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인들이 특별하게 친절한 배경을 추적하다!
상태바
대만인들이 특별하게 친절한 배경을 추적하다!
  • 류영하(柳泳夏) 백석대·중문학
  • 승인 2022.08.21 09: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저자의 말_ 『대만 산책』 (류영하 지음, 이숲, 256쪽, 2022.06)

 

대만인들은 매번 친절했다. 길을 묻거나, 물건을 사거나, 식당에서 주문을 하거나 똑같이 친절했다. 나는 친절에 감탄하면서 자신에게 대만인들은 왜 친절할까?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있었다.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구하는 것이 이 『대만 산책』의 첫 번째 목표였다. 대만인들은 상냥하고 친절했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적대감을 보이지 않았다. 2019년 대만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SNS에 대만에서 제일 좋은 점은 따뜻한 날씨와 선량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대만에 한번이라도 가본 사람은 모두 인정이 느껴지는 곳이라고 한다. 대만인들은 수시로 인사를 주고받고, 모르는 사람에게도 씩씩하게 덕담을 건넨다.

코로나 확산 직전인 2019년 기준 대만을 방문한 한국인은 124만 명이었다. 한국을 방문한 대만인은 인구비율로 따지면 상대적으로 월등히 많아서 126만 명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대만을 잘 모른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 사실은 서점에서도 확인된다. 대만의 관광지와 먹거리를 소개하는 책은 많지만, 대만의 역사와 문화에 관해 풀어쓴 책은 드물다. 

석사 시절 홍콩에 가느라 처음으로 대만을 경유했다. 다시 수십 년이 흐르고 세미나 참석차 한두 번 갔다. 최근에는 6년 전쯤 세계테마기행-대만 편을 찍으면서 3주 동안 수박 겉핥기식으로 둘러본 적이 있다. 대만은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은퇴하면 대만에서 살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먹거리가 다양하고, 사람들이 친절했기 때문이다. 기회가 된다면, 대만을 좀 더 알고 싶었다. 

대만을 좀 더 알고 싶다는 소원이 뜻밖에도 빨리 이루어졌다. 대만 정부의 초청으로 국립칭화대학(國立清華大學)의 대학원인 대만문학연구소(台灣文學研究所)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다. 2019년 1월 30일부터 8월 1일까지 6개월간 대만에 체류했다. 『대만 산책』을 일기 쓰듯이 쓰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 장씩 쓴다면, 체류 기간을 계산해보면 200장이 넘어갈 테니, 자연스럽게 책 한권이 될 것이었다. 그것을 눈치 챈 연구소의 류교수는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놀고 친구도 많이 사귀라”는 글귀를 써주기도 했다. 내 눈은 대만을 보려고 내내 두리번거렸고, 내 귀는 대만을 듣고자 크게 열려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 『대만 산책』은 중국학을 공부하는 한 사람의 대만기록이다.  

6개월 동안 나는 이렇게 보고 듣고 생각했다. 

순전히 내 기준으로 목차를 만들고, 내 기준으로 써내려갔다. 한국과 대만의 우의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고, 대만에게 보답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었다. 1992년 한국정부는 중국과 수교하면서 우방 중의 우방이었던 대만을 너무 섭섭하게 만들었다. 두고두고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부족하지만 이 책의 출판으로 내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현재의 나는 내가 한 수많은 선택의 결과물이다. 마흔이 넘으면 본인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에 동의 한다면, 지금 그 사회나 국가의 모습은 그 사회나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사회의 구성원이나 국민이 선택했기 때문이다. 대만의 현재 모습은 대만인들이 선택해 온 결과물이다.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유전자와 성장환경을 살펴보아야 한다. 국가나 지역의 문화도 유전자와 환경이 만들어낸 것이다. 

