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위탕(林語堂)의 재발견 … ‘생활의 예술’론과 기독교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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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위탕(林語堂)의 재발견 … ‘생활의 예술’론과 기독교 정신
  • 백영길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중문학
  • 승인 2022.08.21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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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생활의 발견’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이미 일반 명사화되다시피 한 친숙한 표현이지만, 아마도 이 말이 처음 쓰인 것은 현대 중국의 저명 작가인 린위탕(1895∼1976)의 영문 저서 “The Importance of Living”(1937)의 우리말 번역 제목 『생활의 발견』(1954)에서부터였을 것이다. 어쨌든 ‘삶의 중요성’ 혹은 ‘인생의 의미’라고 번역될 법한 영문 제목의 이 책은, 1960~70년대의 우리나라에서 가히 ‘린위탕 열풍’이라 불릴 만큼 애독되어 온 이래 지금까지 다양한 판본으로 출간이 이어지고 있는 스테디셀러이다. 다만 1990년대 초 중국과의 수교 이래, 린위탕은 어떻게 보면 냉전 시기 한중 역사 교류의 공백을 메꾸어 준, 반공 자유주의 이데올로기 체제하에서 ‘동양의 지혜’와 ‘행복’을 갈파했던 ‘생활의 철학인’으로서의 이미지만을 남긴 채, 우리 독서 문화의 현장에서는 그 기대 역할이 점차 축소되고 주변화되어 가는 느낌도 없지 않다(왕캉닝, 린위탕과 한국 – 냉전기 중국 문화·지식의 초국가적 이동과 교류, 2022, 참조).

그러나 린위탕은 현대 중국문학사에서 그렇게 소략하게 다룰 만한 주변부의 작가는 결코 아니다. 기실 『생활의 발견』을 비롯한 린위탕의 ‘생활의 예술’론은 1920~30년대 중국의 문학계에서 독자적인 순수 서정성의 문학 영역을 구축했던 저우쭤런(周作人)의 미학 담론을 수용하면서, 그 나름의 동시대적 세계성을 구현한 성과였다. 그리고 이러한 생활의 예술론의 연장선상에서 체계화를 이룬 저우쩌런의 이른바 ‘언지(言志)’ 문학론에 잠재된 개인주의 및 자유주의 문학사상은, 이후 린위탕이 보여 주는 ‘좌로는 프롤레타리아, 우로는 파시즘’의 억압적 현실 정치 구도에 대한 치열한 비판과 저항의식의 ‘원류(源流)이기도 했다. 물론 저우쩌런과 린위탕의 이러한 1930년대의 문학 비평 및 저널리즘 활동, 특히 린위탕이 제창한 ‘한적(閑適)’과 ‘유머’의 문학론은 당시 상하이를 중심으로 한 도시 소시민적 취향에 영합하는 상업 전략적 측면으로 인해 신랄한 비판을 받기도 했었다. 그러나 각도를 달리하여 본다면, 이들이 전개한 문학 활동과 비평 담론은 그만큼 이 시기의 주류였던 좌익 정치 이념과 문학운동에 대한 강력한 경쟁력과 독자층의 호응을 갖추고 있었던 셈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러한 저우쩌런과 린위탕의 문학비평 예술 담론 속에 녹아들어 있는 종교성의 측면이다. 실제로 저우쩌런의 생활 예술론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은 영국의 성심리 학자인 해브록 엘리스(Havelock Ellis)였던바, 저우쩌런은 그중 엘리스의 성심리학에 담겨 있는 철학적 인생론의 종교성에 주목하고 있었다. 즉 그는 엘리스가 분석한 성 프란치스코의 삶에서 나타나는 ‘향락적 생활’과 ‘경건한 신앙생활’ 사이를 관통하는 일종의 ‘순환사론(循環史論)’적인 삶의 예술성, 즉 ‘금욕과 탐닉’ 및 ‘진보와 회귀’의 끊임없는 순환과 조화의 의미를 미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하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린위탕이 추구하고 있던 생활의 예술론 역시 일상의 생활과 자연과 예술 속에서 미적 즐거움을 향유하려는 욕망과 함께, 궁극적으로는 그러한 삶의 향수가 유한한 삶의 경계를 넘어서는 관용과 해방, 내적 자유와 영적 화해로 이어지는 일종의 종교적 구도성의 궤적을 보여 주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린위탕과 절친했던 작가 쉬쉬(徐訏)가 린위탕을 추모하는 글 속에서 “그는 기독교도였다. 비록 중도에 한번 기독교를 떠났었지만, 그러나 그의 영혼은 역시 기독교에 속해 있었다. …… 그의 심령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기독교 정신이었다”(「追思林語堂先生」)고 단언한 것은 바로 그러한 점을 포착한 때문이었으리라.

