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지식인’은 왜 보다 더 가혹한 비판의 대상이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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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지식인’은 왜 보다 더 가혹한 비판의 대상이어야 하는가?
  • 선우현 청주교대·철학
  • 승인 2022.08.14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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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최근 한국 사회를 전일적으로 장악한 ‘진영논리’와 그것에 기댄 ‘정치의 팬덤화’ 현상이 끼친 치명적 폐해들 중 하나는, 진보 정권을 통해 공정하고 정의로운 민주사회의 구현을 이룰 수 있다는 일반 시민들의 기대와 희망, 감동이 정치에 대한 환멸과 절망, 무관심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점이다. 흔히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말처럼, 촛불 민심을 대변한다고 자임했던 문재인 정부 또한 개혁적 진보정권이라는 ‘자기 지칭적 표현’에도 불구하고, 한갓 또 다른 권위주의적 기득권 세력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이런 평가는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대체로 부정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로 굳어지는 듯하다. 가령 조국 사태와 관련해 “크게 마음에 빚을 졌다”는 대통령의 공적 발언을 통해 드러난 전근대적이며 반민주적인 ‘의리 정치’의 민낯을 비롯하여, 당 대표의 말 한마디에 일사분란하게 전체가 하나가 되어 작동되었던 집권 여당의 ‘유사 전체주의적’ 당 운영 방식이나, 적폐 청산과 개혁이란 이름하에 검찰을 지배 권력의 영구적 시녀 집단으로 재구조화하고자 기획된 이른바 ‘검수완박’의 실체적 진실 등 생각나는 대로 열거하기에도 넘쳐나는, ‘민주주의 침탈적 난맥상’이 고스란히 이를 대변해 준다. 그리고 이러한 사태를 옹호·은폐하는 논리적 기제가 다름 아닌 진영논리이자 정치의 팬덤화였다. 그 결과, ‘이념적 좌우’를 떠나 국민이 위임한 통치 권력을 기득권 강화와 사적 이익의 관철을 위해 남용하려는 특정 정치세력으로 하여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그러한 반민주적 정치 공학적 행태를 자행하게끔 허용하는 빌미와 무대가 활짝 펼쳐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민주주의 원칙과 가치의 급속한 와해라는 ‘민주주의의 퇴행적 사태’를 야기한 근본 요인의 하나인 진영논리와 팬덤 정치를 제거하기보다, 오히려 이를 확대·강화하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한 비판적 지식인들의 행태는 아마도 ‘진보 이념의 전개사(史)’에서 가장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사태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판·저항하지 못한 채, 권력이나 강성 친문 지지층의 눈치를 보느라 의도적으로 침묵하거나 외면한 ― 논자를 비롯한 ― 적지 않은 비판적 지식인들의 행태 또한 ‘기회주의적 행동이자 처신’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한마디로 사회의 변혁을 추구해야 할 비판적 지식인들은, 부여된 책무와 역할을 온전히 수행치 못한 ‘직무유기와 책임 방기’에 대한 준엄한 정치철학적 아울러 역사적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의 심각성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곧 엄중한 과오와 무책임성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비판적 지식인들의 뼈저린 자기성찰과 자기비판은 찾아보기 어렵다. 진보 지식인 집단 내에서의 상호 간 신랄하고도 치열한 자기반성적 논쟁 또한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오히려 현 윤석열 정부의 급격한 지지율 하락과 연이은 정치적 헛발질에 발맞추어, “때는 이때다” 식의 비판적 공세를 퍼부어댐으로써 자신들이 저질렀던 ‘유사 이데올로그적’ 행태나 잘못을 희석시키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물음이 제기될 수 있다. “왜 지식인들 가운데 진보적·비판적 지식인이 보수 수구적 지식인에 비해 한층 더 가혹한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이에 관한 답변은 사실 간단하다. 진보적·비판적 지식인은 사회적 약자도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 해방 사회, 자본이나 권력이 아닌 인간이 진정한 사회의 주인인 실질적 민주 사회의 구현을 갈구·추구하는, 요컨대 사회의 민주적 혁신을 현실화고자 진력하는 지식인이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민주주의의 이념과 가치를 허물어뜨리는 반민주적 작태, 그것도 촛불 정권에 의해 ‘의도적으로 자행된(?)’ 사태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거나 일조했다면, 그러한 지식인은 마땅히 가혹한 비판의 대상이자 규범적 비난의 대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해방 이후 오랜 기간 한국사회에 군림했던 보수 집권 세력은 ‘민간 및 군부 독재 정권’이거나 그러한 세력의 이념적 노선을 계승한 ‘비민주적 권위주의 정권’의 양태를 취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그러한 정치적 지형도에서는 ‘독재 및 반민주적 정권’ 대 ‘민주화 세력’ 간의 이념적 대립의 경계가 보다 명확했으며, 그 규범적 정당성과 부당성의 판별 또한 상대적으로 명료하였다. 그와 함께 당시 정치적 정통성과 정당성이 결여된 통치 세력을 옹호하는 데 적지 않은 수의 ‘수구 반동적 지식인’들이 ‘이념적 하수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도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그 점에서, 독재 권력의 ‘사상적 완장 맨’으로 나섰던 보수적 지식인들에 대해서는 감히 언급조차 하고 싶지 않다. 다만, 논자의 이러한 발언이, 보수적 지식인들 중에도 합리적이며 균형적 감각을 지닌 자기 성찰적 지식인이 적지 않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으로 오인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여하튼 이러한 연유로, 한국 사회의 실질적 민주화의 진척은 ‘근본적으로’ 사회 변혁을 추구하는 비판적 지식인들의 역할에 보다 큰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한데 현실은 어떠한가? 가령 높은 대중적 인지도와 영향력을 지닌 비판적 지식인들 중 일부는 진영논리와 팬덤 정치, 그리고 그것을 무반성적으로 추종하는 열혈 지지층을 변호·정당화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더불어 그러한 논리에 편승하여 집권 여당의 사당화나 정권의 영속적 유지를 위해 ‘진보’와 ‘민주주의’의 이념과 가치마저 여지없이 훼손시키는 행태를, ‘적폐 세력의 청산’이라는 미명 하에 시도된 불가피한 ‘진보적(?) 선택’으로 감싸고 포장하기에 급급하였다.  

이렇듯 지난 문재인 정권 하에서 적지 않은 수의 비판적 지식인들은, 개혁을 빙자하여 정권 유지 및 권력의 확충을 획책하는 데 통치권을 남용하는 지배집단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앞장 서 주도적으로 그러한 민주주의의 파괴적 사태를 초래하는 ‘주된’ 정치 공학적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혹은 곤혹스러운 입장을 보이면서 침묵하거나 애써 외면하는 태도, 또는 수수방관하는 행태를 보여주었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은 그러한 책임과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비록 역량도 부족하고 학문적 영향력도 한참 낮은 레벨에 위치해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진보적 철학자이길 염원하고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논자 자신의 개인적 자기 고발이기도 하다. 


선우현 청주교대·철학

연세대 철학과와 서울대 철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한철학회 부회장과 사회와철학연구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청주교대 윤리교육과 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사회비판과 정치적 실천』, 『우리시대의 북한철학』, 『위기시대의 사회철학』, 『한국사회의 현실과 사회철학』, 『자생적 철학체계로서 인간중심철학』, 『홉스의 리바이어던』, 『평등』, 『도덕 판단의 보편적 잣대는 존재하는가』, 『한반도의 분단, 평화, 통일 그리고 민족』(기획·편집), 『왜 지금 다시 마르크스인가』(기획·편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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