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즘, 정치철학의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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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즘, 정치철학의 출발점
  • 김동일 경상국립대학교·정치학
  • 승인 2022.08.21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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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아나키즘: 자율적인 개인들의 협력적 공동체』 (Robert Paul Wolff 지음, 김동일 옮김, 경상국립대학교출판부, 248쪽, 2022.07)

 

이 책은 아나키즘의 고전 중 하나로 손꼽히는 울프(R. P. Wolff)의 In Defense of Anarchism을 새롭게 번역한 것이다. 책 뒷부분에는 아나키즘을 정치철학의 출발점으로 제안하는 역자 후기가 있다.

울프는 철학적 아나키즘을 주장한다. 철학적 아나키즘이란 정치적 아나키즘과 달리 정부의 파괴와 전복을 실천적으로 주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인간에게 도덕적으로 요청되는 최고의 덕목은 바로 개인의 자율성인데, 이것은 국가의 권위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논리적이고 선험적으로 주장한다. 그리고 국가의 권위를 부인하는 아나키즘만이 개인의 자율성을 보호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나아가 자율적인 개인들은 국가의 권위가 없어도 충분히 협력적 공동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제안한다.

칸트주의자인 울프는 인간을 도덕적으로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들어주는 것은 개인의 자율성이라고 믿는다. 자율성, 자기 입법, 즉 자기가 자신의 법이 될 때만 인간으로서 독립성, 평등성, 그리고 책임성 등을 갖추고 도덕적으로 존엄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동물과 달리 자유의지가 있고 이성적 판단 능력이 있는 인간은 자율적인 존재일 때 인간의 본질적 가치에 가장 충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국가는 현실에서 사실상의 권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권위는, 울프에 따르면, 명령할 수 있는 권리이자 복종 받을 권리이다. 국가의 권위가 내리는 명령은 ‘내용독립적’ 명령으로서 명령의 내용이 적절하거나 타당한가는 상관없이, 명령을 내리는 것이 권위체이므로 반드시 따라야 하는 명령이다. 국가의 권위적 명령은 반드시 복종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의 권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울프는 인간의 자율성과 국가의 권위는 논리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자율적인 개인은 국가의 권위적 명령을 따르지 않아야 하고, 국가의 권위는 개인의 자율성을 용납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국가의 권위를 부인하는 아나키즘만이 인간의 자율성을 보호해주는 논리적 방법이다. 달리 말해, 인간의 자율성에 충실하면 국가의 권위를 부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자율성을 지키면서 공동체를 운영하는 다른 한 가지 방법으로서 만장일치의 직접 민주주의가 있다고 울프는 설명한다. 그러나 현실의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대의 민주주의다. 다수결 원칙은 소수자의 자율성을 허락하지 않고, 대의제도는 피지배자의 자율성을 보장하지 못한다. 울프는 다수결 원칙으로 집단의 의사를 결정하는 것이 비합리적이고 비일관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한다. 그리고 대의자는 완전히 심부름만 하는 대리인이 아닌 이상 민의를 온전히 대변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국가는 보안상의 이유로 외교 정책 등의 결정 과정과 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고 하면서 결정 과정에서 국민을 배제한다는 것이다.

1970년대 집필 당시의 기술 수준에 따라서 울프는 텔레비전 직접 민주주의를 제안한다. 현재의 기술을 적용하자면 전자 민주주의를 발달시켜 직접 민주주의를 하자는 제안이다.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충분히 안내 및 토론하고 모든 유권자가 핸드폰 앱 등을 통해 직접 투표해서 결정하자는 것과 내용상 같다. 

