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라는 이름의 진실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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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라는 이름의 진실 앞에서
  • 정근식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
  • 승인 2022.08.28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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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난주에 진실·화해위원회는 우리 사회의 오랜 쟁점이자 숙제였던 형제복지원 사건에 관한 1차 진실규명을 발표하였다. 이는 1975년부터 1987년까지 국가공권력이 부랑인으로 간주되는 사람들을 부산의 형제복지원에 강제로 수용하고, 이들에 대한 강제 노역, 폭행, 가혹행위, 사망, 실종 등 중대한 인권침해가 이루어지는 것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고 방치한 사건이다. 부랑인들의 강제수용은 1975년 내무부 훈령, 그리고 1981년 전두환 대통령의 걸인 일소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곳에 수용된 사람들의 다수는 부랑인들이 아니었다. 

영문도 모르고 잡혀온 사람들에게 형제복지원의 정문 위에 쓰여 있던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라는 구호는 마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쓰여 있던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와 같은 역설이었다. 이들은 겉으로 표현된 것과는 전혀 다른 비인간적 통제에 시달려야 했다. 1985년의 경우, 수용 정원 500명에 실제 수용인원은 2,631명이나 되었으며, 일상적으로 구타와 폭행을 당해야 했고, 어린 수용자들은 성폭력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어둡고 절망적인 14년의 세월 동안 형제복지원에서는 무려 657명이 사망하였는데, 특히 1985년과 1986년 2년간 243명이 사망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 오죽했으면 당시 무소불위의 보안사령부조차 형제복지원이 교도소보다 통제가 심한 곳이라고 표현하였을까. 그때는 바로 86 아시안게임이 열리던 시기였고, 88 서울올림픽을 코앞에 둔 시기였다.


그때 우리는 어디에 있었는가? 

진실규명 발표 후에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그중의 하나가 왜 이 사건의 진실이 35년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밝혀지게 되었는가였다. 이 질문은 1970~80년대를 경험하지 못했던 젊은 기자들이 제기할 수 있는 당연한 질문이지만, 그 시대를 생생하게 경험했던 필자에게는 송곳에 찔린 듯 아픈 질문이기도 했다. 이 사건은 널리 알려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했던 1987년 1월, 용기 있는 한 검사의 수사로 진실의 일부가 드러났는데, 유감스럽게도 당시의 중앙정부나 지방권력 모두, 이 문제를 은폐하거나 축소하기에 급급했고, 결국 진실은 묻혀지고야 말았다. 그로부터 약 20년이 지난 후 과거사문제를 다루었던 1기 진실·화해위원회에도 피해자 3명이 진실규명을 신청했는데, 이 사건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여,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2012년부터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신들을 죽었다 살아났다는 의미에서 ‘피해생존자’라고 명명했다. <살아남은 아이>라는 책은 이를 대변한다. 흥미롭게도 이 책은 “우리는 어떻게 공모자가 되었나?”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이 부제는 우리 사회의 양심이 살아있다는 표시였다. 다행스럽게도 뜻있는 인권활동가 및 연구자, 변호사들이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사건 현장인 부산에서도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들이 나타났으며, 2018년에는 검찰총장이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사과하면서 눈물을 보이기도 하였다. 국민들의 높아진 인권감수성에 호응하여 국회에서도 법률 개정과 함께 진실화해위원회를 다시 출범하도록 하였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대표가 맨 처음으로 진실규명을 신청하던 날 아침이 기억에 새롭다. 
 

경계하는 마음 

형제복지원에 수용되었던 사람들은 연인원 4만 명에 이른다. 이번 진실규명 결정은 사건의 핵심적 내용과 함께 우선 접수한 191명에 대한 개인별 조사결과이지만, 진실이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정의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필자는 감춰진 진실을 발표하면서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에게 느끼는 안타까움과 미안함, 고마움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엄청난 폭력에 짓밟혀 생명을 잃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 그것을 간신히 버텨내고 생명을 부지했지만, 인생이 뒤틀려버린 수많은 피해생존자들에 대한 미안함 등이 뒤섞여 착잡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한센병자나 홈리스와 같은 우리 사회의 약자들에 대한 연구를 수행해왔지만, 형제복지원 사건에 관해서는 젊은 제자들로부터 배웠다. 이들이 연구성과로 냈던 <절명과 갱생 사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후생가외’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논어(論語)의 ‘자한편(子罕篇)’에 나오는 이 표현은 ‘너로 하여금 어린 양들이 잘못된 길로 들지 않는지’ 늘 경계해야 한다는 성경 구절과 함께 ‘선생’으로 자처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깨우친다. 늘 가슴에 새기고 조심해야 할 덕목들이 작은 보람보다 더 무겁게 다가온다. 


정근식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서울대 사회학과를 거쳐 동 대학원에서 사회학 석·박사를 취득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장, 제주4.3평화재단 이사를 지냈으며, 한국냉전학회 회장과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원장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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