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김대중도서관, 1978년 못으로 눌러쓴 옥중서신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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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김대중도서관, 1978년 못으로 눌러쓴 옥중서신 공개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8.17 12: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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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관장 한석희)은 김대중 대통령 서거 13주기를 맞아 김대중이 1978년 7월 22일 서울대학교병원 감옥병실에서 작성한 못으로 눌러쓴 옥중서신를 공개한다. 공개 사료는 기존에 공개된 못으로 눌러쓴 옥중서신 19편 외에 추가로 새롭게 발견된 것으로, 김대중이 이희호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대중은 1976년 3.1민주구국선언사건으로 1976년 3월 8일 연행돼 조사를 받은 후 3월 10일 서대문구치소에 구속수감됐다. 1977년 3월 22일 대법원 최종 판결에서 5년형을 선고받은 김대중은 1977년 4월 14일 진주교도소로 이감됐다. 이 사건으로 재판을 받은 민주인사들 중에는 김대중을 포함해 국제적으로도 알려진 인물들이 있었고, 인권외교를 내세운 미국 카터 행정부가 등장하면서 유신 정권에 대한 국제적 비판 여론이 형성됐다. 

그래서 다른 사건 관계자들은 석방됐지만, 김대중은 석방되지 않고 대신 1977년 12월 19일 서울대학교병원 감옥병실로 이감됐다. 유신 정권은 김대중을 석방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김대중을 계속 수감하면서도 김대중의 신병 치료라는 인권 개선 조치를 취하는 것처럼 대외에 선전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감옥병실에서의 생활은 교도소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김대중은 자서전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그곳에 나를 가둬놓더니 교도소보다 더 엄중하게 감시했다. 외부와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했다 … 창문은 모두 폐쇄해 햇살 한 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 겉으로는 병실이었지만 실상은 고문실이었다. … 저들은 운동은커녕 편지도 쓰지 못하게 했다. 나는 편지로 바깥세상에 무언가를 알리고 싶었지만 필기구는 몽당연필 하나 소지하지 못하게 했다. … 제발 교도소로 보내달라고 할 정도였으니 내가 처한 상황이 얼마나 처참했겠는가. 병원에 누워 있는 것은 산 채로 관에 들어간 듯했다.”

감옥병실에서의 감시 통제 상황이 위와 같았기 때문에 이감 직후부터 김대중은 아무런 기록을 남길 수 없었다. 이러한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자 김대중은 병실 면회를 통해 유일하게 만날 수 있었던 부인 이희호와 몰래 타개책을 강구했다. 그것이 바로 못으로 눌러쓴 편지였다. 김대중은 이희호를 통해 몰래 반입한 작은 메모지 위에 못을 누르는 방식으로 흔적을 남겨서 글을 작성했고 이 메모지를 화장실 두루마리 휴지 속에 두면 이희호가 이를 외부로 갖고 나갔다. 이러한 방식으로 김대중은 1978년 7월부터 기록을 남길 수 있었다. 이 편지의 글은 메모지와 주변의 조도 차이가 발생하도록 해 못으로 누른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의 음영 차이로 판독 가능하다. 

김대중의 못으로 눌러쓴 옥중서신은 국내외적으로 다른 예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작성됐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김대중이 사형수 시절 작성한 옥중서신이 유명해 그전에 작성된 옥중서신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작성 방식만 놓고 보면 못으로 눌러쓴 옥중서신은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다. 

또한, 이 자료는 탄압이 심해질수록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인간의 자유의지 역시 강화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변의 감시를 피해 몰래 못으로 눌러서 한 글자 한 글자 글을 작성한 김대중의 의지는 가히 초인적이라고 할 만하며, 이 자료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극복해 나가려는 인간의 의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못으로 눌러쓴 옥중서신은 감시를 피해 작성된 것이기 때문에 정세 판단, 민주화 투쟁 전략 등 일반적인 옥중서신에는 들어갈 수 없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번에 공개한 편지를 보면 김대중은 1978년 가을 이후에 유신 체제의 변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예측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유신 정권의 간계에 휘말리지 않도록 항상 주의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감옥에서도 민주화 투쟁 전략을 고민하고 이를 외부에 전달해서 실천에 옮기는 김대중의 모습을 이 편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못으로 눌러쓴 옥중서신 사진]

일반 촬영 사진 3장과 메모지와 주변의 조도 차이가 발생하도록 해서 못으로 눌러쓴 부분을 판독할 수 있도록 촬영한 사진 3장

[공개 사료 전문]

원문에는 한자가 많은데 의미 전달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글로 표기함.

1. 요사이 당신의 건강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오. 내 일보다 몇 배나 걱정을 하고 있소. 무엇보다 기력을 돋구어야 할 것이요. 식사에 특히 노력할 뿐 아니라 저번도 말한 데로 보약을 좀 먹도록 하시오. 자기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가족을 생각해서라도 건강 회복에 특별유의해야 하오. 현재의 나를 도우는 최대의 길도 당신 건강이니 내 걱정을 생각해서라도 소홀히 생각말두록 거듭 당부하오, 그리고 이(齒)도 내주 중에는 치료하시오.

2. 8.13 생환 5주년 미사는 밖에 형편 보아서 판단하시오. 지난 7월 3일 미사도 했으니 필요없다고 생각하면 그리하시오. 아이들이나 두 김 동지(상원, 종완) 상의 해본 것도 좋겠지요.

3. 내가 판단하기는 가을 이후 우리나라 정치 정세에 큰 변화가 올 것이오. 그 성격과 범위는 첫째 우리 민주세력의 역량과 국민의 호응 둘째 국내의 경제 및 사회의 동향 셋째 박씨의 태도 넷째 우방 특히 미국의 태도 등에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오. 그러나 근본은 우리 국민이 어느만큼 각성하느냐요. 오는 8.15쯤 박씨가 모종의 정치적 타개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오. 물론 만족할 것은 못되겠지요. 여하튼 정보를 잘 살펴봐주길 바라오.

4. 항시 말하지만 저들이 파는 함정에 주의해야 하오. 아이들, 동거인들 잘 부탁하오. 반면에 지나친 신경도 안쓰도록 해서 정신의 피로를 막아야 하오. 그리고 당신은 누구에게나 “점잖다”는 인상을 주고 있으며 또 입장도 남과 다르니 기관원이나 그 계통 사람 대할 때는 오직 정중한 언행으로 일관해서 그들이 내심으로는 더욱 울어러보도록 해주길 바라오. 국내 신문은 한국(조간), 동아(석간)의 까싶과 사설만 너주고 기타 주(駐)미일 기자의 해설기사, 중요 경제특집이나 해설을 너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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