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가문의 역사는 곧 유럽의 역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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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가문의 역사는 곧 유럽의 역사가 되었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8.14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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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열 패밀리: 유럽을 지배한 여덟 가문의 기막힌 이야기 | 정유경 지음 | 위즈덤하우스 | 436쪽

 

유럽을 지배해온 진짜 실세는 누구였을까? 유럽을 설계하고 이끌어온 힘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유럽의 가문은 대부분 작은 영지에서 시작해 세력을 확장했고, 가문의 혈통을 이어가기 위해 통혼, 근친결혼, 후계 상속 등 다양한 제도를 전략적으로 이용했다. 상속받은 영토를 둘러싼 형제간의 암투부터 각국의 명분을 건 전쟁까지 크고 작은 경쟁도 펼쳐졌으며, 왕위를 계승하거나 왕의 측근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정치적 움직임도 활발했다. 이 과정에서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가 발전해 지금의 유럽을 형성했다. 수많은 가문 중 이른바 ‘로열 패밀리’라 지칭할 수 있는 유럽의 명문가를 이해하면 유럽 역사의 핵심을 함께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은 유럽의 로열 패밀리 중에서도 20세기 이후까지 명맥을 유지한 합스부르크, 부르봉, 로마노프, 호엔촐레른, 하노버, 비텔스바흐, 올덴부르크, 베틴까지 유서 깊은 여덟 가문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서술한다. 가문의 선조부터 마지막 후손까지, 여덟 가문의 성장과 쇠락의 과정을 차례대로 살펴보는 한편, 통치를 이어받은 인물들의 계보를 따라가면서 역사의 뒤편에 숨어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안내한다. 

유럽에서 가문이 세력을 확장하고 유지할 수 있었던 핵심은 ‘결혼’과 ‘후계자’였다. 예를 들면 12세기 잉글랜드의 왕 헨리 2세의 어머니인 마틸다는 헨리 1세의 딸이었고, 아버지로부터 왕위 계승 권리를 물려받았다. 앙주 백작이었던 헨리 2세는 어머니의 권리를 이어받아 잉글랜드 왕위 계승을 주장했고, 결국 잉글랜드를 통치할 수 있었다. 이처럼 유럽의 통치 가문에서 후계자가 바닥날 때는 항상 혈연관계를 통해 후계자가 될 사람을 찾았다. 이때 누가 더 이전 국왕과 가까운 친척인지가 그 지역의 통치 권리를 이어받는 데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친척조차 없다면 해당 가문은 단절되었고, 혈연관계에 맞는 다른 가문의 인물이 그 가문의 영지를 상속받았다. 유럽의 수많은 역사소설이 ‘후계자 문제’를 주제로 삼은 것은 바로 이런 연유 때문이다.

14~15세기 프랑스와 잉글랜드 사이에서 벌어진 백년전쟁도 프랑스 내 잉글랜드 국왕의 영지에 대한 권리를 두고 다툰 것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잉글랜드의 왕이었던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 공주였던 어머니의 권리를 통해 자신이 프랑스 왕위에 올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프랑스 내 영주들은 그가 아닌 발루아 백작 필리프를 국왕 필리프 6세로 받아들였고, 이 일로 잉글랜드와 프랑스는 백년전쟁을 시작하게 되었다.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 내 잉글랜드 국왕의 영지를 프랑스 국왕의 봉토가 아닌 독립적인 영지로 만들길 원했으나 프랑스는 이를 수용할 수 없었기에 전쟁을 피할 수 없었다.

 

유럽의 로열 패밀리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가문은 역시 ‘합스부르크’일 것이다. ‘영원한 제왕의 가문’이라 불리는 합스부르크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통치 가문이자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합스부르크는 신성로마제국의 왕가이자 프랑스를 제외한 서유럽 대부분의 지역을 통치 영지로 가지고 있었기에 정치적으로 큰 힘이 있었고, 특히 건축이나 미술 등 예술 분야를 적극 후원해 유럽의 문화를 부흥시켰다. 그러나 합스부르크도 프랑스 대혁명 이후 나폴레옹과 전쟁을 치르면서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가문의 이익을 위해 근친결혼을 추진하면서 세력을 확장하고 강력한 권력을 회복하고자 힘썼지만, 결국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붕괴되면서 마지막을 맞이했다.

오늘날 스칸디나비아 3국이라 불리는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를 비롯해 그리스, 러시아까지 광범위한 지역을 통치한 올덴부르크 가문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유럽의 북서부에 위치한 올덴부르크 백작 크리스티안 1세가 덴마크의 왕이 되면서 시작된 이 가문은 이후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작령을 얻으면서 북유럽에서 중요한 가문으로 자리 잡았다. 18세기에 ‘유럽의 할아버지’라는 별칭을 얻은 크리스티안 9세는 여섯 명의 자녀를 여러 왕가와 결혼시키며 세력을 확장했고, 그의 후손들은 덴마크, 노르웨이, 그리스 등을 통치했다. 놀랍게도 그의 마지막 후손은 현재까지 살아 있으며, 그리스에 거주 중이다. 

비록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되었으나, ‘여제’의 자리에 등극한 여성 후계자 이야기도 이 책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로마노프 가문에서는 러시아를 강력한 제국으로 만든 표트르 대제 이후 후계자가 없자 그의 아내였던 예카테리나 1세가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2년의 통치 후 사망하고, 아들 표트르 2세마저 15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귀족들은 표트르 대제의 조카 안나를 황제로 앉혔다. 이후 안나의 아들 이반 6세의 섭정을 추진하다가 표트르 대제의 딸 옐리자베타가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스스로 러시아 황제가 되었다. 영광과 쇠락의 순간을 동시에 맞이한 인물도 있다. 독일제국의 마지막 왕위에 오른 빌헬름 2세다.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자 퇴위한 빌헬름 2세는 네덜란드에서 망명 생활을 했고, 독일에서 군주제로 복귀할 날을 기다리며 나치와 거리를 두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사망한 그는 나치의 상징이 될 것이 두려워 독일이 아닌 망명지인 도른에 묻혔다.

저자의 말처럼 “역사란 다양한 사람들의 삶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선대에서 후대로 이어지는 인물들의 세세한 이야기가 모여 거대한 유럽의 역사를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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