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른스트 윙거, ‘악마적 사유’인가 ‘역사철학적 통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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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른스트 윙거, ‘악마적 사유’인가 ‘역사철학적 통찰’인가?
  • 김지현 기자
  • 승인 2020.0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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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노동자·고통에 관하여·독일 파시즘의 이론들 | 에른스트 윙거·발터 벤야민 지음 | 최동민 옮김 | 글항아리 | 368쪽
 

이 책은 “나치즘의 헌법” 혹은 “파시즘의 마그나카르타”라는 평가를 받는 에른스트 윙거Ernst Junger(1895~1998)의 『노동자: 지배와 형상』(1932)과 「고통에 관하여」(1934)를 국내 초역했다. 아울러 윙거의 사유에 숨겨진 독성에 대한 ‘해독제’로서 작용할 발터 벤야민의 「독일 파시즘의 이론들」을 함께 수록했다.

독일 현대 문학사에서 윙거만큼 상반되는 평가를 받는 작가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치 이론의 선구자’라는 평가에서 현대사회와 기술의 문제를 다룬 ‘탁월한 철학자이자 시대 진단가’라는 평가까지, 그를 수식하는 표현들은 이처럼 극단을 이룬다.

『노동자』는 새로운 인간 유형으로서 “노동자의 형상Gestalt des Arbeiters”과 그 형상의 정치적 구현체로서 전체주의 국가 간의 관계를 ‘유기체적 총체성’ 속에서 파악하고, 이를 역사철학적·자연적 필연으로 설명하고자 노력한다. 「고통에 관하여」는 하나의 독립적인 글이지만 「총동원」(1930)과 함께 에른스트 윙거의 초기 주저인 『노동자』에 대한 보론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즉 『노동자』가 새로운 세계를 구축해나갈 주체인 ‘새로운 인종’, 즉 ‘노동자’와 이 노동자가 지배하는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미래 전망을 제시한다면, 「총동원」과 「고통에 관하여」는 각각 노동자의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방법론’과 그 과정에서 겪게 될 ‘고통’ 및 그 고통의 정당성에 대해 다루고 있다.

「고통에 관하여」

윙거는 「고통에 관하여」에서 기술화된 현대사회의 특성을 무엇보다 ‘고통’이라는 핵심어를 통해 포착하고, 기술과 고통이 맺는 관계를 해명하고자 시도한다. 그의 문제의식은 기술화와 합리화가 진척될수록 이에 상응해 인간의 신체에 가해지는 점증하는 고통과 이에 대응해야 하는 현대인들의 태도와 방식에 집중되어 있다.

기존의 독일 보수주의자들이 기술문명을 ‘타락’ ‘평균화’ 등의 이유로 적대시하고, 기술문명이 불러일으키는 증대되는 고통의 문제를 자연으로 도피함으로써 해결하려는 기술 적대적 혹은 기술 회피적인 성향을 보였다면, 윙거는 과학기술에 의한 세계의 ‘탈마법화’(베버)나 ‘아우라의 소멸’(벤야민)과 같은 기술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통을 피할 수 없는 시대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영웅적’으로 대응할 것을 요구한다.

윙거는 고통에 대한 해법으로 삶의 근원적인 요소인 이 “고통을 포섭하고 삶이 고통과 언제든 조우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삶의 계획”을 세울 것을 제시하는데, 고통을 이겨내게 하는 이 계획은 현대적 기술의 도움을 통해 최적화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는 인간과 기술의 ‘유기체적 결합’을 통해 현대적 고통을 영웅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이를 현대의 군사, 문화, 스포츠 영역의 현상들을 통해 입증하고자 한다.