어쨌든 울프는 현실의 다수결 대의제 민주주의로는 개인의 자율성을 온전히 보호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아나키즘만이 그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충분히 발전되어서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아나키즘을 제안하는 일은 나중 일로 미뤄둔다. 그 대신 국가라고 하는, 인간이 사회적으로 만들어 놓은 제도는 사회적으로 교정할 수 있다고 본다. 인간이 고안해서 만든 것이므로 인간이 고민해서 교정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리고 소규모의 공동체, 특히 분권화된 지방 소규모 경제 공동체를 통해서 충분히 개인의 자율성을 보호하면서 사회적 동물로서의 삶을, 크게 번영하지는 못하더라도, 살아갈 수 있다고 제안하면서 책을 마친다.

울프의 철학적 아나키즘은 자율성과 권위의 양립불가능성이라는 논리를 단순하지만, 힘 있게 보여준다. 그러나 양자의 양립불가능성을 논리적으로만 간단히 결론 지어낸 인상을 준다. 자율성이라는 도덕적 요구와 국가의 권위라는 현실적 요청 사이에서 후자를 포기하고 전자를 선택하는 것은 말하기는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권위를 비판하고 개인의 자율성을 진지하게 주장하는 철학적 아나키즘은 국가의 권위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강렬하게 들춰내 준다. 특히 다수결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는 부분은 이상적 체제로서의 민주주의와 현실의 민주주의 사이에 채우기 어려운 간극이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것은 현실 민주주의가 완전하지 않으므로 폐기해야 한다기보다는, 극복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정치철학은 국가가 권력을 어떻게 어디에 사용해야 하는가에 관한 논의가 대부분을 이룬다. 그러나 노직이 지적했듯이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관해서 이야기하기 이전에, 국가라는 것이 과연 필요한 것이기나 한 것인가에 관해서 논의해야 한다. 국가에 관한 철학으로서 정치철학은 국가를 어떻게 잘 사용할 것인가보다 우선해서 국가 자체의 비도덕성과 불필요성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야 한다. 울프의 철학적 아나키즘은 이러한 기본적 문제의식에 충실하다. 이것이 아나키즘을 정치철학의 출발점으로서 삼아야 하는 이유다.

역자 후기에서 정치철학의 출발점으로서 제안하는 아나키즘은 다음 세 가지 원칙을 공유한다. 첫째, 인간의 자율성을 최고로 중시한다. 둘째, 권위주의적 지배를 거부한다. 셋째, 협력적 공동체를 추구한다. 인간을 도덕적 존재로 만들어주는 자율성을 최고로 중시한다면 자연스럽게 권위주의적 지배를 거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자유의지와 이성을 발휘하는 자율적 개인이라면 생존/공존과 번영을 위해 협력적 공동체를 추구하는 것은 합리적 선택이다. 

역자는 대학에서 정치학 전공 초년생들에게 아나키즘을 소개하고 있다. 정치학의 출발점은 국가가 행사하는 권력과 권위에 대한 문제의식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이론이나 철학보다 아나키즘은 국가의 권력과 권위에 대해서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국가가 개인의 자율성과 자유를 훼손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국가의 권력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고 행사되는가에 관해서 사실적으로 설명하거나,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고 유지되어야 하며 행사되어야 하는가에 관해서 당위적으로 주장하려면 국가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국가에 관한 건축가적 시각을 가질 때, 시민이자 인민이라는 정체성을 가질 때, 현실 민주주의의 한계를 인식할 때, 그리고 분배 정의의 궁극적 목적에 대한 이해가 있을 때 가능하다. 이러한 문제의식, 시각, 정체성, 인식, 그리고 이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아나키즘이다. 이러한 아나키즘은 정치에 대한 철학적 사고의 출발점으로서 손색이 없어 보인다.


김동일 경상국립대학교·정치학

경상국립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영국 워릭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정의론과 의무론의 이론적/실천적 연구에 관심이 있으며, 정치철학 교육을 위한 연구에도 관심이 많다. 최근 연구로는 ‘정의로운 분배를 위한 포괄적 원칙’, ‘자유, 권리, 그리고 의무의 개념적 관계’, ‘고전 유교 분배 정의관의 특징과 의미’ 등의 논문과 단행본 『삶의 정치철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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