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계 金氏 수바르-나(Suvar-na)의 이주 … 사람 따라 말(언어)도 간다
상태바
인도계 金氏 수바르-나(Suvar-na)의 이주 … 사람 따라 말(언어)도 간다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2.08.15 03: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82)_ 인도계 金氏 수바르-나(Suvar-na)의 이주--사람 따라 말(언어)도 간다.

 

폴란드의 수도를 우리는 바르샤바라고 하고 영어로는 Warsaw라고 쓰고 워:쏘:[wɔ́ːrsɔː]에 가깝게 발음한다. 바르샤바는 폴란드어 Warszawa의 발음을 따른 것이다. 이처럼 하나의 대상에 대해 자칭, 타칭이 있는 데다 각각의 변이형의 수가 만만치 않으니 어느 때는 이름을 통한 역사나 문화 연구가 성가실 때도 있다. 그래도 기억해 둘 것은 순경음(labial) /w/로 표기되는 명칭의 원음이 [ㅂ]와 [우]로 비슷하나 다르게 실현된다는 점이다. 

염치도 없고 명분도 약한 데도 군사력 하나만 믿고 억지 언행을 보이는 악당 때문에 한 나라가 유린당하고 여전히 포화 속에서 국민들이 공포와 기아에 고통스러워하는 일이 진행형으로 우리들 눈앞에 벌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말하는 것이다. 과거의 영화와 번성과는 별도로 현재 불운한 이 나라를 우리는 우크라이나라고 부른다. 그러나 키릴문자로는 Україна, 로마자로는 Ukraïna라 쓰고 발음을 [ʊkrɐˈjinɐ]라고 한다. 영어식 표기는 Ukraine이고 읽기는 유크레인이다. 

10여 년 전 쯤 되는 해 추운 겨울, 처음 이 나라의 수도에 갔을 때 내 지식은 고대 슬라브어 krajina에서 유래한 Ukraine의 말뜻이 ‘국경’이라는 정도였다. 이 나라에 간 주된 이유는 현재의 우크라이나 땅이 기원전 7~8세기에는 키메리언, 스키티언, 사르마티언 등 초원 유목민들의 생활 터전이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들과 아시아 유목민들과의 친연성(親緣性)에 주목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덕택에 2010년에 나온 키이우 보리스 그린첸코 대학교(Kyiv Boris Grinchenko University)의 미하일로 비데이코(Mykhailo Videiko) 고고학 교수가 집필한 Ukraine from Trypillia to Rus라는 방대한 저서를 구하는 행운을 누렸다. 그 책에 5~6세기경 우크라이나 땅에 살았던 우크라이나인의 조상인 동 슬라브족 계열의 안테 종족 연맹체(The Antes or Antae tribal polity)가 나온다. 그리고 안테족을 구성하는 구성원 중의 하나로 울리치(Ulichians 또는 Ugliches)라는 부족이 등장한다. 이름의 울림이 낯설지 않다.  

러시아의 무력 침공이 개시된 지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나토도 유엔도 제멋대로의 독재자를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이 정의인 양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반복하는 뻔뻔한 인간성 상실 극악무도한 범죄자는 되레 피해 국가를 겁박하며 자신의 권력을 즐기고 있다. 그러는 사이 언론을 통해 이 나라의 수도를 비롯해 많은 도시의 이름이 알려졌다. 그런 중에 키예프[ˈkiː.ɛv]로 알고 있던 수도 명칭 Kiev가 어느 틈에 Kyiv로 쓰이고 발음은 키이우[ˈkɪjiu̯]로 대체되었다. 여기서도 /v/로 표기된 입술소리가 [브] 또는 [우]로 구현되었다.  

실크로드 상의 오아시스 국가 쿠처 왕국을 통치한 왕들은 주로 白氏였다. 놀랍게도 필자와 같은 성씨의 연전질(延田跌, 재위: 678~707년) 국왕과 그 이전 수바르나 푸시파(Suvarna Pushpa, 蘇伐勃駛, 재위: 600-625년) 국왕과 그의 두 아들 수바르나 데바(Suvarna Deva, 蘇伐疊, 재위: 625-645년), ‘신성한 꽃’ 하리 푸시파(Hari Pushpa, 訶黎布失畢, 재위: 650~658년)만 백씨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 시기는 서역지배를 놓고 벌어진 중국과 토번(티베트) 간의 각축전에서 중국이 패하고 토번이 승리한 때이다. 달리 말해 서역 국가들의 대부분이 토번의 속국이었던 시기다. 따라서 왕의 이름만 놓고 본다면 백엽호(白葉護, 재위: 648~650년)와 소계(素稽, Suji, 재위: 659~678년)도 출신이 의심스럽다. 

토번계나 인도계로 추정되는 쿠처왕의 이름 수바르나 푸시파와 수바르나 데바는 각각 金花와 黃金神이라는 뜻을 지닌다. 그리고 金氏를 산스크리트어로는 Suvar-na, 쿠차어로는 Swar-na라고 한다. 다시 한번 산스크리트어 입술소리 /v/가 우리말과 중국어에서는 [ㅂ](in 蘇伐)로, 쿠처어에서는 [w]로 각각 닮은 듯 다른 소리로 실현됨을 알 수 있다. 이런 일이 또 다른 곳에서도 나타난다. 그 하나는 동유럽이며, 또 하나는 신라의 초대왕 박혁거세 출현 전부터 존재하던 서라벌 여섯 촌락 중의 하나다. 그리고 돌산고허촌(突山高墟村)이라는 이름의 촌락의 촌장 이름이 소벌도리(蘇伐道理 또는 蘇伐都利)다. 위에서 본 인도 금씨(金氏) Suvar(蘇伐)를 성으로 하는 인물이다. 설마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려 보지만 어차피 사람은 부단히 옮겨 다니며 산다. 

시선을 해외로 돌려보면 오스트리아 명품 크리스털 브랜드 스와로브스키(Swarovski)도 오스트리아어로는 스와라프스키[swɒˈrɒfski], 독일어로는 스바로프스키[svaˈrɔfski]라고 다르게 발음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기업은 1895년 폴란드와의 국경으로부터 20km 떨어진 오늘날의 체코 공화국 보헤미아 북부  지제라 산맥(Jizera Mountains)에 자리한 지레틴 포드 부코붜[Jiřetín pod Bukovou, 과거의 게오르겐탈 베이 바블론즈(Georgenthal bei Gablonz); 현재 주민수 400명] 지역 출신의 오스트리아인 다니엘 스와로브스키(Daniel Swarovski)가 설립했다. 

나는 마치 우리말 욕설처럼 들리는 이 이름의 기원이 궁금했다. 꼭 무슨 피치 못할 사연이 담겨 있을 것만 같았다. 스와로브스키 가문의 혈통을 알고자 가계(genealogy) 조사를 해보았으나 지금까지는 이렇다 할 소득이 없다. 그러나 확증하지는 못하지만, 이 집안이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해 간 유목민 중의 하나로 黃金을 Swar 또는 Svar라 부르는 가문의 후손(-ski)임은 분명해 보인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