요컨대 인간은 기계와의 유기체적 결합을 통해 자신의 신체적 활동을 ‘측정’하고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자기발전의 과정을 거쳐야 하며, 이를 통해 달성된 인간 육체의 “경화” 및 “도금화”를 통해 기술문명이 끊임없이 부과하는 고통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노동자』

철학적 에세이 『노동자』는 「총동원」이 나온 1930년과 「고통에 관하여」가 출간된 1934년 사이인 1932년에 출간되었으며, 이 글들은 상호간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총동원」이 기술력의 발전을 최대한 총동원하는 병영적 전체주의 국가 체계의 필연성을 세계대전의 경험에 근거해 제시했다면, 『노동자』는 새로운 인간 유형으로서 “노동자의 형상”과 그 형상의 정치적 구현체로서 전체주의 국가 간의 관계를 ‘유기체적 총체성’ 속에서 파악하고, 이를 역사철학적·자연적 필연으로 설명하고자 노력한다. 윙거는 당시 이탈리아와 러시아 등에서 진행 중이던 전체주의 국가화, 즉 국가 중심의 경제 개발계획 추진, 입법부와 행정부가 결합된 정치시스템, 국민에 대한 국가의 총동원 체제 등에 주목하면서 국가에 의해 기술 발전의 가능성이 총동원될 수 있는 전체주의 국가 체제를 미래의 국가 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독일 파시즘의 이론들」

이 비평에서 벤야민은 크게 세 가지 지점에서 윙거와 그 친구들의 사유를 비판한다. 첫째는 ‘전쟁에 대한 미화’ 및 ‘참전군인의 영웅화’, 둘째는 ‘기술의 전쟁적인 사용’에 대한 열광, 셋째는 전쟁의 신화화와 신격화 문제다.

개인의 영웅적인 행위와 경험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물량전의 참혹한 전쟁 양상과 ‘가스전’으로 요약되는 전쟁의 반인륜적 모습으로부터는 등을 돌린 채, 전사의 영웅성과 전쟁의 정당성만 무조건적으로 긍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벤야민은 윙거와 그의 친구들이 세계대전을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희생으로 평가하면서 수많은 이의 죽음을 정당화한다고 비판한다.

또한 벤야민은 전쟁과 기술의 사용 문제에 집중한다. 벤야민은 전쟁 기술에 대한 이들의 열광은 기실 ‘몰락의 숭배’와 다름없으며, 그들이 갈망하는 ‘다가올 전쟁’은 인류를 파멸로 몰고 갈 ‘기술의 노예 반란’에 불과할 것이라고 일갈한다.

마지막으로 벤야민은 전쟁을 신격화하는 윙거와 그의 친구들의 ‘뿌리 깊은 신비주의’적 태도를 비판한다.
벤야민에 따르면 이들은 “항상 가장 먼저 그리고 항상 가장 격렬하게 사리분별에 저항”하는 비이성적, 신비주의적 태도를 보일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전쟁을 영원하고 근원적인 자연 법칙의 영역으로까지 고양시키려 한다. 따라서 벤야민은 윙거와 그의 친구들의 저술이 전쟁을 “기술 속에서 신비주의적으로 그리고 무매개적으로 풀어내려는 시도”에 불과하며, 전쟁에 대한 이러한 종류의 신비주의적 긍정은 필연적으로 논증을 결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윙거와 그의 친구들이 ‘근원 체험’으로서 신비화하는 전쟁은 기실 ‘세계 죽음’의 종말론적 전망과 다름없으며, 신비로운 어둠의 그림자 속에 은폐된 현실은 ‘언어와 오성’의 빛으로 환하게 비춰야 할 대상인 것이다. 요컨대 벤야민은 세계의 ‘재마법화’ 전략을 추구하는 윙거에 대해 언어를 통한 ‘탈마법화’로 맞서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물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려는 벤야민의 언어철학적 사유와 ‘말할 수 없는 것의 언어화’라는 그의 탈신화화 전략은 여기서 결합되어 전쟁과 전쟁 체험을 신화화·신격화하는 윙거와 그의 친구들의 사유에 대한 해독제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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