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대에 성인이 내 책을 본다 해도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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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에 성인이 내 책을 본다 해도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8.08 23: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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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암 정약용 전기 | 정해렴 지음 | 창비 | 676쪽

 

‘다산’으로 잘 알려져 있는 정약용 선생의 마지막 호는 ‘사암(俟菴)’이다. 이 호는 후세에 성인(聖人)이 나와서 자신의 저서를 본다 해도 자신의 주장이 그르다 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지은 이름이다. 

이 책은 사암이 1822년에 자신의 삶을 정리한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 집중본(集中本)과 『사암선생연보』에 주로 의거해 사암의 일생을 기술한다. 또한 『여유당전서』 중 특히 시문집의 작품들을 바탕으로 사암의 사상과 공적을 해설한다. 때로는 자식과 형님에게 세상사와 학문을 이야기하고, 때로는 친구와 함께 시를 짓고 명승지를 유람하며, 때로는 제자와 함께 방대한 저서를 저술한 사암의 일생을 연도별로, 그리고 날짜별로 입체적으로 재구성한 다큐멘터리라 할 수 있다.

사암의 생은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청년기에는 빛나는 재능을 가지고 정조 임금으로부터 총애를 받으며 경기 암행어사, 곡산도호부사, 형조참의 등의 벼슬을 역임하고 수원 화성을 설계하는 등 업적을 쌓으면서 천주교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장년기에는 신유옥사로 낙마하고 장기와 강진에서 18년 동안 긴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 다산동암에 터 잡고 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쓰며 많은 저술과 작품을 남겼다. 귀양이 끝나고 여유당으로 돌아와 저술 정리에 힘쓰던 노년기에는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고 동학들과 교류하며 더 나은 삶을 추구했다.

잘 알려져 있고 이 책에서도 특히 많은 분량을 할애하는 시기는 귀양을 살았던 장년기이다. 보통 유배지에서도 학문과 글쓰기에 정진하여 『목민심서』나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남긴 시기로 알려졌지만, 이 책에서는 이 시기 사암의 활동이 이보다 더 풍성했음을 보여준다. 사암은 가는 곳마다 풍속과 정취, 사회제도의 모순을 시문과 기록으로 남겨 오늘날 조선 후기를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들을 남겼다. 관계를 유지하거나 새로 만드는 데도 힘써 다채로운 일화들을 남겼다. 저자는 이 과정을 시간의 흐름대로 정직하게 서술하면서도 여러 시문과 서간문을 인용하며 사암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재현한다. 유배지에서의 고초와 소외감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도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 더 나은 학문과 삶을 추구하며 사암의 정신도 한층 진전되었음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한권으로 만나는 사암 저작 선집이라 할 만하다. 생애 첫 작품으로 14세 때 금강산을 유람하고 돌아온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해금강의 모습을 읊은 오언시 「그리운 금강산(懷東嶽)」으로부터, 마지막 작품으로 결혼 60주년 기념일을 자축한 시 「결혼 60주년(回巹詩)」에 이르기까지 사암의 많은 저작을 한글로 옮겨 담았다. 이외에도 110여 편에 이르는 다양한 저작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사암의 삶과 문학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지는 느낌을 받는다.

예를 들어, 첫 귀양지 장기의 풍물을 노래한 「장기의 귀양살이에서 본 풍속(鬐城雜詩 二十六首)」, 그다음 귀양지 강진의 풍속을 읊은 「탐진 노래(耽津村謠 十五首)」 「탐진 농부가(耽津農歌 十首)」 「탐진 어부가(耽津漁歌 十章)」 같은 풍속시가 있고, 1794년 암행어사로 7개 고을을 돌아보며 직접 목도한 백성들의 참상을 고발하는 「적성촌에서(奉旨廉察 到積城村舍作)」, 백성들이 굶주리는 모습을 떠올린 「굶주린 백성(飢民詩)」, 군역의 부조리 때문에 남자가 스스로 생식기를 잘라낼 수밖에 없었던 처절한 비극을 읊은 「남근을 잘라내다니(哀絶陽)」 같은 사회시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죽란시사(竹欄詩社)를 결성해 동학들과 정기 모임을 가지며 남긴 아름다운 시들도 남아 있다. 이 책은 이처럼 많은 문학작품을 통해 시대를 앞선 실천적 사상가요, 훌륭한 행정가이자 경세가로서의 사암뿐 아니라 뛰어난 문인으로서 사암의 면모를 보여준다.

몇몇 시문들은 사암의 인간적인 매력을 드러내기도 한다. 특히 꿈속에서라도 보고 싶은 아내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진솔하게 표현한 「아내 생각(如夢令: 寄內)」과 시골 할아버지의 모습을 천연덕스럽게 묘사한 연작시 「늙은이의 즐거움(老人一快事 六首 效香山體)」 등이 그러하다. 「결혼 60주년(回巹詩)」은 노인이 된 사암의 정서를 낭만적으로 읊고 있어 우리가 알던 대학자 정약용과는 사뭇 다른 인간미를 느끼게 해준다. 사암은 이 시를 짓고 사흘 만에, 그러니까 결혼 60주년 기념일에 별세했다.

서간문 역시 사암의 삶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자료다. 강진에서 귀양살이하면서도 두 아들에게 집안을 보존하고 인간의 품위를 지키면서 살아나갈 길을 가르친 편지나 동학과 형제에게 그리움을 전하고 정신적 교류를 청했던 편지들에서는 사암의 인간적인 면모가 엿보인다. 저자는 우여곡절이 많았던 사암의 생을 그 당시 지었던 편지글을 인용하며 효과적으로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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