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우영우’의 학벌 카리스마가 진부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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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우영우’의 학벌 카리스마가 진부한 이유
  • 고성빈 논설위원/제주대학교·정치학
  • 승인 2022.09.04 13:3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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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빈 칼럼]

오랜만에 재미있고 의미 있는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한류의 세계적 인기에 가슴이 뿌듯한 게 사실이다. 요즘 개X같은 정치와 비교하면 더 그렇다. 

한국은 학벌사회다. 누가 부정하겠나. 똑똑한 바보도, 모자란 놈도, 잘난 체하는 놈도 학벌만 좋으면 그럴듯하게 보이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우영우의 자폐 약점을 천재의 자원으로 둔갑시키기 위해 덧씌운 ‘서울대 법전원 수석 졸업, 암기력 천재 변호사’라는 타이틀은 아무리 보아도 진부하고, 더구나 ‘치졸한’ 설정으로 보인다.

그래서 나의 상상으로 영우의 천재 카리스마를 재구성해 보자. 영우는 초등학교를 특수학교에서 보내고, 처절한 입시경쟁으로 망가진 중고교 과정은 검정으로 통과한다. 역설적으로 다른 애들보다 자유스러운 청소년 시절을 보내다 보니 독서와 만화, 영화와 음악 감상을 통하여 상상으로 그릴 수 있는 동서양 인간 사회의 서사를 간접적으로 관찰할 수 있었다. 경쟁의 부담도 없는지라 자신이 원하는 대로 몇 가지 외국어도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세속적인 학벌 욕심도 없어서 방송통신대학 철학과에 들어간다. 대학 시절 내내 독서와 영화(특히 ‘설국열차, 기생충’과 같은)를 통해 세상의 불평등을 자각하면서 아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회적 약자를 돕기 위해 변호사의 꿈을 꾸게 된다. 

이후 방통대를 차별하면서 왜곡된 엘리트주의에 젖은 스카이 법전원이 아닌 고만고만한 지방 소재 법전원에 중상 정도의 성적으로 입학한다. 마침내 졸업을 맞아, 전국적으로 치루는 변호사 시험에는 역대 최고 성적이자 전국 수석으로 합격하는 기염을 토한다. 그리고 하나 더 영우의 천재성이 이제서야 드러나게 된 것은 청소년 시절 자유스럽게 공부하면서 영어와 중국어, 독일어와 불어,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평소에 디킨스와 헤르만 헤세의 소설, 빅토르 위고와 톨스토이의 소설, 중국 무협지와 무협영화를 좋아한 결과이다. 자연적으로 국제적 문제에 관해서도 자료를 참조하고 토론도 하며 자문을 할 수 있는 전천후 변호사이자 박학한 지식인이 되었다. 단지 다행스럽게 법꾸라지들과 어울리는 데 필요한 찌질한 사교술이 서투를 따름이다. 

이렇게 영우의 천재성을 재구성하는 이유가 있다. 우선, ‘진정한 천재’들은 ‘학벌만 천재’와 달라서 고시 공부와는 안 맞는다. 또한 직관과 상상보다는 규정적 사고와 틀을 짜는 논리를 지향하는 법학과도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속칭 ‘동네 천재’들은 거의 서울대 법대(의대?)를 들어간다. 웃기는 일이다. 천재가 왜 법대를 가는가. 천재는 새로운 사유를 창조하는 사람이다. 그저 공부 잘하고 시험성적이 좋은 우등생들과는 사고의 습관이 다르다. 

둘째, 법전원을 졸업한 동네 천재 출신 법조인 중 거의 대다수는 ‘돈 놓고 돈 먹기’ 로펌의 천민자본주의자가 되거나, ‘권력 눈치 보기’로 출세하려는 기회주의자 유형이 일반적이다. 왜냐면, 이것은 한국적 현상인데, 동네 천재이자 우등생으로 자란 애들은 항상 못한 애들을 내려 보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은 옳고 그름에 관계없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습관화 되어 있다. 이런 애들 가운데 상상력이 필요한 천재가 나올 리 만무하다. 

실제로는 이런 상황인데도 드라마는 청순하고 귀여운 영우를 그 많은 인간 유형 중에 하필이면 법꾸라지 무리와 동문으로 만들었다는 게 너무 아쉽다. 그저 법정 드라마를 위해서 변호사라는 직업인으로 설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이해할 따름이다. 

역사상 우수한 작품 중에 한두 가지 진부한 설정으로 시공을 초월하는 명작의 반열에서 탈락한 경우가 있다.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시기, 북경에서는 연극 ‘모란정환혼기’가, 런던에서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거의 동시에 초연되었다. 동서양을 대표하는 두 러브스토리의 공통점은 관습을 넘어서는 자유연애이다. 또 다른 공통점은 박스 오피스에서 초대박 히트를 쳤다는 점이다. 그런데, 중국의 셰익스피어라고 하는 탕현조는 치명적인 약점을 작품에 노출하였는데, 과거에 합격한 유몽매와 두여랑의 자유연애를 황제가 승인하고 나서야 부모들이 수용하였다는 치졸한 결말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관습의 감옥을 부수고 죽음으로써라도 사랑을 쟁취할 수는 없었을까.

한국의 ‘춘향전’도 마찬가지다. 이몽룡이 과거에 합격하고 암행어사가 되고서야 춘향과의 사랑을 이룰 수 있었다. 유교적 관습이 두여랑과 성춘향의 자유연애마저도 과거시험과 임금의 시혜 속에 가두고 만 것이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영우에게 관습적인 학벌 권위주의 상징인 서울법대 수석 졸업장을 수여한 것은 오히려 그녀의 천재성을 진부한 희극으로 만들었다. 상상력으로 다재다능해야 할 천재를 비상한 기억력의 시험 천재로 격하시키고 말았다. 영우를 진정한 천재로 만들려 했다면 서울법대라는 따분한 관습이 아닌 차라리 방통대 출신에서 시작했으면 어땠을까. 


고성빈 논설위원/제주대학교·정치학

런던대학(SOAS)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했으며, 제주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동아시아 사상과 역사논쟁에 흥미를 가지고 현재 동아시아의 사상사적 문제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 근현대사 역사의 현장』(공저), 『동아시아 담론의 논리와 지향: 비판이론의 탐색』이 있으며, 그 외 동아시아담론, 중국, 일본, 티베트에 관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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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라엘 2022-09-06 01:13:29
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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