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지진 조선인·중국인 학살에 관한 기억의 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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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대지진 조선인·중국인 학살에 관한 기억의 궤적'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2.09.03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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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관련 국제학술 심포지엄 개최
- 99년 맞은 '관동대학살'... 조선인의 죽음 제대로 기억하는 방법
- "중국, 일본과 기억의 연대 만들어야"

 

                         관동대지진 당시 폐허가 된 도시(사진: 大阪每日新聞社, 關東震災畫報)

99년 전 1923년 9월 관동(關東) 대학살이 진행됐다. 그해 9월 1일, 진도 7.9 규모의 강진이 도쿄를 비롯한 일본 관동 지역을 강타해 수만 명이 숨졌다. 대학살은 지진이 휩쓸고 지난 후 발생했다. 일본 내무성이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약을 탔다, 감옥을 탈옥하고 약탈하고 있다', '조선 노동자가 산업시설에 불을 지르고 다닌다'는 등 유언비어를 퍼트렸다.

일본 정부는 또 계엄령을 선포해 유언비어를 기정사실로 만들었다. 뒤이어 일본인 자경단들이 조선인을 학살하기 시작했고 일본 계엄 당국은 이를 방관했다. 이 일로 조선인 6000여 명과 중국인 800여 명이 학살됐다. 희생자 가운데 조선인이 압도적 다수로 희생되었기에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이라고 한다. 일본 정부가 자국민의 불안과 불만을 무마시키기 위해 조선인을 '적'으로 규정, 희생양 삼은 것이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중국인 학살사건 100주기(2023년)를 앞두고 국사편찬위원회, 독립기념관, 동북아역사재단 역사 관련 3개 기관이 1923제노사이드연구소 협력으로 2일 오후 1시 독립기념관 밝은누리관 1층 대강당에서 역사왜곡 문제에 대한 국제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학술심포지엄에서는 '관동대지진 조선인·중국인 학살에 관한 기억의 궤적'을 주제로 관동대지진에서 발생한 조선인 및 중국인 학살사건에 대한 한·중·일 기억의 양상을 되짚었다.

 

독립기념관, 국사편찬위원회,동북아역사재단 등 역사 관련 유관기관이 2일 오후 1시 국제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 독립기념관

이날 학술심포지엄은 모두 3부로 진행됐다. <제1부 학술발표>에서는 먼저 성균관대 김강산 교수가 관동대지진에 대한 ‘한국 독립운동 단체들의 선전과 항의 등 대응활동’을 발표했다. 다음으로는 동아대 장수희 교수가 ‘한국 문학과 서사’라는 제목의 발제에서 이기영의 『두만강』과 야마노쿠치 바쿠의 『야숙(野宿)』을 통해 문학작품에 반영된 관동대지진의 기억을 검토했다.

이어 일본 오타니대의 기다 에미코 교수가 ‘일본의 시각매체(미술작품 및 삽화 등)’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에 대한 화가‧삽화가의 인식을 발표했으며, 중국 윈저우대 정러징 교수는 중국인들의 기억을 검토하기 위해 관동대지진 중국인 학살사건의 기억과 추도활동에 대해 발표했다. 마지막으로 배영미 독립기념관 연구원이 한국 대중문화 속 관동대지진에 대한 기억과 형상에 대해 점검했다.

당시 재일 조선인들은 관동대학살을 어떻게 기록했을까.

김강산 성균관대 교수는 당시 사건의 진상을 담은 두 가지 문건을 소개했다. 하나는 김건(金健)이 작성한 '처살(虐殺)'이고 다른 하나는 영문으로 작성된 'Massacre of Koreans in Japan'(작성자 '한국인 독립운동가들')이다.

"일본 정부가 동경시 후나바시 무선전신을 경유, 관동 2부 6현 전반에 대해 한인 박멸을 명령했다." ('처살' 발췌)

"한국 사람이 거리에서나 집에서나 어떤 장소에서든 보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죽이라는 특별명령을 내렸다." (Massacre of Koreans in Japan 발췌)

두 문건은 학살이 일본 정부의 명령에 의한 것으로 기록했다. 또 학살의 주체로 일본 군대와 경찰, 자경단을 지목했다.