문화적 유전자 ‘밈(Meme)’이 환경을 만들고, 환경이 다시 문화적 유전자를 만든다. 대만을 관찰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또 글이 늘어날수록 점점 더 확신하게 되었다. 대만의 문화는 역사와의 상호 작용으로 탄생한 것이다. 나는 대만의 문화를 먹기, 걷기, 보기, 알기 등 네 가지로 나누어서 분석했다. 먹기에서는 음식을 중심으로, 걷기에서는 벼룩시장, 야시장, 서점, 중심가 등을, 보기에서는 일본신사, 공자묘, 성황묘, 마조묘, 박물관 등을, 알기에서는 내성인, 객가인, 원주민, 양안 문제 등을 다루었다. 

이어령은 가나 문자, 하이쿠와 분재, 문고판 책, 쥘 부채 등으로 일본문화를 ‘축소지향’으로 정의했다. 루스 베네딕트는 국화와 칼로서 일본인의 이중성을 분석해냈다. 대만의 중문학자 린밍더(林明德) 선생님은 대만의 화해와 포용정신을 늘 자랑했다. 대만문화는 인간의 모든 감정이 표출되고, 이익을 향해서 끝장투쟁을 경험했던 사람들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결과물이다. 대만인들은 같이 살기 위해서는 화해할 수밖에 없고, 포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대만문화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무엇일까? 나는 만두와 대나무를 떠올렸다. 대만인들의 만두사랑은 남다르다. 그 종류가 무한대라는 생각이다. 다양한 재료를 밀가루로 감싸는 만두는 포용을 상징한다. 대만의 정신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내 눈에 만두가 자주 들어왔다. 

대만은 만두 천국이다. 이름도 다양해서 소룡포(小籠包), 육즙 많은 만두(皮湯包), 수전포(水煎包), 생전포(生煎包), 찐만두(水餃), 길쭉한 군만두(煎餃), 넓적한 군만두(鍋貼), 완탕(餛吞) 등등 만두의 종류가 이렇게 많은지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길거리에서 자주 눈에 띄는 먹거리 중의 하나이다. 한국에 단 한 가지만 가지고 갈수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화덕만두(胡椒餅)를 선택하고 싶다. 간식으로도 좋지만, 영양으로 볼 때 한 끼 식사로도 부족함이 없다. 

화덕 만두를 파는 곳은 많다. 하지만 이것을 맛보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 화덕에서 나오는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 시간에 나오는 것은 웬만하면 그 시간에 다 판다. 몇 시에 오세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나누어주는 번호표를 받아서 30분이나 한 시간 뒤에 다시 가야하는 곳도 있다. 가장 맛있을 때 판다는 말이고, 그만큼 팔릴 양을 계산하고 만든다. 만두영업에서도 대만인들의 절도를 발견하게 된다. 

대만의 정신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내 눈에 칭화대학 정문 벽을 따라서 이어진 울창한 대나무 숲이 보였다. 그 순간 대나무가 대만인들의 절도를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타이베이의 랜드 마크인 101빌딩이 왜 굳이 대나무를 형상화해서 지었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는 모든 재료를 포용하는 만두와 절도를 상징하는 대나무로 이 아름다운 ‘보물섬(寶島)’을 정의하고 싶었다. 

식당의 영업시간도 대만인들답다. 대학 정문 앞의 만두 가게는 오후 두 시부터 저녁 일곱 시까지만 일한다. 대부분의 식당이 이렇게 영업시간을 정해놓고 있다. 타이베이의 대표적인 상업지구인 다다오청(大稻埕)에 ‘먀오커우(妙口)’라는 노점이 있다. 고기만두(肉包)로 유명하다. 그 가게 역시 정오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만 판매한다. 대부분의 식당은 점심때쯤 오픈해서 두 시간 정도 일하고, 세 시간 정도는 반드시 휴식을 취한다. 오후 다섯 시 경부터 세 시간 정도 더 일한다. 하루 종일 식당에 잡혀 있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일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매우 밝다. 모두가 밝은 표정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그들이 만든 음식에 신뢰가 간다. 식당에서 어떤 메뉴가 떨어졌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자신이 준비한 재료를 소진했다는 말인데, 되도록 그 날 팔릴 분량만을 준비한다는 것이 아닐까! 대나무 같은 절도가 필요한 면이다. 