그렇다면 린위탕의 영혼을 관통하는 기독교 정신의 핵심은 어떻게 규정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기실 그의 생활의 예술론 속에 이미 내장되어 있다고도 여겨지는바, 바로 ‘원죄’와 ‘대속(代贖)’ 신앙의 교리적 구속을 넘어선 일종의 ‘원복(原福, Original Blessing)’ 개념의 탐색 측면이다. 실제로 『생활의 발견』 제5장에서 린위탕이 유가의 ‘인(仁, Compassion)’ 개념을 동서양의 ‘정(精, Passion)’의 담론, 즉 ‘성적 열정’의 관능성을 ‘유쾌하게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따뜻한 마음과 풍부한 생명력’으로 재해석하며 전개하고 있는 미학적 탐색이 그 중요한 예증일 것이다. 이러한 각도에서 살펴본다면, 린위탕이 스스로를 ‘이교도(Pagan)’라고 부를 만큼 정통 기독교 교리에 반발하며 강조한 것은 결국 원죄 의식에서 비롯되는 금욕적인 억압의 철폐와 ‘에로스로의 귀환’에 의한 ‘구원’이라는, 일종의 ‘창조 영성’적인 기독교 신학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린위탕의 문학에서 추구되던 그 에로스는 결국 “억압의 체제나 그 옹호자들의 변혁까지 야기하는 그러한 상상력을 고취하는”, ‘원수 사랑의 에로스’였다고 하겠다. 린위탕의 후기 문학사상 및 소설 창작에 나타나고 있는바, 특히 여성 인물 형상들에서 그려지고 있는 일종의 원초적 생명의 본능과 모성성의 구현을 통한 본향에로의 회귀 갈망, 그리고 파시즘과 코뮤니즘의 경계를 넘어선 유토피아적인 상상력과 그 현실적 좌절의 이야기들이 바로 그 예증일 것이다(Matthew Fox, Original Blessing, 1983. 황종렬 옮김, 『원복 原福』, 2001 참조). 

여기에서 린위탕의 문학사적 위상에 대한 다시 읽기 작업은 그 나름의 중요한 현재적 의미를 띤다. 특히 현대 중국문학의 흐름을 계급혁명과 민족해방의 사회역사적 근대성 구현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보는 기존의 평가 틀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기독교적 사랑의 미적 구현을 추구했던 린위탕의 문학은 그러한 사회역사적 근대성의 동력에 대한 비판적 대안의 가능성으로서 재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그의 코즈모폴리턴적인 이중언어 글쓰기의 개방성, 동서문화의 융합과 그 시공을 넘나드는 디아스포라적 자유인으로서의 선구성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린위탕의 재발견은 현대 중국문학의 다시 읽기를 넘어서서, 어쩌면 우리 안에도 잠재되어 있을지 모를 타인과 현실 세계에 대한 페시미즘적 증오의 철학, 혹은 니체의 ‘원한(Ressentiment)’ 개념의 굴레에서 벗어나, 기독교 정신의 핵심인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요청에 응답하기 위한 소중한 결단의 계기가 될 터이다.


백영길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중문학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중어중문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일본 와세다대학 대학원에서 중국 현대문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일전쟁 시기 중국의 리얼리즘 문학운동에 대한 연구 이후, 현대 중국문학에서의 낭만주의를 포함한 다원적인 문학사조와 특히 기독교의 종교성에 관한 미적 근대성의 탐색에 관심을 기울여 공부해 오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중국 항전기 리얼리즘 문학논쟁 연구』, 『현대의 중국문학』, 『원한의 격정과 화해의 길 찾기 – 현대 중국문학의 기독교 서사』가 있다.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 중어중문학과의 명예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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