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속에 숨어 있는 “암시된 거미”의 존재를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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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속에 숨어 있는 “암시된 거미”의 존재를 밝힌다!
  • 임병태 기자
  • 승인 2020.0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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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암시된 거미: 신화 속의 정치와 신학 | 웬디 도니거 지음 | 최화선 옮김 | 이학사 | 438쪽
 

서로 다른 문화의 신화들을 왜 비교해야 하며, 어떻게 비교해야 하는가? 오늘날 신화는 학자들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세계 여러 신화 속 이야기들이 베스트셀러 소설의 소재로 사용되고, 영화 속에서도 각종 신화적 모티브들이 수시로 등장하며, 컴퓨터게임 역시 신화 속 이야기와 신화의 주인공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분명 현대 문화 속에는 세계 여러 신화가 뒤섞여 있고, 우리는 알게 모르게 여러 신화 속에서 호흡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민족, 다양한 전통의 신화들에 대한 비교 연구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주제이다.

저자 도거니의 비교에 대한 애착은 세계 여러 곳에서 ‘서로 비슷한 이야기들’이 실제로 발견된다는 아주 단순하고 소박한 사실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인간이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비슷한 경험, 비슷한 질문을 던지며 살아온 삶 자체에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이러한 유사한 이야기, 유사한 개별 신화들을 만드는 인간의 공통적 삶의 정황, 혹은 공통된 경험의 전달자를 거미에 비유한다. 이 거미는 실제로 눈에 보이는 확실한 존재는 아니다. 그러나 이 거미로부터 신화를 만드는 것들이 발생되고, 그러기에 거미는 신화를 만드는 것들에 의해 암시되어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이 거미를 “암시된 거미implied spider”라 부른다.

“암시된 거미”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뽑아낸 실로 세계를 방출해내는, 우파니샤드 속 신의 이미지와도 연결된다. 저자는 모든 신화의 뒤에 숨어 있는 보이지 않는 거미가 바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유하는 본성과 경험으로서, 이야기꾼들은 이로부터 끊임없이 거미줄을 짤 원료, 즉 계속해서 신화와 이야기를 만들어낼 원천을 공급받는다고 이야기한다. 비록 우리 눈에는 이들이 만들어낸 거미줄만 보일 뿐 거미의 존재는 보이지 않지만 이 거미줄을 만들어낼 수 있게끔 한 숨은 거미의 존재, 즉 인류의 공통된 경험이 존재하는 것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저자에게 있어서 신화는 무엇보다도 우선 ‘이야기’이다. 물론 저자는 신화를 명확하게 정의 내리기를 주저한다. 이는 그녀 자신의 말대로 그녀가 “신화란 무엇인가라는 것에 대해 구술하기보다는 신화는 무엇을 하는가를 탐구하는 것에 더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화를 정의한다는 것은 내가 언제나 기피해왔던 경계와 장벽 따위를 쌓아올리는 일을 요구한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경계 짓기, 장벽 쌓기에 도전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신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신화는 신화 속에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의미를 발견한 사람들에게 신성시되고 공유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저자는 신화가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 이야기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것은 이미 플라톤이 신화를 비판하던 시대에도 유모들이 아이들을 재우면서 잠자리에서 들려주던 옛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들은 입에서 입으로, 혹은 여러 텍스트 사이를 떠돌면서 전해져왔고 이제는 스크린 속에서도 떠돌고 있다. 저자는 이야기가 갖는 힘이 바로 신화를 오랜 세월 동안 잊히지 않게 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원형보다는 구체적인 표현들을, 구조보다는 내러티브를 더 강조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야기로서의 신화는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 속에 살았던 수많은 이야기꾼을 거쳐 오면서 그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조금씩 변형되고 때로는 기존 내러티브와 정반대의 모습으로 변화되기도 한다. 저자는 여러 신화를 비교해봄으로써 이처럼 신화 속에 끼워 넣어진 다양한 목소리를 찾아내고자 한다. 그것은 때로 남성의 텍스트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찾아내는 작업이기도 하고, 반대로 여성의 텍스트에서 남성의 목소리를 찾아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또한 동일한 이야기가 전혀 다른 정치적 맥락에서 사용되어온 역사를 더듬어가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 같은 작업은 사실상 각 신화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무시하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새로운 비교신화학은 결코 구체적인 맥락을 무시하는 보편주의로의 환원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저자 도거니의 신화 연구가 특히 주목받았던 이유는 그녀가 20세기 말 종교학계에서 제기되었던 비교 방법론에 대한 비판을 견지하면서도 동시에 신화의 비교 문화적 비교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또 이러한 연구를 직접 행했기 때문이다. 세계 여러 전통의 다양한 신화를 보편적인 틀 안에서 설명하고자 했던 융이나 엘리아데 등의 비교신화학은 여러 신화 간의 유사성, 다양한 신화 속의 공통적인 요소를 찾는 데만 주력한 나머지 각 전통, 시대, 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신화의 차이들을 발견하고, 그 차이들 가운데서 각각의 신화가 놓인 맥락, 즉 컨텍스트를 짚어내는 데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이러한 보편적인 틀, 신화의 유사성만을 강조해온 비교 연구가 강한 비판의 대상이 되면서 신화의 비교 연구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분위기가 감돌게 되었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의 비교신화학에 대한 비판을 적극 수용하면서도 ‘비교는 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이 책은 비교신화학에 대한 비판들을 검토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신화학이 왜 필요한지, 어떻게 가능한지를 본격적으로 논의한 대표적인 신화학 이론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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