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를 뛰어넘은 베토벤, 그 음악의 위대함을 추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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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를 뛰어넘은 베토벤, 그 음악의 위대함을 추적하다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0.0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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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소리 잃은 음악 : 베토벤과 바버라 이야기 | 로빈 월리스 지음 | 홍한결 옮김 | 마티 | 408쪽
 

'악성', '괴팍한 천재' 같은 박제된 이미지와 영웅 신화에서 탈피해 귀먹은 베토벤의 창작 행위와 행적을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한다. 베토벤 음악의 위대함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탐구한 책이다. 

베토벤 음악을 평생 연구해온 저자는 아내 바버라에게 닥친 청력 상실을 10여 년간 곁에서 지켜보면서, 비슷한 청력 문제를 겪었던 베토벤의 말년을 탐색해갈 통찰과 동기를 얻었다고 말한다.

20대에 악성 뇌종양 진단을 받았던 바버라는 방사선 치료 후유증으로 44살에 돌연 청력을 잃었다. 저자는 이후 아내가 청력 훈련 등을 통해 장애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음악의 시각적·물리적 측면을 구체적으로 알아간다.

저자는 또 베토벤이 남긴 방대한 스케치와 자필 악보, 서간, 필담 노트 등 다양한 기록을 살피고, 베토벤이 썼던 여러 종류의 피아노와 ‘청취 기계’, 작곡 도구를 연구하고 직접 체험했다. 베토벤이 19세기 초에 쓴 피아노와 공명기의 복원을 시도한 연주자·제작자와 교류하고 복원된 피아노를 직접 연주해봄으로써, 베토벤이 경험했던 소리와 진동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려 노력했다.

이를 토대로 저자는 음악 연구와 뇌과학, 체험을 한데 엮어냄으로써 베토벤이 어떻게 작곡을 해나갔고, 창작 활동을 멈추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나아가 베토벤이 장애를 정녕 ‘극복’한 것인지, 베토벤이 써낸 음악이 과연 극복의 산물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서 불협과 혼돈, 파격의 한가운데로 나아간 말년의 베토벤과 그의 음악에 다가간다.

저자는 말년의 베토벤이 리드미컬한 곡, 짧고 귀에 꽂히는 동기를 활용하는 곡을 많은 쓴 것은 난청인이 리듬을 가장 쉽게 인식할 수 있고 짧고 특징적인 선율 조각이 청각 기억에 담기 쉽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베토벤의 음악적 위대함은 청각 장애를 극복한 결과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리고 귀가 멀면서 기존의 방법들을 조금씩 개선해 간 덕분에 가능해졌다는 것이 저자가 내린 결론이다.

말년의 베토벤은 음악사를 통틀어 가장 사랑받는 걸작들과 심오한 작품들을 써냈다. 교향곡 9번, 「장엄 미사」, 「함머클라비어」나 「대푸가」 같은 후기 피아노 소나타 및 현악 사중주, 디아벨리 변주곡 등 베토벤 후기 걸작은 대체로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에 만들어졌다.

당대의 익숙한 도식을 벗어나 불협화음, 변칙적인 리듬이 두드러지는 이 작품들을 두고 평가가 엇갈렸는데, 평가 내용과 상관없이 대부분 그 음악적 특성이 작곡가의 귀먹음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여겼다. 베토벤의 중·후기 음악을 ‘역경 속의 긍정’으로 해석하거나, 베토벤이 음악을 통해 장애를 극복했다고 평가하는 방식이 대표적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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