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를 번역한 세계적인 사상가 바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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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를 번역한 세계적인 사상가 바우만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8.14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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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그문트 바우만: 유동하는 삶을 헤쳐나간 영혼 | 이자벨라 바그너 지음 | 김정아 옮김 | 북스힐 | 784쪽

 

사회학자이자 철학자, 대중지식인으로 현대 사회를 번역한 세계적인 사상가 지그문트 바우만(1925~2017)에 대한 최초의 전기이다.

1925년 11월 19일 폴란드 포즈난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폴란드에서 반유대주의를 경험했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를 피해 폴란드를 탈출하여 소련으로 도피했다. 군인으로 전쟁을 겪었고 공산주의 정당의 첩보 요원으로 일했다. 폴란드 사회과학원에서 사회학을, 바르샤바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며 학문에 발을 들였다. 1954년에 바르샤바대학교의 교수가 되었고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로 활동했다. 그러다 1968년 폴란드 공산당이 주도한 반유대 캠페인의 절정기에 교수직을 잃고 국적을 박탈당한 채 조국을 떠나,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후 1971년 리즈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부임하며 영국에 정착했고, 1990년 정년퇴직 후 리즈대학교와 바르샤바대학교 명예교수로 임하며 학문적 글쓰기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나 통찰력 있는 저서들을 다수 남겼다.

‘유동하는 근대’라는 개념으로 현대 서구 사회의 불안정한 삶을 설명했으며,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액체 현대』, 『사회학의 쓸모』, 『리퀴드 러브』, 『모두스 비벤디』 등 세계화와 근대성, 포스트모더니티, 소비주의에 관한 책들을 꾸준히 발표하며 이 시대의 지성이자 문화적 아이콘으로 우뚝 섰다. 1992년 사회학 및 사회과학 부문 유럽 아말피 상, 1998년 아도르노 상, 2010년 아스투리아스 상을 수상했다. 

바우만은 생전 많은 역할을 수행했다. 학생, 군인, 장교, 학자, 교수, 아버지, 이민자. 그리고 그의 삶을 지배한 ‘유대인’이라는 출신이 그에게 압도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바우만은 출신을 이유로 평생 두 번의 난민 생활을 했다. 유랑하는 삶은 바우만의 선택이 아니었다. 하지만 “바우만은 정밀한 전략을 구사해, 제한된 가능성 안에서 자기 삶의 궤적을 관리했다.”

 

또한 바우만은 사회가 민족을 구분하는 행동, 개인에게서 주체성과 자율권을 앗아가는 극단 세력을 인생 전반에 몸소 겪었으며, 여러 체제 안에서 투쟁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인류가 겪는 여러 문제가 이런 ‘충돌’에서 비롯한다고 봐, 이 사안을 꾸준히 글로 다뤘다. “바우만의 연구는 바우만 자신의 경험에, 특히 어릴 때부터 시작해 마흔 줄까지 잇달아 벌어진 재앙 같은 사건들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다. 바우만은 딸들과 손주들에게 보낸 비공개 원고에서 이런 삶의 단편들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받은 영향을 인정했다.”

저자 바그너는 바우만의 관점을 이해하고, 그의 인생 궤적을 촘촘히 이룬 사건과 과정을 수집하여 독자들이 맥락 안에서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제시한다. 당, 대학, 첩보 기관의 다양한 기록물 보관소에서 문서들을 찾아내고, 바우만이 딸과 손주들에게 남긴 원고 「폴란드인, 유대인, 그리고 나? 지금의 나를 만든 모든 것들에 관한 연구」를 비롯하여 바우만의 개인 기록물을 광범위하게 인용하고 세밀하게 분석하여 독자들이 문서 뒤에 숨겨진 수많은 의미들을 이해하고 바우만의 삶을 둘러싼 맥락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배치했다.

소비주의와 상품화, 국제화, 신식민주의, 이주, 사회구조의 유동화를 다룬 바우만의 연구는 20세기와 21세기 초반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변화와 매우 관련 깊다. 바우만은 서구 사회의 역동을 묘사하고 해석할 줄 알았다. 그의 글들은 이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고, 다양한 독자를 위해 여러 언어로 출간되었다. 저자에 따르면 바우만의 주요 지식 활동기는 폴란드, 영국, 국제 시기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폴란드 시기, 바우만은 폴란드어로 글을 쓰면서 사회학자로 활동했다. 물론 이 글들은 영어를 포함한 프랑스어, 체코어, 히브리어 등 다양한 언어로도 번역되었다. 사회학자로서 바우만은 학문 전통의 다양성을 공개적으로 지지하였으며, 교조적 마르크스주의 접근법에 반대했다. “모든 꽃이 피어나게 하자. 과학적 철학과 사회학이 발전하기에 가장 알맞은 환경은 철학자와 사회학자를 길러내는 곳, 대학교에서 여러 학파를 대변하는 다양한 철학과 사회학이 존재할 때야 생겨날 수 있다.”

1971년 영국 정착 이후 1980년대 초반부터 영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입법자와 해석자』로 학계에서 인정받았다. 영국 시기에 바우만의 글쓰기는 주로 영어권 학자들을 겨냥했다. 1989년에 현대성과 홀로코스트 간의 연관관계를 분석한 『현대성과 홀로코스트』를 출간하여 사회학 저술 분야에서 자리를 굳혔고, 이후로 근대성과 탈근대성에 주력하였다. 서구 사회를 탈근대로 바라본 통찰력은 바우만이 1990년대에 내놓은 저술을 하나로 잇는 고리였다. 2000년에 나온 『액체근대』는 바우만의 사회 변화 분석 이론을 통합한 걸작으로, 바우만의 ‘유동하는 세상’ 이론을 보강하고 널리 알릴 시발점이 되었다. 많은 대중에게 ‘유동하는’, ‘액체’라는 은유를 알리고 받아들이도록 이끌면서 세계적 지식인으로 자리잡았다.

바우만은 유럽과 폴란드의 역사와 정치에 일어난 주요 비극을 온몸으로 겪었다. “전쟁 전 차별, 2차 세계대전과 나치 점령, 피난, 소련에서 난민이 맞은 운명, 폴란드군 입대, 군사 정보 기관 합류, 스탈린주의 시절과 해빙기의 대학 교육자, 냉전, 국제적 학문 활동, 1968년 반유대주의 숙청, 학생 소요, 추방, 이스라엘 강제 이주, 영국 리즈로 옮긴 뒤에야 비로소 안정된 연구 환경,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세계적 명사의 반열.” 그러나 바우만의 삶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고, 때로는 왜곡되어 있다. 이 책 『지그문트 바우만』은 자신의 시대를 목격하고 거기에 활발히 참여한 바우만의 삶을 연대순으로 좇아가는 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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