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국책사업과 작은 섬마을 주민들 … 동남권 신공항 건설 사업에서 놓치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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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국책사업과 작은 섬마을 주민들 … 동남권 신공항 건설 사업에서 놓치고 있는 것
  • 김민주 동양대·행정학
  • 승인 2022.08.21 0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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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은 섬 하나가 있다. 그곳에는 산으로 갈라진 몇 개의 마을이 있다. 그중 한 마을에 현미경을 비춰보자. 여느 시골처럼 노인이 대부분이고 간혹 젊은이들도 보인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젊은이들도 최소 40대 이상인 듯 보인다. 섬이라서 그런지 대부분 어부이며, 그래서 바다를 터전 삼아 생계를 이어간다. 논과 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노인도 제법 있다. 마을 내부 사정은 잘 알 수 없으나 흔히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평화로워 보인다.

여기는 어디일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이 알지 못했던 곳이다.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한 번쯤은 들어본 곳이 되었다. ‘가덕도’라는 곳이고, 동남권 신공항 건설 사업으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곳이다. 현미경이 비춘 곳은 가덕도의 몇몇 마을 중에서도 동남권 신공항 건설 사업의 직접적인 대상지인 ‘대항마을’이다. 그런데 ‘가덕도’는 들어봤는데, ‘대항마을’은 조금 생소할 것이다. 전국적인 관심의 대상이 된 가덕도라는 섬 자체와는 달리, 정작 사업의 직접적인 대상지인 섬의 작은 마을인 대항마을은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대항마을 주민들이 겪어왔던 경험이 꽤 독특하기 때문에, 그 경험을 알면 관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함도 알게 된다. 독특한 경험이란, 대형 국책사업인 동남권 신공항 건설 사업 계획이 추진되었다가 철회되었다가 또 추진되는 등 반복과정을 지금도 거치고 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는 이렇다. 처음 계획이 언급된 후 추진되었다가(2003년), 그 계획이 무산되었다가(2011년), 다시 또 추진되었다가(2014년), 또 무산되었다가(2016년), 또 추진되고 있다(2021년~현재). 약 20년 동안 어느 정권에서도 빠짐없이 계속 이슈가 되었다. 대형 국책사업이라서 사업 추진과정에 소요되는 시간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충분히 가능했지만, 사업 추진에 따른 소요시간이 아니라 계획 추진과 철회를 반복하는 데 20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이는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국책사업 추진 과정 사례이다. 

정치적 시선으로 바라보면 이해가 되긴 한다. 사회의 가치를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것이 정치라고 한 데이비드 이스턴(David Easton)의 말대로 정책도 정치과정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정치에 따라 정책이나 사업 추진에 변동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동남권 신공항 건설 사업이 정치적 결정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사업 추진과 철회 그리고 재추진 등에서 언제나 선거가 그 중심에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적 영역의 결정에 대해 옳고 그름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물론 옳고 그름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일단 제쳐 두자). 오히려 정치는 정말 필요하며, 때로는 자신의 목소리(voice)를 합리적으로 내는 정치는 모두가 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동남권 신공항 건설 사업에서 나타난 정치 본연의 기능과 역할을 비판하거나 부정하진 않는다. 다만, 이러한 정치적 과정과 모습에서 한 가지 중요한 점이 빠져 있는 점을 말하고자 한다. 

그 중요한 점은 다시 현미경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인다. 대형 국책사업인 동남권 신공항 건설 사업이 추진되고 철회되는 반복을 겪을 때, 사업 대상지인 가덕도 대항마을 사람들의 존재는 별로 고려되지 않았다. 그동안 정책결정자로서 위치에 선 사람 중에서 사업 대상지인 대항마을 주민들을 생각해본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심지어 선거를 앞두고 여러 유력 정치인들이 대항마을을 꽤 방문하기도 했는데, 정작 그 자리에 대항마을 주민들은 없었다. 초대는커녕 소문에 의해 방문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랴부랴 자신들의 목소리라도 내러 가야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고민만 하고 있었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점은 과거 한 지역 정치인은 가덕도 표(票)는 마을 인구가 적어서 고작 몇 표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그곳에 가서 굳이 선거운동을 할 필요는 없다는 말까지 한 적도 있었다. 이 말을 들은 가덕도 주민들은 지금도 그때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무관심하고 무시당한 주민들이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놓고 이리저리 또 시달리는 세월을 보내고 있는데, 이들을 생각하는 정책결정자나 정치인은 거의 없다. 너무나도 큰 국가적 사업에서 너무나도 작은 마을 주민들은 높은 상공에서 하나의 점으로 보이는 미물만도 못한 듯이 존재하고 있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터전을 잃게 될 당사자인데도 그냥 그런 상황에 놓여 있다. 비단 대항마을 뿐 아니라 가덕도의 다른 마을 주민들도 대부분 비슷한 심정이다.

