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가는 지역 사회 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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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는 지역 사회 돌아보기
  • 고흥석 국립군산대학교 미디어문화학과 교수
  • 승인 2022.08.14 12: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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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W. B. Yeats)는 ‘비잔티움으로의 항해(Sailing to Byzantium)’라는 시의 첫 구절에 “그것은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현실의 모순과 갈등을 벗어나 영원의 자연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2007년 개봉한 코헨 형제의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더욱 친숙하다. 물론 이 영화는 노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스릴러 범죄 영화다. 사이코패스 살인마의 끔직한 장면으로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의 영화이다. 영화의 내용이나 메시지와는 별개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명제는 이 영화가 개봉한 지 1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 다른 의미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이전 정부에서는 여러 경로를 통해 우리 국민이 인식하고 있는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서른 가지 문제를 추리고 여러 부처와 시민단체, 지자체와 함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생태계를 만들어 왔다. 건강, 환경, 문화여가, 생활안전, 재난재해, 에너지, 주거교통, 가족, 교육, 사회통합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그리고 30개의 사회문제를 40개로 확대했다. 

우리 정부가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왔던 40개의 사회문제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심각성과 시급성을 요구하는 사회문제 가운데 “지역”, 혹은 “지방”이라는 단어는 없다. 건강과 관련된 만성질환, 희귀난치성 질환, 중독 등의 문제, 재난재해 분야의 감염병, 소방안전 등의 사회문제나 가족 분야로 분류되어 있는 저출산, 가정폭력, 노인소외 등의 문제들은 아마도 서울과 지방을 구분할 문제가 아닌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꼽고 있는 40개의 주요 사회문제를 지역 차원에서 접근해 보면, 화이트칼라 범죄, 에너지 빈곤, 교통 혼잡 등 몇 가지 사회문제를 제외하곤 서울·수도권에 비해 그 심각성이나 시급성이 지역에서 더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역 차원에서는 각각의 사회문제가 초고령화 문제와 결합되어 있고, 결과적으로 교육격차, 의료격차, 정보격차, 문화격차 등의 사회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우리는 어떻게 지역성(locality)을 유지해 나갈 수 있을까?

지난 정부 때 디지털을 기본권 수준으로 보장하는 사회를 위한 정책으로 『디지털포용 2.0』을 추진해 왔다. 디지털 격차 해소, 접근성 확대 등을 위한 정책을 마련했고 지금도 제도적 차원에서 디지털포용위원회를 구성해 디지털 격차 해소, 디지털 역량교육 등을 위한 디지털포용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의 디지털 포용정책으로 다양한 디지털 역량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이러한 노력으로 꾸준히 정보격차 해소 성과를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디지털 기술에 대한 포용적 활용을 위해 지자체와 함께 스마트경로당, 결식아동 급식지원 플랫폼 등 사회적 취약계층 지원도 확대해 가고 있다. 하지만, 꾸준한 포용정책에도 불구하고 정보통신기술과 디지털 혜택 정책이 관련 산업의 핵심 인프라를 확충하고 신산업을 육성하는 등 경제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마저도 지역보다는 서울·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최근 공개된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디지털 정보화의 역량 수준은 일반인에 비해 고령층과 농어민의 격차가 해소되지 않고 있다. 2021년 기준으로 디지털 정보화 역량은 일반인에 비해 고령층은 53.9%, 농어민은 69.6% 수준에 머물러 있다. 디지털 정보화 시대에 정보격차는 고령의 농어업인에게 특히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들 계층의 일상생활에 큰 불편을 가중시키고 삶의 질을 떨어트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지역에 살고 있는 고령의 농어업인들은 디지털 정보격차로 인해 가족 간 커뮤니케이션이 단절되고, 정부와 지자체의 다양한 복지 혜택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나타난다. 이미 많은 지역의 중소 도시가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상황에서 지역 소멸의 위기는 지금 당장의 현실이 된 상태다. 디지털 포용 사회를 위해 지역의 고령 농어업인에 대한 디지털 역량 강화가 필요하며, 제도적 지원 체계를 정비해야 할 이유이다.  

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AI(인공지능) 기반의 사회문제 해결 플랫폼 기술개발에 힘쓰고 있다. 보건보지부의 노인 돌봄 서비스도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해 점차 고도화 되고 있다. 문제는 이들 노력들이 제각각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다부처 간 공동의 노력을 위한 실질적인 협업 프로그램이 절실하다. 지역의 디지털 정보격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으며, 지역 농어업인의 돌봄 서비스와의 결합을 통해 노인소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천적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 너무도 빨리 늙어가는 한국 사회, 국민의 대다수가 노인이 되는 늙은 한국 사회에서 노인을 위한 나라가 없다는 것은 영화만큼이나 끔찍한 일이다. 


고흥석 국립군산대학교 미디어문화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미시건주립대에서 저널리즘 석사, 동국대 대학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MBC 편성기획부,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했으며, 한국IPTV방송협회 정책기획센터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언론학보 편집위원, 한국미디어정책학회 총무이사, 사이버커뮤니케이션학회 연구이사로 활동 중이며, 미디어 산업 및 정책,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해 학생들과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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