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신분집단의 부상이 한국사회의 현대적 변혁을 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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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신분집단의 부상이 한국사회의 현대적 변혁을 구현했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8.1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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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을 넘어서: 한국 사회 특권층의 뿌리를 찾아서 | 황경문 지음 | 백광열 옮김 | 너머북스 | 504쪽

 

이 책은 중인, 향리, 서얼, 무반, 서북인 등 제2 신분집단에 대한 최초의 역사적 연구이자 이 집단의 후손들이 현대 한국이란 국가와 사회가 출현하는 데 미친 영향을 처음으로 고찰한 책이다. 제2 신분집단 후손들의 사회적 지위 상승은 거의 전적으로 출생에 의존했던 조선시대 신분사회가 ‘교육’과 ‘부’를 포함한 훨씬 복합적인 요소들에 의해 결정되는 상황으로 한국 사회가 전환되었음을 보여준 획기적 현상이었다. 이 책이 보여주듯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반에 이르기까지 지배 엘리트층의 일원으로 떠오른 그들의 새로운 위상은 그들이 정치, 교육, 사업은 물론 문화, 문학, 예술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배경이 되었다.

저자 황경문 교수(호주 국립대)는 그들은 자신들이 성취한 성공 스토리 이상으로 훨씬 중요한 무언가를 현대 한국 사회에 남겼다고 한다. 가능성에 관한 의식, 즉 외관상 이미 결정된 경로가 있다 해도 그 역시 습득될 수 있다는 ‘지위’를 향한 강력한 믿음이 그것이다. 한국 사회구조의 변화는 그 핵심 동학이 지위(신분)의 제거에 있지 않았다. 한국인의 강력한 지위의식은 진보라든가 변화를 지체시키지 않았다. 높은 지위가 주로 세습적 면모를 가진 것으로부터 성취가 가능한 것으로 전환된 것이며, 그 역동성에 비춰 볼 때 한국의 경제성장을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저평가된 표현이라고도 했다. 새로운 전환기를 맞은 한국사회가 직면한 문제는 특권과 기회 불평등의 안착이다. 이 책은 이 문제의 깊은 뿌리를 한국의 과거로부터 이해하는 데 새로운 안목을 제공한다.

17세기 중반을 시작으로 근대 시기까지 이어지는 사회구조의 역사, 특히 사회 위계의 역사를 다루는 이 책은 제2 신분집단의 구성원이 관료제에서 극적 상승을 이뤄낸 다양한 수단, 그들이 어떻게 이러한 운명의 반전을 확대하여 수 세기에 걸친 사회 위계의 전복에 이르게 했는지, 그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한국 역사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을 재고하는 데 필요한지 상세히 다룬다. 특히 이 책은 중인, 향리, 서얼, 서북인, 무반 등 대한 구체적인 사례 연구가 돋보인다.

저자는 제2 신분집단이 한국의 근대성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라 본다. 이들의 부상으로 사회적 지위가 출생에서 성취가 가능한 것으로 전환한 것이 근대성의 핵심이며 이는 자본주의, 산업화, 도시화 등 물질적 근대에 선행했다고 강조하면서 한국의 근대성에 관한 재인식을 촉구한다. 식민지 시기 산업화와 한국인 자본가가 등장했고 자본주의 윤리의 일상화라는 것이 생겨났다 하더라도 훨씬 이후에나 뿌리를 내렸다는 것이다. 돈이 지위를 높일 수는 있지만 뚜렷한 한계가 있었다. 20세기 후반, 사회적으로 자본주의가 정착해가고 있던 와중에도 자본가가 지배적 지위로 상승하는 데는 제한이 있었던 것처럼. 

또한 저자는 진보의 증대라는 정해진 단계를 밟아가는 것으로 보는 한국사의 지배적인 역사서술에 대해 이는 이미 국제학계에서 폐기된 서유럽사 모델의 반영이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방법은 일본의 결론을 뒤집으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식민사학을 반영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조선시대 ‘봉건제 붕괴’라는 전제만 제거하면 한국 고유의 역사적 동학에 기반해서 전근대와 현대 사이의 보다 안정적인 연관성의 증거를 찾을 수 있으며, 제2 신분집단의 지위의식에는 한국만의 고유한 근대성의 특질이 살아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질문을 반복해서 던지며 제2 신분집단의 운명을 추적한다.

이들을 움직인 강력한 무언가는 바로 ‘지위의식’이었다. 지위의식은 제2 신분집단과 그 후손들이 한국의 근대성에 남긴 중요한 자취이다. 지위의식의 지속적 영향력은 단지 전통의 영속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전통에 대한 강력한 수정이 반영된 것이다.

지위가 있어야 최상위로 올라설 수 있다는 지위의식은 극도의 내구력으로 지속하고 있다. 전근대 ‘양반이 되고자 하는 욕망’과 관직을 가진 자에게 주어진 사회적 우월성이 현대에도 지속적으로 힘을 발휘한다. 지금도 어떤 사람의 졸업장에 적혀 있는 학교 이름은 조선왕조에서 출생과 관료 자격의 상관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최상위 직업에 대한 자격 요건을 결정한다. 엘리트에 가담하기 위한 정열적인 노력은 교육에 관한 몰두 그 자체는 아니다. 한국에서 식견 있는 사람치고 어떤 사람이 받은 교육의 질이 그가 다닌 대학에 상응한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그것은 사람들을 특정한 위광의 지표를 소유했느냐에 따라 특권과 인정의 서열 속으로 줄 세우려는 집착이다.

해방 이후 북한에서는 사회혁명이 일어났지만 이후 세습 지배는 거의 바뀌지 않았다. 평등을 중시하는 사회주의 나라에서 이 점은 비극적인 아이러니일 수밖에 없다. 남한은 사회혁명이 없었기 때문에 신분의식의 고갱이가 어느 정도 유지되긴 했지만 사회적 지위의 구성 요소는 결정적으로 ‘출생을 넘어’ 개인이 성취할 수 있는 경제적 부나 학력 등으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지위 의식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것은 높은 지위가 주로 출생과 세습에 따른 것이었다면 성취가 가능한 것으로 전환된 것이다. 제2 신분집단과 그 후예들이 현대 한국에 남긴 것은 가능성에 관한 의식, 즉 지위를 습득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명문대 졸업장을 갖기 위한 열정, 집착은 일반적인 사회의 경쟁 이상의 것이다. 지위의식이 일종의 한국식 개인주의가 된 것인지 혹은 이러한 역동성이 경제 기적을 추동했는지의 여부는 논쟁 대상이 될 수 있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지위의 작동과 그에 관한 인식에 있어서의 변화가 가진 함의는 사회 위계의 재배치를 넘어서 한국 근대성의 다른 많은 측면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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