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벼랑 끝 전술과 유화 정책의 '잘못된 만남'
상태바
제2차 세계대전, 벼랑 끝 전술과 유화 정책의 '잘못된 만남'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0.02.2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간소개]

■ 준비되지 않은 전쟁, 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 | A. J. P. 테일러 지음 | 유영수 옮김 | 페이퍼로드 | 560쪽
 

많은 사람들이 제2차 세계대전은 '히틀러의 전쟁'이라고 본다. 선동적인 언사로 패전 후 절망감에 빠진 독일 국민을 사로잡아 권력을 움켜쥔 히틀러가 군비를 확장해 주변 국가를 침략함으로써 이 전쟁이 시작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하지만 20세기 가장 논란 많은 역사가 중 하나인 저자는 “히틀러에게만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역사는 한 사람의 일탈로 움직이지 않았으며, 그 이면에는 보다 많은 정치적, 외교적 움직임이 얽혀 있었다는 것이다.

각국의 정치인과 군인들은 권력과 선거에 대한 집착, 전쟁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매순간 오판을 했고, 독일인들은 선거를 통해 히틀러에게 전권을 넘기는 실수를 범했다.
 
사실 히틀러를 포함해 누구도 전쟁을 원치 않았다. 다만 히틀러가 ‘벼랑 끝 전술’로 군비를 부풀렸고, 주변국들은 그의 속임수에 넘어갔으며, 결국 비극을 피할 수 없었다.

저자는 당시 외교 기록과 히틀러의 발언, 주요국의 통계 지표를 인용해 이를 증명한다.독일의 재군비는 1936년 봄까지는 대부분 ‘근거 없는’ 신화였다. 독일의 군비 지출은 영국의 군비 지출보다 적은 수준이었고, 히틀러 자신도 경기 하락을 가져올 군비 지출로 국민의 인기를 잃고 싶어 하지 않았다.

전쟁 직전인 1938∼1939년 사이 지출된 실제 독일의 재군비 비용은 경쟁국인 영국과 동일한 비율인 대략 15%였는데, 심지어 비율이 아닌 절대치로만 비교해 본다면 영국의 전쟁 의지가 더 컸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전쟁 이후에도 독일의 재군비 비용은 별다른 변동 없이 “평시 같은 전시 경제”를 유지했다.

히틀러는 총력전이 아닌 소규모 무력시위와 으름장만으로 총체적인 승리를 얻으려 했고, 다른 이들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목표한 바에 거의 다가갔다. 히틀러 자신은 독일이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그의 상대들은 불행히도 그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저자의 말, 그리고 히틀러 자신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외교적 전술이라기보다는 도박에 가까웠다.

하지만 히틀러의 도박에도 끝은 찾아왔다. 어쩌면 저자의 말처럼 “폴란드인들 가운데 같은 종류의 정치적 도박꾼들을 만난 것이 히틀러의 불운”이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까지 전쟁을 피하기 위한 각국의 노력은 실패하고, 결국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다.

이 책은 히틀러의 침략과 이에 대항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기보다 독일 문제로 인해 흔들리는 유럽 질서 속에서 그 문제를 안고 고군분투하는 유럽 정치가들의 노력과 실패의 모습을 담았다.

저자는 그 과정에서 국가의 이익을 지키려 하고, 시대의 관념에 발목잡혀 있으며 개인적인 관점을 고집하는 정치가들의 혼란된 모습을 발견해 “전쟁의 원인은 독재자들의 사악함만큼이나 다른 이들의 실수에도 있었다”고 해석한다.

저자는 오직 히틀러 한 사람에게만 전쟁의 책임을 묻던 기존의 견해에서 벗어났다. 히틀러를 세계의 파멸로 이끈 '역사의 기획자'에서 그저 권력을 쫓았던 '역사 속 한 인물'로 내려놓는다. 당시 외교와 정치사의 숨은 행간을 찾아 그동안 히틀러의 뒤에 숨어 면죄부를 받던 이들을 역사라는 무대 위로 다시 끌어올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