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인재를 양성하는 일이 아니다
상태바
교육은 인재를 양성하는 일이 아니다
  • 한기철 경인교육대학교·교육학
  • 승인 2022.08.28 13: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카데미쿠스]

최근 들어 우리 사회가 잘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사회는 여러 다양한 활동 영역에 종사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사회가 잘 돌아간다’는 말은 이 사람들이 각기의 활동 영역에서 자신의 전문성을 충분히 발휘하면서 살고 있다는 말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고 느끼는 것은 이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느끼기 때문이겠다. 고대 헬라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한 말을 참조하면, 사람들이 자기 일에서의 전문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그 첫째로 자기가 종사하고 있는 활동의 본질적 의미에 대한 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교육만큼 우리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활동 영역도 없다. 그만큼 자주 거론되는 주제이지만 그것에 관한 우리 일상의 이야기들을 가만 살펴보면 또한 그 비중에 걸맞을 만큼 그것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사람들이 드문 것 같다.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이고, 그 업에 종사하는 교사나 관료들 중에도 교육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경우가 많고, 그래서 그것의 본질적 의미와 목적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학생과 학부모들이야 공공교육이라 하더라도 개인적 이해 관심이 더 강하게 작용해서일지 모르지만, 국가와 지자체 수준에서 공공학교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마저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이 없을 경우라면 문제는 대단히 심각해진다.

우리말 단어 ‘교육’(敎育)은 『맹자』에서 온 것이지만, 사실 그 이름으로 수행되고 있는 교육 활동은 그 대부분이 서양 전통에서 온 것이다. ‘교육’에 해당하는 가장 오래된 서양어는 고대 헬라스어 ‘파이데이아’다. 헬라스 세계가 로마에 정복된 후에 로마 학자들은 그것을 라틴어 ‘후마니타스’로 지칭했다. 후마니타스는 독일어 후마니스무스, 영어 휴머니즘의 어원이 되는 말이므로, 용어의 역사로 보면 ‘교육은 곧 휴머니즘’이라는 말이 된다. 휴머니즘은 인간 존중의 이념이자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정신을 가리킨다. 교육의 본질적 의미에 대한 성찰은 바로 이것, 곧 교육은 인간다움을 기르는 일이라는 점에서 시작된다. 

‘교육은 인간다움을 기르는 일’이라는 말은 무슨 말인가? 우리는 누구나 사람으로 태어났지 않은가? 이미 사람으로 태어난 존재에게 사람다움을 가르친다는 말은 동어반복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 교육이 기르려고 하는 사람다움은 태어날 때부터 자연적으로 타고나는 속성이 아니다. 태어날 때 인간은 그저 생물학적 의미에서의 인간일 뿐이다. 그런 생물학적 존재로서의 인간으로 하여금 참으로 인간다움을 갖춘 한 사람의 성숙한 인격체로 성장토록 하는 일, 이 일이 교육의 본질이다. 

교육은 곧 휴머니즘이므로, 그것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가치는 인간 그 자체의 귀함이다. 인간을 가장 귀하게 생각하는 것이 곧 휴머니즘이 추구하는 바이므로, 그와 반대로 인간을 수단으로 활용해서 모종의 다른 가치를 실현하려는 시도는 모두 휴머니즘에 반하는 것이요, 따라서 반교육적(反敎育的)인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인간이 만든 사물이나 인간이 종사하는 활동은 모두 특정의 기능적 목적이 있고 그것을 얼마나 잘 실현하느냐에 따라 그 탁월성의 정도가 판단된다. 그러나 사물이든 활동이든 늘 그것의 원래 목적과 가치대로만 사용되거나 수행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예컨대 시계는 우리에게 정확한 시각을 알려주는 기능을 하는 사물이지만, 사람들은 때로 부를 과시하거나 다만 멋스러움을 위해 시계를 차고 다니기도 하지 않는가. 이처럼 사물이 그 원래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사용될 때, 그것을 가리켜 ‘도구화’되었다고 한다. 틀림없이 시계도 하나의 도구이지만, 그것의 원래 목적을 위해 기능할 때는 도구화되었다고 하지 않는다. 사물이 도구화되면 그 사물은 그것의 원래 속성을 잃게 된다. 인간이 종사하는 활동도 마찬가지다. 정치가 그 원래 목적이 아닌 목적으로 수행될 때, 종교가 그 원래 목적이 아닌 목적으로 수행될 때 등등. 교육의 원래 목적은 인간다움을 기르는 것이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수행되는 활동들 중에 그 원래 목적을 실현키 위해 수행되는 것은 얼마나 되는가. 모두 교육이 도구화되었기 때문이다. 교육이 도구화되면 그 원래 기능인 인간다움을 기르는 일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대학까지 졸업했으나, 그것도 아주 훌륭한 성적으로, 인간다움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허다하게 목격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교육의 본질적 의미를 성찰하는 일은, 뒤집어서 말하면, 이와 같은 교육의 도구화에 저항하는 일이다.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지만 우리 현실에서 교육 활동에 종사하거나 교육을 운영하는 직책에 있는 사람들 중에 이처럼 도구화된 교육을 교육의 원래 모습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경우가 교육을 ‘인재 양성’이나 ‘인력 개발’로 보는 경우다. 군사 정권 시절에 학교교육을 경제 개발의 수단으로 삼던 관례가 오늘날까지 반성 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인력’이라는 말은 물론이거니와 ‘인재’라는 말은, 그 어떤 경우든 가장 최종적인 가치요 목적이 되어야 할 인간을 도구화해서 지칭하는 가장 전형적인 용어다. ‘인재’(人材)에서의 ‘재’는 목재(木材), 석재(石材), 철재(鐵材) 할 때의 ‘재료 재’다. 그러니까 목재는 책상을 만드는 나무 재료를 가리키는 말인 것처럼, ‘인재’라는 말에는 사람을 재료로 해서 그 어떤 생산물을 만들어 낸다는 뜻이 담겨 있다. 우리 시대에 청산해야 할, 산업화 시대의 대표적인 잔재라 할 수 있다. 

교육은 인간을 기르는 일이지, 결코 인재를 양성하거나 인력을 개발하는 일이 아니다. 물론 인재 양성이나 인력 개발도 사회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을 ‘교육’과 등치하고 공공교육 시스템을 그것을 위해 운영하려는 것은 결코 올바른 관점이 아니다. 만약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공공교육을 인재 양성의 관점에서 실시할 때 교육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점점 더 심하게 도구화될 것이고, 우리 아이들을 인간다움을 갖춘 성숙한 시민으로 자라게 하는 일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 것이다.


한기철 경인교육대학교·교육학

경인교육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교육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리노이대학교(UIUC)에서 교육철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고대 헬라스·로마 교육사상, 르네상스 인문주의, 비판이론, 공화주의 등에 관심을 갖고 있다. 주요 저서로 『위르겐 하버마스, 의사소통적 행위 이론』, 『포스트휴머니즘과 교육학』(공저), 『교육과 정치』(공저), 『교육의 본질을 찾아서』(공저), 『지식의 성격과 교육』(공저), 『교육철학 및 교육사』(공저), 『하버마스와 교육』 등이 있고, 역서로 『이소크라테스: 「소피스트들에 대하여」, 「안티도시스」, 「니코클레스에게」』, 『다문화시대 대화와 소통의 교육철학』(공역)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