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자치 - 그 의미와 조건
상태바
문화자치 - 그 의미와 조건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2.08.21 08: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책연구] 경기연구원 정책연구 보고서

 

정부는 「문화기본법」과 「지역문화진흥법」을 기반으로 수립한 ‘문화비전 2030’, ‘새 예술정책(2018-2022)’, ‘제2차 지역문화진흥기본계획(2020-2024)’ 등의 정책 및 계획을 통해 적극적으로 문화분권과 문화자치를 표방하고 있다. 또한 2018년부터 도시의 문화계획을 통해 사회성장 및 발전을 이끌어가는 문화자치형 정책사업인 ‘문화도시 조성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이는 국가 차원에서 국가 중심의 문화발전이 아닌 지역 중심의 문화발전이 곧 국가 문화발전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인식하고, 문화정책의 패러다임이 중앙집권 문화에서 자치분권 문화로 전환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에 경기연구원은 정책연구 보고서 <문화자치 -  그 의미와 조건>(연구책임자: 김성하 경기연구원 연구위원)을 최근 발간했다. 이 연구 보고서는 문화민주주의와 문화자치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문화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문화자치의 의미와 문화자치 실현을 위한 조건을 살펴보고, 향후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서 문화자치가 성공적으로 정착되고 확산되기 위하여 추진해야 할 실천과제와 정책적 제언을 제시하고자 했다. 

 

▶ 문화자치의 의미

문화민주주의(Cultural Democracy)는 기존의 문화정책과 180° 다른 철학이며 문화정책 방향이다. 전문가 혹은 행정 중심의 하향식 문화정책 방향을 포함하고 있는 문화의 민주화(Democracy of Culture)와 달리 시민, 즉 개인 한 명 한 명의 기본적 문화권리가 주체적으로 보장되고 실현될 수 있도록 일반 국민 개개인 중심의 상향식 문화정책을 표방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정책 결정과 집행이 더 이상 행정 중심적 효율성에 의해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행정 및 문화전문가 중심에서 국민 개개인으로, 중앙정부 중심에서 지방자치단체 혹은 지역으로 문화의 중심이 옮겨지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문화는 국가 혹은 중앙정부, 나아가 지방정부에 의해 통제될 수 없으며, 특정 계급에 소유될 수 없음을 의미하는 문화민주주의는 문화정책의 결정과 집행 과정이 중앙 혹은 지방정부에 의해 획일적이며 일방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문화민주주의는 다양한 지역에서 각 지역 주민들을 위해, 지역 주민들에 의해 문화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 그 지역적 특성이 반영될 때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지역 주민이 지역 문화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때, 문화민주주의를 실천하게 되며 이는 곧 문화자치의 실천이기도 하다. 

지역 중심의 문화자치를 실천한다는 의미는 국가가 만든 기본계획에 따라 지역문 화의 시행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여건과 지역문화의 고유성을 기반으 로 시・군・구에서 먼저 ‘시・군・구 지역문화진흥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토대로 시・도 에서 ‘시・도 지역문화진흥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그리고 문화체육관광부는 각 ‘시・ 도 지역문화진흥계획’을 토대로 국가 단위의 ‘지역문화진흥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국가 혹은 중앙정부가 가장 위에 있고 그 아래에 광역지방자치단체가 있고 다시 그 아래에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있으며 가장 아래에 마을이 있는 일반적인 수직적 위계 구조에서는 지역이 중심이 되고 지역이 자율적으로 만들어가는 지역중 심 문화자치 실현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화자치는 문화분권과 함께 문화민주주의의 실천이며 주체적 지역문화 생태계 조성을 지향한다. 이는 주민이 주체가 되는 지역문화를 의미하며 중앙과 지방자치단체, 지방자치단체와 시민의 수평적 협력구조를 전제로 해야 한다. 따라서 지역문화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담아내는 ‘지역문화진흥계획’ 수립을 위해서는 「지역문화진흥법」 개정을 통한 “상향식 계획” 수립을 규정하는 것이 문화자치를 실천하는 첫 단계가 될 것이다.

▶ 문화자치 실천 과제

문화자치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결정하고 집행하는 문화정책 및 사업 관련하여 결정과 집행과정에 시민이 주체로서 자율성, 독립성, 책임성을 가지고 참여하여 지역의 문화주권을 회복하고 문화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이다. 이는 문화정책의 결정과 집행과정이 중앙 혹은 지방정부에 의해 획일적이고 일방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문화자치는 다양한 지역에서 지역민에 의해 지역적 특성이 반영된 문화정책 결정과 집행과정이 이루어질 때 실현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렇듯 지역이 자율적으로 지역문화예술의 주체가 될 때 지역문화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한 예로 독일의 대표적인 주체적 지역문화 사례로 많이 언급되는 곳이 베를린에 있는 쿨투어브라우어라이(Kulturbrauerei, 문화양조장)이다. 지역민이 주체적으로 시의회 및 토지소유주인 기업과 협의를 통하여 폐쇄된 맥주양조장을 문화양조장으로 탈바꿈하여 명소가 됨으로써 지역민의 삶과 지역발전에 기여를 하고 있는 곳이다. 행정이나 전문가가 문화재생을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민이 직접 주체적으로 지역문화를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문화자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 중심 문화자치 실천을 위해서는 중앙과 지방자치단체, 지방자치단체와 시민 간 수평적 협력구조가 전제되어야 한다. 또한 형식적 행위로서 사무 이양이 이루어져서는 안 되며, 지역의 필요와 요구에 따른 중앙과 지방자치단체 간 사무조정, 상시적 정책협력체계 구축과 자치분권위원회 중앙권한이양전문위원회(사회・문화・복지 분야)의 문화 분야 전문성 제고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문화자치는 자치분권의 여러 분야의 사무로서 문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경기도 문화자치 기본조례」 제3조(정의)에서 “문화자치란 문화권 보장과 문화예술진흥 등 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결정과 잡행과정에 문화주체가 참여하고 활동하는 것을 말한다”고 명시하고 있듯이, 자치분권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지역문화를 직접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삶의 과정으로서 문화자치라고 이해해야 한다.

