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민중은 왜 유럽연합을 거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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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민중은 왜 유럽연합을 거부할까?
  • 김지현 기자
  • 승인 2020.0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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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브렉시트와 유럽연합: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세계경제의 블록화를 전망한다 | 알렉스 캘리니코스 외 지음 | 김준효 엮음 | 책갈피 | 176쪽
 

브렉시트의 세계사적 의미를 이해하고 이것이 세계 자본주의의 판도를 어떻게 바꿔 놓을지 가늠하기 위해 마르크스주의 석학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분석 글 세 편을 중심으로 엮은 책이다.

2020년 1월 31일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는 세계의 판도를 바꿀 중요한 사건이다. 2016년 6월 23일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를 결정한 지 약 3년 6개월 만이다. 영국 대자본들은 브렉시트를 좌초시키려 애쓰며 정치권과 날카롭게 갈등을 빚었고, 그 과정에서 총리가 두 차례나 교체됐다. 주요 제국주의 열강과 나토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 년 동안 구축돼 있던 국제 질서에 균열을 낼 브렉시트에 난색을 표했다.

브렉시트는 특히 유럽연합 지배자들에게 골치 아픈 일이다. 회원국 중 경제 규모가 2위이고 군사력은 가장 강력한 데다 금융의 중심지인 영국이 떨어져 나가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유럽연합 지배자들이 약 3년간의 브렉시트 협상에서 영국에 최대한의 출혈을 강제하려 든 것은 이 때문이기도 하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는 신자유주의 질서에 대한 정치적 항의의 의미가 있었다는 점에서도 세계적 사건이었다. 탈퇴 투표자의 절반가량이 “영국에 관한 결정은 영국에서 내려져야” 함을 이유로 들었다는 것은, 서민 대중이 자신들의 삶이 파탄 난 책임을 ‘신자유주의 전도사’(유럽연합)에 물었음을 뜻하는 징표였다.

총 3장으로 이루어진 책의 1장 “브렉시트: 세계사적 전환”에서 캘리니코스는 한때 세계 최강이던 영국 자본주의가 ‘여러 열강 중 하나’가 되면서 겪은 변화와 그 과정에서 영국과 유럽 블록의 관계에 생긴 변화를 분석해 브렉시트의 의미를 짚는다. 그러면서 이런 변화가 국민투표를 둘러싼 여러 정치 세력의 태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또 국제주의적 좌파가 왜 유럽연합이 대변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 독립적 대안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다룬다.

2장 “세계화는 끝났는가?”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위기를 다룬다. 브렉시트의 배경에 있는 세계 자본주의의 변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분석이다. 이 글에서 캘리니코스는 장기 불황으로 생산·무역·금융이 모두 위기에 빠지고 세계화에 대한 정치적 반발이 분출하는 등 체제의 핵심부에서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파산하는 징후를 분석한다. 그런 경향이 “지리경제학적”·지정학적 경쟁을 키우는 동학과 (유럽연합 같은) 지역 블록에 미칠 영향을 다루는 부분은 특히 날카롭다.

3장 “브렉시트, 영국 총선, 노동당 좌파”는 ‘브렉시트 선거’라고 불린 2019년 12월 12일 총선을 화두로 삼은 글이다. 캘리니코스는 여기에서 영국 대자본들이 유럽연합 잔류를 원하는데도 보수당 강경 우파 보리스 존슨의 국수주의 도박이 승리하고 유럽연합 잔류를 내세운 노동당이 대패한 정황을 분석한다. 이 글은 브렉시트의 배경에 있는 계급적 이해관계의 작동을 면밀히 다뤘다는 점에서 특히 탁월하며, 세계경제가 다시 대침체에 빠지리라는 전망이 제기되는 오늘날에 되새길 만한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다. 캘리니코스는 이 글에서 제러미 코빈의 노동당의 패배 원인도 비중 있게 다루며, 기성 언론들이 주장하듯 코빈이 지나치게 급진적이라거나 노동자들이 인종차별적이어서 노동당이 패배한 것이 아님을 설득력 있게 서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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