수 있다. <가디언>에서 한 영화평론가는 ‘기생충’이 하층민의 정형적 모습들을 이용함으로써 영화 속의 부자와 가난한 자를 생산한 시스템을 보여주는 데는 실패했다고 지적한다. 영화가 상을 받은 후 유독 화제가 된 것은 한국의 불평등한 현실이 아니라 한국의 반지하방이었다는 점은 시사적이다.

따라서 영상미학의 고유성 못지않게 영상의 재현 또한 중요하다. 거기에는 이미지의 세계를 넘어 현실 세계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과 세계관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기생충’은 분명히 한국의 불평등한 현실을 다루고 있지만, 하층민의 삶에 대한 시선은 그리 따뜻한 편은 아니다. 영화의 끝은 저택의 지하실에 갇힌 아버지 기택과의 조우를 위해 아들 기우가 죽으라고 경쟁해서 성공을 꿈꾸는 것 외에 어떤 대안도 내놓지 않는다. 이 대안은 이미 실패한 대안이라는 점에서 애초에 실현 불가능하다. 사회적 모순과 불평등을 상징적 영상미학으로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실의 불평등한 구조와 체계를 복잡한 매개를 통해 드러내는 것 또한 중요하다. 영상미학의 정점을 찍은 봉준호 감독이 앞으로 어떤 영화를 내놓을지 궁금해진다.


김용규 편집기획위원/부산대·영어영문학

고려대학교에서 ‘영문학 비판과 이론의 대두’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부산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서 영미문화연구, 문화이론, 세계문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부산대 인문학연구소 소장, 인문한국 단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혼종문화론》, 《문학에서 문화로》가 있고, 역서로는 《백색신화》, 《아래로부터의 포스트식민주의》, 《글로벌/로컬》, 《미술관이라는 환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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