문화자치를 자치분권의 대상으로서 사무 이양에 초점을 맞추는 순간 본연의 의미로서 문화자치는 퇴색하게 될 것이다. 문화자치를 위해서는 지방재정의 독립성과 지속성, 그리고 지방분권이 답보되어야 하겠지만, 지방재정이 충분하지 않다고 해서, 또 지방분권이 진행되지 않았다고 해서 문화자치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문화 자치는 지역중심의 주체적 문화생태계 구축이라는 점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와의 관계에서 설정되는 지방분권 혹은 지방재정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보고서는 문화자치를 위한 실천과제로 ▲법・제도적 기반 조성, ▲지역문화재정 발굴・확보, ▲향유의 대상에서 문화주체로의 전환, ▲지역 중심 문화생태계 구축을 제시하고 있다. 법・제도적 기반 조성을 위해서는 「지역문화진흥법」 개정, 문화자치 관련 법・조례의 제・개정을 통한 문화자치 사업추진 및 지원 근거 마련, 문화자치 전담기구(조직) 지정・설치, 상시적 정책 협력체계 제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지역문화재정 발굴・확보를 위해서는 포괄보조금 확대를 통한 재정 분권 실천, 지역문화진흥기금 설치 확대를 통한 지역문화재정 조성, 주민참여예산제를 통한 문화재정 확보 등이 필요하다. 

향유의 대상에서 문화주체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문화주체 발굴 및 참여 확대 기반 조성, 시민력・문화력 제고를 위한 프로그램 운영, 지역문화인력・생활문화 활동가 등 문화인력 양성 지원이 이루어져야 하며, 마지막으로 지역 중심 문화생태계 구축을 위해서는 지역별 지역문화 정보 시스템 기초 데이터 구축・운영, 문화자치 정책마켓・정책박람회 개최, 지역문화 매개 전문인력 활동 지원 등이 필요하다.

 

▶ 정책제언

ㅇ 중앙정부

중앙정부는 문화자치, 문화분권 관점에서 법 제도 및 재정 구조 개편을 통해 지역문화정책 의사결정 및 추진 방식을 상향식(bottom up)으로 전환해야 한다. 또한 법 개정을 통해 광역 단위뿐만 아니라 기초 단위의 지역문화협력위원회 설치를 명시하고, 지역문화 협력위원회 기능 강화와 상시적인 소통구조를 마련해 중앙-광역-기초 간 지속가능한 거버넌스 구축 및 활성화를 도모해야 한다.

중앙정부는 문화자치 실현을 위한 중앙, 광역, 기초자치단체 간 합리적 역할 분담과 공감대 형성을 우선 추진해야 하며, 지역문화 진흥을 위한 협력자, 매개자로서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직접사업의 경우 필요한 경우만 시행하고, 지역 간 문화재정 격차 완화를 위한 재원 발굴・확보 방안을 마련하며, 중앙정부-지역 간 파트너십을 통한 협력사업을 추진함과 동시에 국가 단위 조사・통계・평가・컨설팅 등 지원을 통해 지역에서 자율적인 지역문화 정책 및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는 데 힘써야 한다.

ㅇ 광역지방자치단체

광역지방자치단체는 중앙정부와 기초지방자치단체를 중재하고 연결하는 매개자로서 기능이 필요하며, 관할 기초자치단체간 문화적 균형발전을 위하여 지원해야 한다. 그리고 광역자치단체 차원의 지역문화진흥계획 수립 시 기초자치단체 지역문화진흥 계획이 먼저 수립되고 이를 연계・반영하여 중앙정부에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광역자치단체는 기초자치단체간 상호협력체계 구축을 통해 과잉 경쟁을 최소화하고, 자원 공유 등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각 지역 간, 기관 간 분절적인 사업 추진이 아닌 협력 사업이 추진될 수 있도록 공동사업 추진, 기초자치단체 문화 관련 정보 아카이빙 및 공유, 문화자치 우수사례 공유, 시설 및 인력 지원 등을 추진해야 한다.

ㅇ 기초지방자치단체

기초자치단체는 생활권 단위에서 지역사회 및 주민과 직접적 관계를 맺는 주체이다. 지역문화의 다양성과 고유성을 바탕으로 지역주민이 문화주체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즉, 지역 주민이 적극적으로 문화주체로서 참여할 수 있도록 문화자치를 공론화하고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지역 문화자원 발굴 및 활용, 지역 문화환경 개선, 문화주체로서 역할을 위한 시민력・문화력 제고 지원 등의 역할 수행이 필요하다. 또한 지역 내 문화정책 및 사업 관련 이해관계 조정, 지역문화 전문인력 발굴 및 양성, 민관 협력형 로컬 거버넌스 구축을 지원하고 문화자치에 대한 지역의 이해와 함께 문화자치의 정착과 확산을 위해 필요한 지역 차원의 실천과제를 마련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