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탈무渾脫舞’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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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탈무渾脫舞’를 찾아서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2.09.09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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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84)_ ‘혼탈무渾脫舞’를 찾아서

 

                                                            혼탈무의 한 장면

요 며칠 바람결이 선선하게 느껴져 더위가 한물갔는가 싶었더니 낯선 이름의 태풍이 한반도를 긴장시키고 있다. 태풍은 발생 장소에 따라 크게 세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영어 typhoon으로 음사되는 颱風은 북서태평양, 주로 필리핀 해상에서 발생하여 일본, 우리나라로 북진하는 강력한 열대성 저기압의 통칭이다. 

라오스 힌남노 국립보호구역<br>
    라오스 힌남노 국립보호구역

허리케인 Hurricane은 북대서양, 카리브해, 멕시코만, 북태평양 동부에서 발생한다. 사이클론 Cyclone은 인도양, 아라비아해, 벵골만에서 발생한다. 여기에 오스트레일리아 부근 남태평양 해역에서 발생하는 윌리윌리 Willy Willy, 북극을 중심으로 불어오는 거센 눈보라 블리자드 Blizzard를 추가하기도 한다. 

제주도를 지나며 거칠게 몰려오는 바람 덩어리 ‘힌남노’는 라오스가 붙인 태풍의 이름이다. 필리핀에서는 슈퍼 태풍 헨리 Henry로 알려진 이 열대성 태풍의 이름은 라오스에 있는 국립보호구역의 이름을 따온 것이라고 한다. 

태풍의 변화무쌍함 때문에 경로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어렵다면 역사 해석은 텍스트의 부정확함, 불명료함으로 인해 어렵다. 전부터 머릿속에 담아둔 ‘혼탈무’ 渾脫舞라는 말의 의미가 잡히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三國史記』에 의하면, 삼국시대 이전 이른바 三韓시대에 54개 小國연맹체였던 馬韓의 대표는 辰王으로 추대된 目支國 두령이었다. 그런데 이 나라를 『三國志』 「魏志」 東夷傳은 月支國으로, 三國史記는 目支國으로 달리 표기하고 있다. 삼국지가 삼국사기보다 먼저 편찬되었으므로 目支國이 月支國의 오기로 보인다. 그리고 목지국이라는 국명은 다른 어떤 문헌에도 존재하지 않는 정체불명의 부족국가이다. 月支國의 月을 얼핏 目으로 잘못 보고 目支國으로 필사한 것이라면 그로 인한 옥신각신 논의에 허비한 시간과 노력이 안타깝다. 

그런 면에서 기원전 2세기 중엽까지 흉노匈奴, 동호東胡와 더불어 아시아 초원 지대의 강자였던 유목종족 月支와 또 다른 이표기 月氏같은 경우는 유사한 음가의 글자를 사용했기 때문에 음운 비교를 통해 양자의 고대음인 공통 祖語를 재구성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이번 글의 고민은 춤의 하나인 혼탈무渾脫舞에 대한 것이다. 한자어 ‘흐릴 혼’과 ‘벗을/벗길 탈’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이 명칭의 소리와 의미를 알고자 했다. 지금은 사라졌거나 잊혀진 과거 우리 선조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유익하고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에서다. 마침 조선 후기 정조 대의 북학파 실학자로 발해의 역사를 기록한 『발해고渤海考』를 집필한 유득공柳得恭 선생(1748~1807년)의 『고운당필기古芸堂筆記』(1784년)에 혼탈무에 대한 기사가 있었다.

고영인顧寧人, 즉 고염무의 『일지록日知錄』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두보의 시 〈공손대랑의 제자가 검기무 추는 것을 구경하고 지은 노래 觀公孫大娘弟子舞劍器行〉 서문에 언성郾城에서 공손씨가 검기로 혼탈무 추는 것을 구경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記于郾城觀公孫氏舞劍器渾脫.”
 

그래서 나는 일지록에 있는 두보의 시와 병서 幷序(서문)를 찾아보았다. 일지록은 명나라의 유학자인 고염무의 독서잡기讀書雜記식의 짧은 논문을 수록한 저서이다. 32권으로 1676년에 지은 것인데 그의 사후 1695년에 간행되었다.

大歷二年(767) 十月十九日 蘷府別駕元持宅 見臨潁李十二娘舞劍器, 壯其蔚跂. 問其所師, 曰: 余公孫大娘弟子也。 開元三載, 余尙童稚, 記于郾城觀公孫氏舞劍器渾脫... 數嘗於鄴縣見公孫大娘舞西河劍器. 

병서에서 두보는 업현에서 공손대랑이 서하 검기무를 추는 것을 수차 보았다고 했다. 혼탈무가 서하西河 검기무劍器舞일 수 있는 기록이다. 조공혼탈趙公渾脫이라는 말이 있는데 북위의 황족 탁발씨의 후손으로 당태종 이세민의 황후인 장손황후의 오빠인 장손무기가 조국공趙國公에 봉해졌기 때문에 그가 쓴 가죽 모자를 조공혼탈이라 부른 것이다. 짐승가죽의 털을 모조리 벗긴다는 의미에서 혼탈이라고 했는데, 유목민이 가죽으로 만든 일종의 방한모인 셈이다. 혼탈渾脫은 본래 중국 북방 유목민족이 사용하던 가죽 주머니를 지칭하는 명칭이었다가 점차 가죽 모자, 가죽 옷을 가리키게 된 것으로 보인다. 

혼탈무는 당나라 현종 개원 연간에 살았던 유명한 무기舞妓 공손랑公孫娘이 추었던 검무의 이름인데 춤을 출 때 무기가 입는 복식이 가죽으로 만든 것이라서 혼탈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추정된다. 이 춤은 본래 페르시아에서 유행하던 무용인데 서역 구자국을 통해 북주北周에서 당나라 초 중국에 유입되어 측천무후 시절 성행했다. 이백의 시 초서가행草書歌行 말미에도 공손대랑이 추었다는 혼탈무가 등장한다.

당산악唐散楽은 무답舞踏, 곡예曲藝, 수품手品(마술) 등의 잡기술로 수대隋代 이전에는 백희百戲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백희의 하나인 혼탈渾脱은 『대일본사大日本史』에 따르면 실이 달린 두 개의 봉으로 북 모양의 소도구를 다루는 곡예라고 기록되어 있다(다나카, 2009).

 

혼탈반비(渾脱半臂): 일본 정창원 남창 121(正倉院南倉121) 제4호(第4号)로 지정되어 있는 보물

위 사진 중 오른편 사진 속 반비(반소매)의 안섶 안감 쪽에 “東大寺唐散楽渾脱 天平勝宝四年四月九日”이라는 묵서가 적혀 있어 천평승보 4년(752년) 4월 9일 일본 교토 東大寺 대불개안大佛開眼 법회에서 당산악唐散楽 혼탈渾脱 예능인들이 착용한 무악장속임을 알 수 있다. 오늘날 K-pop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듯, 과거 유목민의 춤이 중원문화에 흡수되고 마침내 섬나라 일본에까지 전파되어 종교 의식의 한 부분을 차지하였던 것이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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