대만의 음식 값이 저렴한 이유는 손님이 일정한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서민식당의 한쪽 벽면에는 음료수, 수저, 양념을 두는 셀프코너가 있다. 모든 것을 손님 스스로 준비할 수 있다. 남은 음식을 포장하는 것도 손님이 직접 해야 하는 식당이 많다. 손님이 주인을 찾는 횟수가 그 만큼 줄어든다. 셀프코너는 저렴하고 맛있는 음식을 위해서 손님도 협조해야 한다는 가르침의 공간이다. 

내가 좋아하는 식당에서 감동받은 적이 있다. 그날은 야채요금을 안 받겠다는 것이었다. 지난번의 야채 상태가 안 좋았다는 것이다. 재료가 바닥을 보일 때 주문받았고, 무리하게 손님 테이블에 올렸다는 말이었다. 자신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달라는 말에 더 이상 실랑이하지 않았다. 

대만의 식당에 들어서면 적게는 대여섯 가지, 많게는 3~40가지로 분류되는 음식이 손님을 유혹한다. 서민식당에는 주문표가 반드시 준비되어 있다. 손님이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표에 체크하고, 그것을 종업원이나 사장에게 건네는 시스템이다. 마찬가지로 주인이 손님의 도움을 요청하는 장치라고 본다. 손님도 기꺼이 응해서 한층 높은 식당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결과적으로 식당사장도 손님도 서로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주문표에 체크를 하다가 정말 좋은 제도라고 생각했다. 손님과 주인 사이에 시비가 발생할 여지가 없다. 주문표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기에, 내가 이것을 시켰냐 아니냐 하면서 말도 안 되는 다툼을 할 필요가 없다. 뿐만 아니라 친구들끼리 서로 무엇을 먹을래 물을 필요도 없다. 그냥 주문표를 돌려가면서 각자 먹고 싶은 음식에 체크만 하면 되는 것이다. 주문받는 종업원도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 식사를 하기 전에 주문하는 표에서 메뉴를 살펴보고,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서 체크하고, 그 표를 주인이나 종업원에게 넘겨주는 과정은 하나의 공부라고 할 수 있다. 손님이 스스로 본인이 먹을 음식과 양을 적절하게 가늠해야 한다.

대만의 식당에서는 주문하고, 식사하고, 계산하고, 나오면 기분이 좋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내가 선택하지 않는 반찬에 돈을 낼 필요는 없다. 한 접시 더 먹으면 한 접시만큼의 돈을 더 내야한다. 식당에서 1인분은 안 된다는 말도 들어본 적이 없다. 말만이 아닌 실제로 손님의 마음이 기준이고 잣대가 된다. 

대만에는 인정과 원칙이 공존한다. 대만인들은 넉넉하지만 치밀하다. 대만인들은 역사를 상상하지도 미화하지도 않는다. 역사는 그저 교훈을 얻기 위한 대상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대만은 ‘우리’ 모두의 모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만은 현대 사회가 나아가야 할 지향을 미리 보여주고 있었다. 


류영하(柳泳夏) 백석대·중문학

백석대학교 중국어학 전공 교수. 미국 UC버클리 중국학센터 방문학자를 경험했고, 중화민국 정부 초청으로 국립칭화대학(國立清華大學) 대만문학연구소(대학원)에서 한 학기 동안 강의했다. 홍콩에서 중국현대문학이론 전공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대만 산책』, 『방법으로서의 중국-홍콩체제』, 『홍콩 산책』 (문학 나눔 우수문학도서), 『香港弱化-以香港歷史博物館的敘事為中心』, 『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 『홍콩-천 가지 표정의 도시』, 『이미지로 읽는 중화인민공화국』 (문화부 우수교양도서), 『홍콩이라는 문화 공간』 (문화부 우수학술도서) 등이 있으며, 역서로 『포스트 문화대혁명』, 『상하이에서 부치는 편지』등이 있고, 편저로 『중국 백년 산문선』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