 

김강산 성균관대 교수가 관동대학살에 대해 한국독립운동단체들이 어떻게 대응하였는지를 주제발표하고 있다.

배영미 독립기념관 연구원은 '한국 대중문화 속 기억과 형상' 주제발표에서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을 다룬 MBC <선을 넘는 녀석들>, KBS <역사저널 그날>,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를 분석했다.

배 연구원은 "일본 정부의 역할을 '방조'로 애매하게 처리하고(역사저널 그날), 양심적 일본 시민'을 지나치게 부각한 나머지 재일조선인이 보이지 않거나(선을 넘는 녀석들), 높은 전문성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과 '불령선인'(不逞鮮人,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 사람이라는 뜻) 인식이 이야기되지 않은 점(역사저널 그날)은 보완의 여지가 있다"고 평했다. 

이어 "전반적으로는 일본 정부의 책임을 드러내고 재일조선인과 일본 시민들의 노력도 전하는 등 상당히 균형 있고 수준 높은 내용을 담고 있다"고 비평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관동대학살을 제대로 기억하기 위한 추가 제안도 남겼다.

"재일조선인과 일본 내 소수자, 중국과의 '기억의 연대'를 형성, 동아시아의 인권과 화해를 이야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배영미 독립기념관 연구원)

"2013년 이후 중국 피해자유족은 '관동대지진 피해중국인 노동자 유족연합회'를 결성하고 일본민간인사들은 '관동대지진 피해 중국인노동자 추모실행위원회'를 설립해 중일 양국에서 공동으로 추모행사를 개최했다. 일본 정부는 역사를 바로 보고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고 역사적 문제를 해결에 나서야 한다." (정러징 중국 원저우대)

"사건 발생 100주년을 앞둔 지금까지도 조선인 학살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과와 진실 규명은 요원하다. '램지어 사태'에서 목격했듯, 조선인 학살의 책임을 자경단에게 전가하고, 재일조선인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며 혐오의 시선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100년 전 조선인들이 관동대학살의 '기억'을 남기고자 애썼던 움직임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 (김강산 성균관대 교수)

"국가폭력의 진상규명, 숨겨진 사실 발굴, 피해자 중심주의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요구된다. 또 공동 사업단, 협의회 조직하고 주제별 참여를 통한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김민철 국사편찬위원회 편사부장)

 

장수희 동아대 교수가 이기영의 '두만강'과 야마노쿠치 바쿠의 '야숙'을 통해 문학작품 속 관동대지진의 기억을 주제발표하고 있다.

<제2부 활동보고>에서는 관동대지진과 관련된 활동에 대해 살펴봤다. ‘기억과 평화를 위한 1923 역사관’(1923한일재일시민연대, 김종수 대표), 일본에서 조직된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국가책임을 묻는 모임’(일본 센슈대, 다나카 마사타카), 천도교의 관동대지진 추도행사(천도교 상주선도사, 성주현), 박열의사기념관의 활동 소개(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장성욱), 일본 증언집(西崎雅夫 『関東大震災朝鮮人虐殺の記録』, 現代書舘, 2020) 번역활동(일본과 코리아를 잇는 모임・시모노세키, 구와노 야스오), 간토학살 100주기 추도사업 추진위원회(1923한일재일시민연대, 김영환)가 각각의 활동을 보고, 공유했다.

<3부 종합토론>에서는 김광열 1923제노사이드연구소 소장의 사회로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김국화 연구위원, 동북아역사재단 한일역사문제연구소 서종진 소장, 김민철 국사편찬위원회 김민철 편사부장이 참석했다.

이번 학술심포지엄은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한 팬데믹 이후 혐오와 배제의 사회적 분위기가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혐오에서 기인하는 배제와 차별의 위험성과 문제점을 역사적 관점에서 검토하는 시간이 되었다.

한편 지난 7월 민족문제연구소와 노동, 시민, 통일 단체 등 40여 개 단체가 참여해 '간토학살100주기 추도사업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들 단체는 지난 1일 서울 광화문 인근 역사박물관 앞에서 99주기 추도문화제를 열고 '간토대학살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 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했다. 이날 오전 일본 도쿄 요코아미초공원에 있는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앞에서 99주기 추도식(9·1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 실행위원회 주최)이 개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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