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사회와 그 동지들
상태바
열린사회와 그 동지들
  • 전국교수노동조합
  • 승인 2022.08.22 21: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수논평]

 

서양철학의 전통은 플라톤에 대한 주석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A. 화이트헤드의 말처럼, 서양철학에서 플라톤의 비중은 막대하다. 이런 플라톤에 대해 K. 포퍼는 그의 유명한 저서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전체주의의 기원이라고 매섭게 비판한다. 이러한 비판은 플라톤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당시 아테네 민주주의가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희생될 만큼 중우정치로 변질되었다는 점 등의 사회적 맥락과 그가 말하는 철인정치가 당시 정치 지도자들에게 결여된 진리 추구, 지혜, 절제, 우애 등의 덕목을 강조한다는 점 등의 철학적 의미가 간과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국가가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오늘날, 포퍼가 강조한 “열린사회”의 의미를 부정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가 단기효율성을 담보하지는 못할지라도, 자유와 평등에 기초하여 구성원들의 민주적 의사결정에 의해서만 공동체가 지속가능함을 긴 역사를 통해 인류가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 반대는 구성원 일부만의 특권을 인정하는 독단주의이다. 그런데 포퍼는 민주주의라는 일반적인 용어를 넘어서서 ‘열린사회’를 강조한다. 이를 통해 민주주의가 중우정치로 전락할 수 있다는 플라톤의 우려를 차단한다. 그는 닫힌사회를 “사람들은 전쟁 시이든 평화 시이든 지도자에게 눈을 돌려 그를 따라야 한다.”는 플라톤의 말로, 열린사회를 “비록 소수의 사람만이 정책을 발의할 수 있다 해도, 우리 모두는 그것을 비판할 수 있다.”는 페리클레스의 말로 설명한다. 한마디로 열린사회란 진리와 권력의 독점을 부정하며 비판적 토론이 가능한 사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권력자가 구성원들의 비판에 귀를 기울이고 더 나은 판단을 수용하는 개방성을 갖도록 하는 제도와 구성원들의 공동체에 대한 책무감에서 비롯된 참여와 실천이 요구된다. 그 바탕에는 제한되지 않은 권력이 낳을 위험성을 넘어, 함께 검토하고 토론할 때 더 좋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인간의 지적 겸허함과 타인에 대한 존중이 자리 잡고 있다. 비판은 때로는 부당하게 들리기도 하고, 때로는 불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날 일부 기관, 기업 등에서 반대의견만을 내는 것을 의무로 하는 “악마의 변호인”, “레드 팀”, “블로커”를 두고 있는 것도 비판 없이는 어느 공동체도 건강성과 성장이 불가능함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대학들은 열린사회일까, 닫힌사회일까? 대부분의 대학이 닫힌사회임을 부정할 교수는 거의 없을 것 같다. 국내에서 대학만큼 민주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공동체가 과연 있을지 의문이다. 연구와 교육을 통해 진리를 수호하고, 자유·평등의 민주주의와 정의가 흔들릴 때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었던 최고의 지성인들로 구성된 대학의 모습을 보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대학서열·연구업적·취업률 만능주의, 정부의 재정지원사업에 취해 대학 본연의 소임을 잃어버린 채 대학들은 가족기업을 운영하듯 권력의 독점과 독단적 대학운영으로 대학의 주체인 교수들을 연구 기계, 취업 알선자로 내몰고 있다. 이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어 등장한 것이 비판적 협력자로서의 ‘교수노동조합’이다. 이제 대학 운영의 책임자들은 더 이상 폐쇄된 밀실에서 몇 명이 주요 정책을 결정하고, 그 불합리한 실행과 책임을 교수들에 전가하는 반민주적인 방식을 자행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교원노조법」의 철학이자 대학다운 대학, 지속가능한 대학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그 기본은 대학운영에 있어서 교수들, 교수노동조합과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며, 함께 책임지는 열린사회에 대한 지향이다. 

이제 각 대학은 관성의 주행을 멈추고 미래로 나아갈 새로운 관점의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 첫 번째 지혜는 P. 드러커의 “의견의 불일치가 없는 상황에서는 일체의 결정을 중지하라.”는 말에서 얻을 수 있다. 예컨대 새로운 교무위원이 필요할 때, 총장은 지시를 두말없이 따를 교수가 아니라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교수를 찾아나서야 한다. “총장님, 저의 비판을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제 각 대학의 책임자들이 다음의 물음에 답을 할 차례이다. “교수들, 그리고 교수노동조합을 동지로 삼아 열린사회로 함께 나아가시겠습니까?”

(전국교수노동조합 가톨릭대학교지회 하병학 지회장)


2022년  8월  22일

전/국/교/수/노/동/조/합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