공익을 바라보는 두 관점이 존재한다. 실체설과 과정설이 그것이다. 사익과는 비교할 수 없고 더 우선시 되어야 하는 하나의 실체로서 공익이 존재한다는 실체설이 동남권 신공항 건설 사업에서 더 힘을 얻고 있다. 적어도 주민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인다. 사익의 합을 공익으로 보는 과정설이 더 옳다는 말은 아니지만, 지나친 실체설 중심의 사고방식에서는 대형 국책사업이 우선일 뿐 그 대상지에서 조상 대대로 살고 있는 마을 주민들이 우선시 되진 않는다.

한 사람이 죽어서 사라지면 곧 하나의 우주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인격을 지닌 한 개인은 무한한 생각과 상상과 다양한 행동을 하며 그것들이 체화(體化)되어 있어서 마치 우주와 같은 존재로 여겨진다. 아무리 대규모 국책사업이라고 할지라도 그 국책사업으로 인해 사라질 마을 주민 개개인의 존재보다는 클 수 없다. 공익의 필요성과 또 공익을 존중하기 때문에, 국책사업으로 진행되는 동남권 신공항 건설 사업의 백지화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정책과정이 진행되었고 그 속에는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며, 또 기회 및 매몰 비용을 포함한 여러 의사결정 비용 등이 발생되고 있다는 점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래서 한 가지만 더 고려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그것은 동남권 신공항 건설 사업의 직접적인 대상지인 가덕도 마을주민, 더 현미경을 자세히 비춰서 본다면 대항마을의 주민 한 명 한 명의 목소리를 모두 들어봤으면 하는 소망이다. 그들은 발을 디디고 살아온 작은 터를 이제 잃고 어디론가 쫓겨나야 할 직전에 놓여 있다.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아주 큰 대형 국책사업에서 아주 작은 마을의 몇 안 되는 주민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은 비용으로만 따져도 정말 쉬운 일이다. 그들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관심을 갖고 그 도움을 위해 과감한 결정과 집행을 하는 일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이번 기회에 국책사업에서 사업대상지 마을 주민과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좋은 모델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행정학자로서 정부의 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명심할 사항이 있다. 정부의 토대는 국가 내 국민이고, 그 국민들은 어느 작은 삶의 장소에서 살아가는 이들이라는 점이다. 좋은 위정자와 지도자는 지도(map)에서조차 잘 표시되지 않는 저 멀리 떨어진 지역의 아주 작은 마을에서 나름의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먼저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다. 하물며, 대형 국책사업으로 작은 마을조차 사라질 위기에 처한 마을 주민들에 대한 관심은 더욱 중요하다. 동남권 신공항 건설 사업 추진과정에서 절대 빼 놓지 말고 오히려 최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대상은 바로 대항마을 주민들이다.


김민주 동양대·행정학

동양대학교 동두천 캠퍼스 공공인재학부 교수. 공공인재학부장과 경인행정학회 연구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국회도서관 자료추천위원단 위원, 각종 정부평가의 평가위원 및 평가위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자치와 보이지 않는 권력』, 『행정계량분석론』, 『호모 이밸루쿠스: 평가지배사회를 살아가는 시험 인간』, 『재무행정학』, 『공공관리학』, 『시민의 얼굴 정부의 얼굴』, 『정부는 어떤 곳인가』, 『문화정책과 경영』, 『평가지배사회』, 『원조예산의 패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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